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근혜와 다르다?…尹은 ‘오월의 강’ 건널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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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대통령 최초로 ‘민주의 문’ 입장,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칭찬 시기상조, 매년 와야” vs “박수 받을 통합 행보” 평가 갈려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오전 10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거행된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바로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기념사를 낭독하는 윤 대통령 앞에는 국민의힘 의원 99명과 참모진이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윤 대통령은 이날 5·18 민주화 운동을 맞아 광주를 찾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MB)과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취임 첫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바 있지만, 윤 대통령의 이날 행보를 두고는 유독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간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에게서는 볼 수 없던 여러 진풍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야당 일각에선 ‘보여주기식 쇼’라는 혹평도 제기되지만, “보수 대통령에게서 기대했던 통합 행보”라는 기대 섞인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 최초’ 이어진 尹의 5‧18 행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오전 특별 편성된 KTX 열차 등으로 광주로 이동했다. 국민의힘에선 의원 99명이 기념식에 참석했다. 코로나 확진 등 불가피한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의원을 제외하면 국민의힘 전 의원이 참석한 셈이다. 당 지도부를 비롯한 소속 의원 전원이 ‘5월 영령’을 추모하기로 한 것은 보수 정당 역사상 처음이다.

기념식장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함께 ‘민주의 문’을 통해 입장했다. 이 역시 보수 대통령 가운데 최초다. 5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만 기념식 때 이 문을 통해 기념식장에 들어왔다.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윤 대통령은 약 10분 가량 기념사를 낭독했다. 기념사는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광주 시민”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기념사 초고에는 없던 내용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광주 시민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수정‧추가한 단락이라는 게 국민의힘 측 설명이다.

기념사를 마친 윤 대통령은 마스크를 낀 채 양옆에 앉아있는 유공자 관련 인사들과 두 손을 맞잡고 앞뒤로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등도 오른손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그간 보수 정당 의원들과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전례는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전 정부에선 자율에 맡기거나 합창 행사로 갈음했다. 이에 반발한 광주 5·18 유가족회를 포함한 시민단체들은 광주 금남로에서 별도의 5·18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이준석 대표는 윤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감개무량하다”고 자평했다. 그는 기념식 후 기자들과 만나 “(의원들의 대거 참석은) 당이 2년 가까이 해왔던 호남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노력의 결정체”라며 “앞으로 저희의 이 변화가 절대 퇴행하지 않는 불가역적인 변화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논의를 위한 헌정특위 구성을 제안한 것을 두고도 “저는 긍정적”이라고 찬성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 극복하면 호남 민심 돌아설 수도”

윤 대통령의 이날 행보를 둔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광주 시민단체에서는 ‘호평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취임 첫해에는 5‧18 기념식을 찾아 ‘통합’을 말했지만, 2년 차부터는 기념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 희생자 어머니들 모임인 오월어머니회 한 관계자는 “이번 한 번 (기념식에) 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며 “말로만 추모할 게 아닌 앞으로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기념식 후 기자들과 만나 “42년 전 신군부를 대신해 ‘신검부’(新檢部)가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광주 시민들이 지켜온 민주주의의 꽃을 더욱 피우기 위해 신검부의 등장을 경계하며 야당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1기 내각과 대통령실 곳곳에 검찰 출신 인사가 대거 포진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이다. 되레 너무 빠르고, 큰 변화는 ‘쇼’로 보일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의 5년간의 행보를 보고, 그때 가서 평가가 이뤄져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임기 첫해 변화를 계기 삼아 5‧18이 ‘갈등과 차별’의 상징이 아닌 ‘통합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5‧18을 두고 제기됐던 갖은 음모론과 여야 간의 분쟁을 이번 정권에선 종식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여야 강성지지층 모두 지금까지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 오월영령을 모독하는 것으로 이 같은 갈등은 끝내야 한다”며 “특히 대통령은 당파나 이념을 초월해 국민을 통합하는 자리다. 한국의 보수가 5‧18을 품는다면 호남 민심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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