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도 간절히 원했던 ‘아시안컵 트로피’ 들어올릴 기회가 왔는데…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0 16:00
  • 호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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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아시안컵, 63년 만에 유치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중국 개최권 반납…한국·일본·카타르 등이 대안으로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기고]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대륙 최강자를 자처해온 한국은 월드컵 ‘10회 연속 출전’(통산 11회 출전)과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하지만 아시아축구연맹(AFC)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아시아의 최강자는 일본이다. 대륙 최상위 국가대항전인 아시안컵에서 일본은 4회 우승을 달성해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 중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만 3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은 아시안컵 성적이 초라하다. 2차례 우승으로 숙적 일본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상 3회)의 뒤를 이어 우승 횟수로는 4위다. 그나마도 2000년대 들어 치른 여섯 번의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기록한 최고 성적은 준우승(2015년) 한 번뿐이다. 우승도 사실은 아시안컵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1회(1956년)와 2회(1960년)에서 차지했는데, 당시 참가팀이 4개국뿐이었던 극초기 시절의 성과에 불과했다.

2019년 1월25일(현지시간) UAE에서 열린 2019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패한 축구 대표팀이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대한축구협회의 소극적 행보가 문제라는 지적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이 왜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이는 아시안컵을 경시하던 한국 축구계의 분위기 때문이다. 월드컵·올림픽 같은 세계대회보다 비중을 적게 두다 보니 아시안컵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중요성을 인지한 것은 최근 20년 사이다. 실제 1992년에는 실업축구 선발팀으로 예선에 나섰다가 탈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대다수 국가가 월드컵 다음으로 축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대회가 유로대회(유럽)나 코파아메리카(남미)와 같은 대륙별 국가대항전임을 생각하면 한국의 방향성은 동떨어져 있었다.

아시안컵 경시 풍조의 증거는 또 있다. 1960년 대회가 서울에서 열린 이후 무려 63년째 축구협회는 아시안컵 개최에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많은 대회가 그렇지만 개최국은 홈 이점을 등에 업고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이 월드컵 4강의 깜짝 역사를 만든 것 역시 개최국의 이점을 살렸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아시안컵도 이란·일본·호주·쿠웨이트 등이 자신들의 홈에서 챔피언에 올랐다. 국내 축구팬들도 이미 반세기가 훌쩍 지난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권위 있는 이 대회를 한국에 유치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예상치 못한 기회가 생겼다. 내년 아시안컵을 개최할 예정이던 중국이 개최권을 반납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상하이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강력한 봉쇄령을 시행 중이다. 올해 자국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청두 유니버시아드(6월)와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도 이미 연기한 상태다. 2023 아시안컵은 당초 내년 6월16일부터 한 달간 중국 10개 도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대회를 1년여 앞둔 시점에 AFC는 새로운 개최국을 급히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개최 조건을 재검토한 뒤 이르면 5월 내, 늦어도 6월 중에는 신청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력한 대안으로 동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서아시아의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정도가 꼽힌다. 호주는 내년에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 집중하겠다며 일찌감치 개최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24개국이 참가하는 대회니만큼 인프라, 지원 환경, 국제대회 경험이 충분해야 하는데 1년 안에 그걸 갖출 수 있는 국가는 손에 꼽힌다. 한국과 일본은 경기 시설이 완비돼 있고,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하다. 카타르는 오는 11월 열리는 월드컵을 위해 준비한 경기 시설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UAE도 2019년 아시안컵을 훌륭히 치렀다.

“위축된 축구 외교력 복원 위해 과감히 유치 나서야”

한국이 63년 만에 아시안컵을 개최할 수 있을지는 대한축구협회(KFA)의 의지에 달렸다. 2023년 아시안컵은 애초에 KFA 정몽규 회장 집행부에서도 유치 의사를 나타낸 바 있었던 대회다. 한국은 당시 중국·인도·태국·인도네시아 등과 유치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갑자기 같은 해 열리는 FIFA 여자월드컵 유치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유치 경쟁을 포기했다.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정 회장에게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를 제안하면서다. 하지만 정작 파트너가 돼야 할 북한의 무관심 속에 여자월드컵 또한 2019년 12월 허무하게 유치신청을 철회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아시안컵을 외면하고 여자월드컵으로 선회한 것은 남북 공동개최라는 명분도 있지만 실제로는 수익적인 면을 바라본 것이 컸다는 지적이다. 여자월드컵을 비롯해 FIFA가 주관하는 대회는 준비 과정에서 지원금을 받는다. 반면 AFC 주관 대회는 지원금 없이 스스로가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최 도시 선정을 위한 지자체, 그리고 국제대회 유치를 위한 정부와의 협의도 필요하다.

아시안컵을 유치하자는 의견이 커지고 있지만 축구협회의 반응은 아직 유보적이다. 최근 실무자 회의에서 유치에 대한 첫 논의가 있었다. 현실적 과제 등을 검토했다. 청사진은 그려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정부·지자체의 반응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고, 지자체 역시 6월1일 열리는 지방선거로 정중동 분위기다. 따라서 대회 유치의 몸통인 대한축구협회가 적극적인 의지를 천명하며 AFC의 호감을 이끌어낸 뒤 정부·지자체와 협의하는 모양새가 맞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최근 급격히 떨어진 한국 축구의 외교력 복원을 위해서도 아시안컵 유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회장은 2019년 FIFA 평의회 위원 연임에 실패했다. 세계 축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역할에서 한국은 배제된 상태다. 아시아 몫의 평의회 위원 다섯 자리에 인도·필리핀 출신 인물도 들어갔는데 한국은 고배를 마신 것이다. 뒤이은 AFC 부회장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이후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 정세를 쫓아가는 데서 뒤처지는 경우가 많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국가대표팀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외교력과 정치력은 그 반대 상황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수준에도 2016년 상반기까지 후원했던 삼성 이후에는 AFC 스폰서가 단 하나도 없다. 정 회장의 잇단 외교적 실패는 아시아 축구에 대한 공헌도가 적은 한국 축구에 보낸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축구계에서는 AFC가 대회를 1년 남겨두고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한국이 적극성을 보인다면 이미지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승산도 충분하다. 2023년 대회 개최는 여름이 불가피하다. 중동권에서 개최하려면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해 1·2월에 열어야 하는데 카타르월드컵이 올해 말 개최되기 때문에 일정을 앞당기기는 불가능하다.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이 유력 후보 조건이 된다. 지난 대회(2019년) 때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꼭 들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던 손흥민은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여전히 우승 트로피에 목말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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