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지성주의’, 尹대통령에 부메랑 될 수도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1 16:00
  • 호수 17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 난맥상, 지성적이라고 볼 수 없어
자기 진영 내 반지성주의에 먼저 엄격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反)지성주의’ 문제를 화두로 제시했다. 그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발끈했지만, 반지성주의는 공론의 장에서는 이미 익숙한 용어다.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통해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이 휘몰아친 미국 사회를 해부하며, 포퓰리즘과 결합한 반지성주의가 어떻게 민주적 가치를 무너뜨렸는지를 분석했다.

이어 수전 제이코비는 《반지성주의 시대》에서 어째서 평범한 미국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가를 분석했다. 그는 탈(脫)진실과 가짜뉴스, 정크과학이 판치는 현실에서 탈(脫)진실(post-truth) 시대의 극복이라는 지식인들의 긴급한 과업을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문재인 정부 시절의 진영정치가 낳은 반지성주의 문제가 여러 논객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극단으로 치달은 팬덤정치가 어떻게 이성과 합리를 밀어내고 반지성주의를 확산시키는가를 우리는 지켜봤다.

윤 대통령이 반지성주의를 비판하자 박지현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비판 세력을 반지성주의로 공격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며 반격했다. 주어가 없는 원론적인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을 보면서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이 떠올랐다. 실제로 민주당은 그동안 김어준류의 진영 내 논객들과 팬덤층이 유포하는 온갖 음모론, 그리고 극단적 유튜버들이 뿌려대는 마타도어들에 의존하며 정치를 하고 선거를 치르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랬던 민주당이기에 반지성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윤석열 정부 측의 반지성주의적 사례들을 열거하기 이전에, 자기 진영 내의 반지성주의적 행태에 대해 성찰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민주주의를 선도해 왔던 민주당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진영 내부의 반지성주의에 기대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당사자가 되었다는 비판을 아프게 받아들일 일이다.

코로나19 손실 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이 5월16일 본 회의장에 입장하며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박홍근 원내대표ⓒ시사저널 이종현

지하철 성추행에서 ‘자유’ 말한 전 비서관

하지만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고,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반지성주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물론 지난 대선을 치르면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반지성주의적 선동으로부터 적지 않은 피해와 상처를 입었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과 팬덤층이 제기했던 수많은 의혹 가운데는 김건희 여사의 허위경력 문제처럼 실체가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쥴리’나 ‘동거설’ 같은 마타도어도 함께 했다. 이는 우리 정치를 오염시키는 반지성주의적 행태라 할 만했다. 아마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 문제를 거론한 데는, 자신이 대선을 치르면서 겪었던 일련의 상황에 대한 환멸과 분노 같은 마음이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생각이 거기에서 그친다면 상대 진영의 반지성주의를 반면교사로 삼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려면, ‘우리는 그럴 자격을 갖고 있는가’를 먼저 자문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윤 정부의 첫 인사에서는 반지성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를 스스로 무색하게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아빠 찬스’라는 낙인이 찍혀 국민으로부터 사실상 부적격 판정을 받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였다. 진즉에 임명을 포기했어야 함에도 눈치를 보며 시간만 끌어왔다.

여론의 비판 속에서 결국 사퇴하기는 했지만, 김성회 전 종교다문화비서관의 경우는 인사검증과 인선 자체를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그는 과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를 ‘화대’라고 표현하거나 ‘동성애는 정신병의 일종’이라는 글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사과를 하면서도 또 다른 혐오 발언을 해서 계속 물의를 빚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토록 ‘자유’를 강조했지만, ‘소수자의 차별받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의 임명은 더 심각해 보인다. 이 비서관은 지난 2012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로 근무할 때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사건’ 담당 검사로, 재판 과정에서 조작된 증거를 제출해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유씨 사건은 공안 당국의 조작 사건으로 드러난 바 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답변에서 “정직 1개월 받고 그걸로 끝나야지 그게 평생 족쇄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고 엄호했지만, 검사가 다른 것도 아니고 간첩 조작에 연루된 일은 평생 공직 진출의 족쇄가 되는 것이 옳다.

또한 윤재순 총무비서관의 경우는 2002년에 펴낸 시집에서 지하철 내 성추행을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라고 표현해 논란이 되었다. ‘여성 전용칸 법을 만들어 남자아이의 자유 박탈’이라고 한 구절도 ‘전철 칸의 묘미’라는 제목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윤 비서관의 검찰 재직 시 여성에 대한 불필요한 신체접촉, 여성 직원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의 전력도 알려졌다. 아무리 오래전의 일들이라고는 하지만, 지하철 성추행에서 ‘자유’를 말했던 대통령실 비서관의 생각은 반지성주의를 비판한 대통령의 모습과는 너무나 모순된다.

 

반지성주의는 언제나 ‘선의’로 포장돼 있어

단지 논란이 된 몇 사례만 갖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소리를 듣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 전체에서 어떤 지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5월16일까지 실시된 차관급 이상,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등 주요 인사 111명의 신상을 살펴보면 남성이 93.7%나 되고, 서울대 출신이 45.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도 43.2%나 된다. 대통령실은 ‘실력과 능력에 따른 인사’임을 내세우지만, 111명 가운데 6명만이 여성인 상황을 국민의 절반인 여성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반지성주의는 비판의 구호가 아니라 지성주의로 극복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반지성주의를 말하려면 자신과 자기 진영 내부에서 발견되는 반지성주의에 대해 엄격하고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그것이 반지성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다.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지성에 의한 수술이라고 할 만한 끈질기고 섬세한 방법으로 선의의 충동에 기생하는 반지성주의를 잘라내야 한다.” 반지성주의는 언제나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니 그것을 잘라내는 일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창궐하는 반지성주의를 물리치는 일은 우리 시민들의 몫이기도 하다. 거기에 무슨 진영과 정파의 구분이 필요하겠는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