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스텝 꼬이는 김정은 도발 행보
  •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0 13:00
  • 호수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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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군중 동원 탓 감염 확산’으로 金 리더십 위기 맞을까…민심 돌리려 도발 수위 높일 수도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기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박 3일 방한으로 서울과 워싱턴은 물론 평양의 외교안보팀들이 부산해졌다. 윤석열 정부 출범 11일 만에 이뤄진 전례 없는 조기 한·미 정상회담인 데다 한반도와 주변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 이어 북한의 코로나19 대확산 사태까지 터진 김정은의 향후 행보는 핵심 뇌관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짓게 될 올가을 공산당대회를 앞두고 코로나 봉쇄가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고전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딜레마에 빠져있다.

바이든의 방한으로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복원의 모멘텀을 조기에 확보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 추진 등에서 미국 측과 크고 작은 불협화음을 내면서 삐걱거렸던 걸 상당 부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는 게 국가안보실 측의 자체 평가다. 이를 통해 한·미 공조에 기초한 대북정책 추진이 가능해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마스크를 쓰고 평양시 약국들을 찾아 의약품 공급 실태를 직접 파악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미 경제협력 기조 속 北 동향 예의주시

미국 측은 한·미 정상 간 만남에서 핵과 미사일 등 북한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데 집중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수위를 조절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한·일 순방이 안보동맹 강화는 물론 경제협력 심화에도 무게가 실려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방한 기간 중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관례적으로 방문했던 비무장지대(DMZ)를 바이든 대통령이 찾지 않은 건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백악관은 바이든의 방한 일정을 사전 설명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많은 투자와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한국의 재계 지도자들과 만날 것”이란 점에 무게를 실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연초부터 잇단 미사일 도발에 나서고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노골적인 핵공격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 때문에 한·미 양측의 안보팀은 바이든의 서울 체류 기간 중 북한의 핵 도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발사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바이든의 서울 도착 이틀 전인 5월18일 브리핑을 통해 “ICBM을 포함한 미사일 발사 준비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준비 상황 등을 감안해볼 때 7차 핵실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미사일 도발의 경우 어느 때라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한·미 양측은 바이든 방한 기간 중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 있을 경우에 대비한 플랜B를 마련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는 예정된 일정을 긴급 취소하는 것은 물론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 지하벙커에서 한·미 정상이 공동 대응을 통해 연합방위태세를 과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가장 큰 관심은 북한 정세에 쏠렸다. 당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5월 들어 ICBM급을 비롯한 다양한 미사일 도발을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보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마뜩찮은 표현이지만 북한이 취임 초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군사적 도발로 이른바 ‘길들이기’를 할 것이란 측면에서다. 김정은이 직접 공개적으로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7차 핵실험 가능성도 제기됐다. 4월25일 김 위원장은 조선인민혁명군 창립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ICBM 등을 한자리에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큰 변수가 터졌다. 2년 넘게 철통 차단으로 코로나19 청정지대임을 주장해온 북한에 오미크론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5월12일 코로나19 발생 사실을 처음 관영매체를 통해 알린 북한은 연일 확진자 수 증가 상황과 사망자 숫자 등을 공개하며 방역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검진 장비나 시스템조차 갖춰지지 않아 확진자란 표현 대신 열이 있는 사람이란 의미의 ‘유열자’란 용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2500만 명 인구 중 수백만 명이 확진되는 국면인데도 발표된 사망자는 수십 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축소·은폐 의혹도 불거진다.

4월25일 김정은 위원장이 ‘항일빨치산’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여한 군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시진핑·푸틴도 자국 상황 여의치 않아

북한은 코로나 사태가 김정은 리더십의 위기로 치닫지 않을까 고심하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이 마스크를 겹쳐 쓰고 평양의 약국을 방문해 약품 부족과 위생상황 등을 질책하는 모습이 관영TV로 중계된다. 노동당 핵심 간부들을 모아 회의하면서 “비적극적인 태도와 해이성”을 질타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하지만 화살은 김 위원장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코로나 백신 지원을 거부한 김정은은 연일 대규모 군중집회와 행사를 벌여왔다.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에서 김정은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섣부른 선언을 하기도 했다. 4월25일 열병식에는 각 지방에서 군인과 학생 등을 동원해 전역에서 폭발적 코로나 확산이 벌어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북한 내부 상황은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을 깊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로 체제를 결속시키고 어수선한 민심을 추스르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인민은 코로나에 시달리는데 핵과 미사일에만 집착한다”는 비판 여론이 제기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코로나 관련 대북 지원 제안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고심거리다. 북한이 일단 중국을 통해 급한 치료약과 백신, 진단키트 등을 조달한 정황이 파악되고 있지만 한계가 따를 공산도 있다. 코로나 사태가 그동안 냉랭했던 남북관계에 뜻밖의 변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정부 출범 초부터 일렁이는 한반도 정세에 남북한은 물론 주변국의 셈법은 복잡해졌다. 이인삼각 경기로 비유하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보폭을 맞추며 출발한 상태지만, 김정은이 시진핑·푸틴 등과 어떤 행보를 할 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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