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변방에서 주류로 위상 바뀐 사진의 마법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2 11:00
  • 호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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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거스키》 《땅, 사람, 관계탐구》 등 사진전 잇달아 개최
기존 다큐멘터리 사진의 공식 탈피해 주목

“사진은 증거와 같다. 풍문으로 들었으나 미심쩍은 사실도, 사진으로 확인되면 그건 진실로 간주된다.”

평론가 수잔 손탁이 내린 사진의 정의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든 사건·사고마다 결정적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나 CCTV 캡처 화면이 사태를 종결시킨 경험칙을 우리는 익히 겪어왔다. 소설가이자 화가, 비평가이기도 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버나드 쇼는 “예수를 그린 그림 수만 점을 보는 것보다, 예수를 찍은 사진 한 장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손탁과 같은 평가를 한 바 있다.

라인강 III Rhein III, 2018
라인강 III Rhein III, 2018ⓒ안드레아스 거스키·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라인강 Ⅱ》,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 달러 낙찰

하지만 객관적 사실에 대한 사진의 증거 능력은 2000년 전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없던 사실마저 지어낼 수 있는 디지털 편집 기술은 역설적으로 사진의 지평을 넓히게 했다. 지상에 없는 천사를 그리는 화가의 상상력처럼 디지털 시대 사진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면서 미술계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만 해도 사진을 취급하는 데 인색했던 서구의 미술관은 1980년대 이르러 사진을 예우하기 시작했다. 전업 미술가가 카메라를 창작 도구로 사용하던 때였다. 한국은 이보다 늦어 대략 1990년대 중후반부터 주류 미술관에서 사진전을 열기 시작했다. 이런 위상 변화는 디지털 사진의 보급으로 급물살을 탔고, 사진계를 넘어 미술계의 주류 매체로 부상케 했다.

최신작부터 초기작까지 회고전 규모의 전시를 국내에서 연 독일 사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2022년 3월31일~8월14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는 사진 전성기의 대표 스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라인강 III》(2018)의 원조쯤 될 《라인강 Ⅱ》는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0만 달러(당시 48억원)에 낙찰돼 역대 사진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작품의 거래가격이 예술 완성도와 대등하게 비례하는 건 아니라 쳐도 거스키, 나아가 사진예술이 동시대 시각예술에서 갖는 영향력을 확인하는 지표로 부족함이 없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Andreas Gursky》 전시 전경ⓒ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aufer, 2021ⓒ안드레아스 거스키·스푸르스 마거스 제공
평양 VI Pyongyang VI,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거스키의 사진은 일정한 공식을 따른다. 균질하고 안정되게 구성된 화면 안에 현대 소비사회의 일반적 풍경을 반영하고, 선명한 디테일과 압도적인 사이즈로 그림을 능가하는 인상을 남기며, 디지털 편집을 통해 새로운 사실주의 미학을 세우는 게 그 공식이다. 바닥에 상품을 일렬로 줄지어 늘어놓은 아마존 물류센터 사진이나 수백만 송이의 튤립을 하늘에서 수직 각도로 담은 사진, 손과 발을 기계처럼 통일시킨 북한 아리랑 공연을 찍은 사진처럼 동일한 대상을 기계적으로 나열한 장면들로부터 현대사회를 표상하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루벤스의 그림처럼 거대한 사진 한 점으로 벽 하나를 채운 그의 사진 앞에 선 관객은 저도 모르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해상도와 디테일에 탄복한다. 정교한 그림처럼 세부까지 선명한 거스키의 사진은 고해상 이미지가 소비되는 시대와 호환된다는 점에서 동시대적 선호도가 높은 작품이다. 전에 우리가 알던 사진을 넘어 디지털 편집 기술로 작품마다 새로운 사실주의 미학이 탑재된다. F1경기장 트랙을 헬리콥터에서 여러 각도로 찍어 부분 부분 이어붙인 《바레인 I》(2005)이나, 비슷한 방식으로 초대형 여객선을 찍은 《크루즈》(2020)에선 사람들의 이목구비까지 보일 정도다.

거스키의 사진은 이처럼 선명한 부분들을 조합해 매우 선명하고 커다란 총체를 완성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 전시는 금전의 지원이 충분히 보장될 때 성사될 수 있는 조형적 상상력의 끝판이다. 포스트 프로덕션의 산물인 거스키의 사진예술은 ‘사진은 사실을 반영한다’는 사진 미학의 오랜 진실과 결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현대적 사진을 주도하는 예술가라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완결된 이미지를 총괄 기획하는 연출가에 가깝다.

박형렬 형상연구 땅#21_2013 Archival Pigment-Print 144x180cmⓒ박형렬 제공

사운드와 결합한 동영상으로 관객들 압도

박형렬 사진전 《땅, 사람, 관계탐구》(2022년 4월14일~6월5일, 성곡미술관)는 연출가로서 사진가의 관점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진이란 관점에서 함께 관람할 만한 국내 작가의 전시회다. 개간되지 않은 해안가의 지표면을 찍은 장면이 많은데, 해변 혹은 평지를 사실적으로 옮긴 풍경 사진이 아니다. 손이 닿지 않은 자연경관에 작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세모 혹은 동그란 도형으로 땅바닥을 도려내 그 장면을 찍거나, 어딘지 알 수 없는 평지에 흰색과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인물들을 바둑알처럼 배치한 기하학적 광경을 크레인으로 90도 수직 촬영한 장면을 제시하는 대지미술 규모의 사진작업이다.

심지어 평면에 갇힌 사진을 역동적인 비디오 아트로 연출한 작품까지 있다. 박형렬의 사진전에 들어설 때, 사운드가 나오는 스피커와 3채널 대형 영상 스크린을 만날 줄은 예상도 못 했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가로세로 십여 미터는 됨 직한 하얀색 직사각형 천을 손에 쥐고 광활한 평지를 가로지르는 경관은 기존의 사진예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진은 고정된 화면을 넘어, 사운드와 결합한 동영상으로 관객을 전방위로 에워싸는 다원예술로 확장 중이다.

자연경관을 변형시켜 찍은 박형렬 사진의 제작 의도를 보도자료와 작가노트를 접하기 전까지 필자는 몰랐다. 개발과 투기의 목적으로 자연(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으로 자연이 쉽게 파괴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런 작업이 시작됐단다. 어지럽게 수풀이 우거진 간척지와 광활한 평지를 작가가 임의로 변형시킨 사진들에 대해 필자는 줄곧 형식 실험의 매력에만 집중했던 탓이다. 작가가 2011년경 사진 연작에 붙인 ‘포획된 자연’이란 제목을, 평범한 자연을 특이한 경관으로 연출하는 그의 미학에 대한 은유라고 믿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작가의 의도와 보는 이의 이해가 불일치할 때, 합의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자연을 수익의 대상으로 보는 토건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난개발의 폐해를 선명하고 직설적 폭로로 재현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올바름을 앞세운 다큐멘터리 사진에 머무르면서 고유한 미감은 사라졌을 것이다. 박형렬은 종래 다큐멘터리 사진의 문법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자연을 변형시키는 개발사업을 차용해 볼거리가 없는 간척지에 전에 없던 대지미술을 연출해 독창성을 확보했다. 사진이 미술계의 주류로 부상했다지만, 레드 오션으로 변한 사진 생태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생존자는 기존의 사진 언어와 어떻게든 결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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