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격전지] 경남 의령, ‘군수들의 무덤’ 오명 속 무소속들의 3파전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2 16:00
  • 호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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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보수 지역 경남 의령군수 선거 르포
국민의힘, 성 비위로 공천 포기…오태완·김충규·손호현 각축

“누굴 뽑으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더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으니까 정당은 국민의힘인데, 군수는 아직도 모르겠다.”

6·1 지방선거 선거운동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지만, 경남 의령 군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영남 지역에서 국민의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으나, 경남 변방인 의령군의 군수 선거는 안갯속이다. 국민의힘 공천 후보 없이 무소속으로 나선 3명의 후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기호 4번 무소속 오태완(56·의령군수) 후보와 기호 5번 무소속 김충규(67·전 남해해경청장) 후보, 기호 6번 무소속 손호현(61·전 의령군의회 의장) 후보 등이다.

의령군은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지난 1995년 첫 민선 군수 선거 이후 총 아홉 번의 선거 결과 국민의힘 계열의 보수정당 후보가 다섯 번,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가 세 번 당선됐다. 지난 2014년 중도 성향 무소속이던 오영호 후보가 한 번 깃발을 꽂았을 뿐, 더불어민주당엔 험지로 분류돼 왔다. 

의령군은 특히 단체장들이 잇따라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줄줄이 직을 상실한 지역이다. 현직을 포함해 최근 10여 년 동안 재직한 의령군수는 모두 4명인데, 이들 모두 법의 심판대에 섰다. 의령군이 이른바 ‘군수들의 무덤’으로 전락한 셈이다. 1월10일 국민의힘 소속이던 오태완 군수는 여성 언론인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탓에 국민의힘은 의령군수 선거구를 무공천 지역으로 결정했고, 오 군수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사흘 전인 5월16일. 의령의 최대 전통시장인 의령읍 의령전통시장 주변 몇몇 건물에 후보 현수막이 걸린 채 이른 초여름 열기를 내뿜었다. 한껏 달아오른 선거운동원의 함성은 아직 없었지만, 후보 사무실을 드나드는 군민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선거일이 임박했음을 실감케 했다.

경남 의령군청ⓒ의령군 제공

보수 지지층 “군정이 안정적으로 지속돼야”

지난해 4월 보궐선거에서 군수로 당선된 오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군민들은 오 후보의 군정(郡政)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길 바라는 분위기였다. 의령전통시장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오 후보가 결국 재선하지 않겠나”라며 “군수가 바뀌어봤자 정책 일관성만 떨어진다. 오 후보에게 표가 몰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의령읍 가야마을에서 만난 한 중년여성도 “오 후보가 지난해 군수 보궐선거 당선 이후 무난하게 군정을 이끌어왔다는 게 주변 이야기”라며 “오 후보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50·60대 남성 사이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영향력이 또렷이 나타났다. 이날 오후 의령읍 의령우체국 옆에는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50대 남성은 “과거 정당 활동을 보고 뽑겠다. 이미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고, 동석한 60대 남성도 “윤 대통령이 최근 취임했고, 그걸 잘 뒷받침해줄 사람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의령읍 중앙사거리 인근에서 만난 김아무개씨(49)는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김충규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그는 “오 후보는 어설퍼서 미덥지 못하다”면서 “특히 성추행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 않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성범죄 혐의로 재판 중인 오 후보의 의령군수 후보 공천을 취소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5월12일 중앙당 최고위원회에서 의령군수 공천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민의힘 경남도당은 앞서 의령군수 후보를 경선 1위인 오 후보로 결정했지만, 최근 법원이 오 후보의 후보 추천 효력을 정지했기 때문이다. 앞서 의령군수 예비후보였던 김정권 전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윤리규정을 들어 성범죄 혐의로 재판 중인 오 후보의 자격을 문제 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5월11일 서울남부지법이 이를 받아들였다.

오태완 후보, 김충규 후보, 손호현 후보(왼쪽부터)ⓒ오태완·김충규·손호현 후보 선거사무소 제공

“성범죄 재판 중인 자는 안 돼” 이번 선거 뇌관

오 후보의 성범죄 혐의 재판은 특히 청년층에서 변수다. 의령대로 의병사거리 인근에서 만난 이아무개씨(32)는 “오 후보가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실을 접했는데, 좀 불쾌했다”며 “당이나 후보 출신보다는 후보의 자질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령군청에서 자신을 20대라고 소개한 한 여성도 “성범죄 관련 피고인 신분의 후보가 말이 되느냐. 후보 스스로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며 오 후보를 꼬집었다. 실제로 의령대로변 일부 현수막 게첨대에는 여성단체가 내건 ‘권력형 성범죄자 퇴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의령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도 오 후보를 비난했다. 한 50대 상인은 “청렴한 후보를 뽑겠다”고 했다. 또 박아무개씨(63)는 “지난 십여 년간 의령 경제가 좋아졌냐. 선거철이 되니까 국가사업을 많이 가져왔다고 말하는데,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며 현직 군수인 오 후보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오 후보 측은 이를 ‘정치적 탄압’이라며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오 후보 측 관계자는 “정당의 고유 권한인 공천 과정을 사법부가 과도하게 권한을 남용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두고 국민의힘 의령군수 후보를 배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법원의 결정은 삼권 분립이 명확한 대한민국 헌법 체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형사소송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반드시 (국민의힘에) 복당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의령의 선거 문화가 흐트러져 있지만, 군수 선거에서 (오 후보 표를) 잠식하기에는 미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충규 후보 측도 “부도덕한 인사가 의령을 차지하는 것은 안 된다”며 일전을 별렀다. 김 후보 측은 이번 선거에서 ‘반(反)성범죄 후보’ 마케팅에 ‘올인’했다. 김 후보는 “의령은 고령층이 많은 인구구조상 윤석열 대통령 바람에 취약한 게 사실”이라면서 “그럼에도 밑바닥 민심은 청렴한 저에게 우호적인 편”이라고 했다. 그는 “깨끗한 후보를 지지하는 막판 세몰이를 일궈내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복당 불발 끝에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손호현 후보는 ‘대중성’과 ‘인지도’를 내세워 표심 공략에 나섰다. 그간 의령군의회 의원으로 8년간 활약한 만큼, 지역 내에선 손 후보에 대해 “누군지 안다. 많이 봤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실제 의령에서는 손 후보에 대해 ‘의령 토박이’라는 답변이 많았다.

다만 후보 개인의 인지도와는 별개로 복당이 불허된 인사라는 점이 변수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의령읍에 거주하는 60대 택시기사는 “손 후보는 의령군의회에서 오랫동안 의정활동을 했기 때문에 많이 봤고, 열심히 다니더라”면서도 “많이 봤다고 무조건 뽑아주는 건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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