[한강로에서] ‘가슴 뛰는’ 이들이 앞에 서야 한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6 08: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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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알고 지냈던 이가 갑작스러운 발표를 하고 자신이 몸담았던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대선 이후 86세대 정치인 중에서는 맨 처음으로 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김영춘 전 장관 겸 국회의원의 이야기다. “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문 만큼 도전자들에게 기회를 넘겨줘야 한다”며 정계 은퇴를 공식화한 그는 후일 한 인터뷰에서 “목표가 있을 때는 도전하는 과정에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어느 정도 이뤄지자 더는 가슴이 뛰지 않고, 의미나 가치 없이 선거 때마다 나가는 직업정치인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회의하게 됐다”는 말로 자신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김영춘 전 장관뿐만이 아니다. 86세대 가운데 정계 퇴장을 발표한 이는 또 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최재성 전 정무수석이다. 그 또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소명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물러섰다. 지난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사람이 정치를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86세대 정치인들의 퇴장이 잇따를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86세대 가운데는 아직도 완강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 6·1 지방선거 출마자 중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그 세대의 인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른바 ‘올드 보이’들의 버티기다.

5월3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청 인근 선거 사무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종현
5월3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시청 인근 선거 사무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주목되는 후보 중 한 명인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도 대표적인 86세대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는 당대표 시절에 “86세대가 기득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뼈아프다”면서 “이제 새로운 미래 세대를 위해서 저희 세대가 준비하고 배려하고 양보해야 할 시점”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대선 패배 책임론’ 등 여러 비판을 무릅쓰고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내 경선을 거쳐 당당히 후보로 선출됐으니 중요한 한 고비는 넘긴 셈이겠지만, 좀 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바랐던 시민들의 아쉬움은 그대로 남겨진 상태다.

정치권에도 이제 ‘기후변화’가 몰아닥친 것일까. 올해 지방선거에서는 유난히 ‘인물 가뭄’ 현상이 심각해 보인다. 예전에는 인물이 차고 넘친다며 넒은 인재풀을 자랑하기까지 했던 민주당 진영의 인물난이 특히 두드러지는 듯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쪽의 물갈이가 더 잘되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두 정당 모두에서 인물 가뭄은 현재진행형의 고난이다. 광역자치단체에서나 기초자치단체에서나 참신한 인물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어느 쪽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지역을 쥐고 흔드는 올드 보이들의 위력이 아직도 거센 탓이거나, 당이 새 인물을 키우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 알다시피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현장으로 일컬어진다. 풀뿌리가 싱싱해야 줄기가 바로 설 수 있고, 뿌리가 허약하면 가지와 잎이 풍성하게 자라날 수 없다. 이는 비단 식물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의 생리가 대체로 그렇다. 자주 ‘생물(生物)’에 비견되는 정치 또한 이런 생리를 거스르면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 싱싱한 풀뿌리 인재들이 힘차게 떠받쳐줘야 정치의 나무줄기도 비로소 시원하게 뻗어갈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다. 지난 대선에서 나타났던 정권교체에 대한 바람에는 ‘정치 교체’에 대한 열망도 분명히 함께 담겨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교체’의 중심에 김영춘 전 장관의 말처럼 ‘더는 가슴이 뛰지 않는’ 채로 선거에 습관처럼 뛰어드는 사람이 몰려들게 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이번 지방선거가 여느 선거에 비해 정치 신인들에게 유난히 가혹하다는 말이 나오는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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