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 출입문 열쇠는 美 손에
  •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유라시아투르크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1 12:00
  • 호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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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두 나라의 ‘쿠르드족 지원’ 이유로 반대 어깃장
설득 나서는 미국에 쿠르드는 또 희생양 될까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불안감을 느낀 북유럽 ‘중립국’ 핀란드와 스웨덴이 드디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결정했다. 당초 핵무기까지 들먹이며 으름장을 놓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막상 현실로 닥치자 다소 무기력함을 나타냈다. 자신의 건강 악화에 기인한 것인지, 러시아군의 지나친 출혈을 막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푸틴은 두 나라에 나토 군사시설이 전면 배치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를 다는 데 그쳤다. 핀란드와 스웨덴에 군사기지나 미사일 등 러시아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시설이나 무기를 배치하지 않는 한 대항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1949년 나토에 가입한 또 다른 북유럽 국가 ‘노르웨이 방식’이다.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나토의 군사시설이나 병력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데, 당시 소련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노르웨이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나토 가입을 용인한 바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021년 6월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AP 연합

터키의 아킬레스건 된 쿠르드족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해가며 그토록 막고자 했던 나토의 동진(東進)은 기세등등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푸틴에 뜻밖의 ‘우군’이 나타났다. 나토 회원국이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중재까지 자처했던 터키가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그 이유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터키 안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PKK(쿠르드노동당)를 지원해 왔다는 것이다. 더욱이 스웨덴 의회에는 쿠르드족 의원이 6명이나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터키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 1순위로 PKK를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쿠르드족은 인구 3500만 명에서 최대 5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터키·이란·이라크·시리아 등 중동 4개국에 흩어져 거주한다. 쿠르드인들은 대부분 험난한 산악지대에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고 있다 보니 정확한 인구 집계가 어렵다. 대략 1500만~2000만 명 정도 되는 인구가 터키 동부 지방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체 쿠르드족의 30%에 해당할 정도로 최대 규모다. 이들은 역사상 한 번도 제대로 된 독립국가를 이룬 적이 없는 불행한 민족이다.

터키에 쿠르드족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쿠르드족이 독립운동을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편을 들었던 오스만제국이 패전국이 되자, 그 지배하에 있던 쿠르드족은 드디어 독립국가 수립의 기회를 잡는 듯했다. 영국이 오스만제국 해체를 위해 쿠르드족에게 독립을 약속하고 그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문제는 영국의 배신이었다. 영국은 석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영국은 자신들이 위임 통치하던 메소포타미아 쿠르드족 거주지에서 석유가 나기 시작하자 1922년 9월 쿠르드족이 세운 쿠르디스탄을 1924년 7월 이라크에 영토로 넘겨주고 말았다. 터키 동부 지역에서 1927년 10월 아라라트 쿠르드공화국이 선포되었지만, 이 역시 1930년 9월 터키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다. 영국은 쿠르드족보다 터키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터키의 재점령을 묵인한 것이다.

1923년 출범한 터키공화국은 ‘터키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쿠르드인 동화 정책을 표방해 왔다. 쿠르드어 사용, 전통의상 착용 등을 금지하고 문화 탄압을 강화했다. 그러자 터키 정부의 동화 정책에 반발한 쿠르드족은 결국 1978년 자신들만의 무장단체 PKK를 설립했다. PKK는 이후 꾸준히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폭탄 테러, 폭력 시위를 자행해 오고 있다. 터키 입장에서 PKK는 자국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 테러단체이며, 매년 터키 남동부 지역에서는 정부군과 PKK 간 유혈 충돌로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터키 정부의 가장 위협적인 숙적 PKK를 지원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문제를 터키가 그냥 넘어갈 리 만무하다. PKK는 유럽과의 관계에서 오랜 시간 동안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은 터키의 회원 가입 문제를 놓고 쿠르드인의 인권 상황을 지적하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왔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 터키는 이번 기회에 전략적 차원에서 유럽과 미국의 쿠르드인에 관한 태도를 말끔히 정리하고자 할 것이다.

 

미국·유럽, 결정적 순간마다 쿠르드 궁지에

나토 가입은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터키의 어깃장이 힘이 있는 건 그 때문이다. 더구나 터키의 외교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다른 회원국으로 불길이 번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이 논란의 해결 열쇠도 미국이 쥐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유리한지, 성난 문제아 터키를 방치하는 것이 유리한지 저울질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터키 편을 들어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최종 방어선인 터키를 미국과 서방국가가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터키는 러시아로부터 S-400을 구입하는 등 때때로 미국을 자극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정적 순간이면 미국은 항상 ‘어쩔 수 없이’ 터키 손을 들어줬다.

이는 2018년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이 터키 때문에 쿠르드족을 배신했던 사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미국은 당시 아사드 정권과 IS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쿠르드족에 무기를 지원하며 미국을 대신해 대리전을 치르도록 했다. 이라크전 이후 지상군 파병에 부담을 느끼던 미국에 아사드 정권과 대립하는 쿠르드족은 꽤 좋은 파트너였다. 쿠르드족은 미국을 등에 업고 ‘독립’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터키가 시리아에 거점을 두고 있는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호부대(YPG)’를 국경에서 몰아내겠다고 선포하면서 쿠르드인의 꿈은 다시 한번 산산조각이 났다. YPG와 PKK의 연대를 의심하는 터키의 군대가 국경을 넘어 침공해 들어왔고, 이때 미국은 결국 터키를 위해 침묵했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성사될 수 있을까. 미국은 과연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일단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유럽 안보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터키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괜찮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미국으로선 핀란드·스웨덴도 터키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쿠르드족의 희생이 예상된다. 북유럽의 PKK 지원이 차단되는 방식으로 미국은 쿠르드족보다는 터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큰 탓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안보 전쟁이 도미노처럼 퍼지는 효과를 낳았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매번 희생돼왔던 쿠르드족은 이번에도 미국과 터키의 물밑 협상에 의해 또 어떤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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