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예종 무용원, 3000만원에 시험문제 사전유출 의혹
  • 공성윤·조해수·김현지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1 07:30
  • 호수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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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시험문제 적중한 3000만원짜리 ‘족집게 과외’...“돈 오간 건 맞지만 ‘우연의 일치’”
출제·채점위원인 한예종 교수 연루 의혹 "시험문제 사전 유출은 있을 수 없는 일"

국내 예술인의 최고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시험문제 유출 대가로 금품 수수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간 각종 비리로 홍역을 치러온 한예종이 또 시비에 휘말릴 전망이다. 의혹 당사자들은 돈을 주고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시험문제 유출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한예종 무용원 창작과는 2019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위해 2018년 9월30일 1차 실기시험을 치렀다. 해당 시험은 특정 물건을 제시한 뒤 이를 이용해 즉흥 무용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해 제시된 물건은 ‘분리수거용 봉투’였다. 이 물건의 정체는 무용원 지원 학생들에겐 시험문제나 마찬가지다. 한예종 관계자는 “시험문제는 시험 당일 아침에 결정된다”며 “시험 전에 외부로 유출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시사저널 취재 결과, 1차 시험을 앞두고 문제가 외부로 흘러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A씨 아들은 예술고등학교에서 무용과를 졸업한 뒤 한예종 무용원 창작과 입학을 준비 중이었다. 당시 창작과 정원은 10명, 수험자 인원은 59명이었다. 경쟁률 5.9대 1로 무용원 전체 평균 경쟁률(4.4대 1)보다 높았다.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본관 건물ⓒ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서초동 캠퍼스 본관 건물ⓒ시사저널 박정훈

“시험문제 당일 결정”인데…2주 앞두고 적중

A씨의 지인 B씨는 시사저널에 “(1차 시험 전인) 2018년 9월 중순에 A씨 아들이 서울 서초동 한 스튜디오에서 검은색 봉투로 무용 연습을 하는 걸 직접 봤다”고 말했다. ‘봉투’는 나중에 실제 1차 시험에 나온 문제다. A씨 아들이 시험 전에 이미 문제를 알고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B씨는 기자에게 무용 동작을 흉내내 보이며 그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무용 연습은 남성 강사 C씨의 지도로 이뤄졌다고 한다. C씨는 한예종 출신으로, 당시 경기도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무용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B씨는 “시험 문제를 유출한 사람은 C씨”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예종 출신 무용가 역시 C씨와 함께 A씨 아들이 연습을 했던 서초동 스튜디오를 언급하며 “입시 비리가 있었다는 얘기가 숱하게 들렸다”고 귀띔했다. 

이후 A씨 아들은 1차 시험에 합격했다. 2차 실기시험은 2018년 10월28일이었다. 2차만 통과하면 최종 합격이었다. A씨는 잘못된 일인 줄 알면서도 돈을 쓰기로 했다.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아들이 당시 4수째였다. 다른 데를 가려고 하지 않고 한예종만 고집했다”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금품 제공을) 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B씨에게 3000만원을 이체하며 “서울 서초동의 한 놀이터로 가면 남자가 나올 텐데 그에게 돈을 주라”고 지시했다. B씨는 지시대로 3000만원을 현찰로 뽑은 뒤, 2018년 10월13일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약속 장소에 나온 사람은 다름아닌 C씨였다고 한다. B씨와 C씨는 인사를 나눈 뒤 돈을 주고 받았다. 본지는 돈의 이체와 출금 기록을 모두 확인했다. 이후 C씨는 계속 A씨 아들을 상대로 수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예종 부정 입학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A씨 아들이 2차 시험에 떨어졌고, C씨는 시험 직전에 돈을 돌려줬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돈을 받고 시험문제를 유출한 행위는 불법 소지가 있다. 사립학교 교사는 사립학교법에 의한 교원으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이다. 금품을 받은 뒤 입시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했다면 부정청탁에 따른 직무 수행으로 간주된다. 

특혜 제공 없이 돈을 곧바로 돌려줬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C씨가 돈을 반납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은 1차 시험의 문제를 유출한 이후다. 이는 처벌 감면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올 6월에는 조선대 무용과 교수가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바 있다. 채용 명목으로 제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한 의혹과 관련해서다.

C씨는 입시 이후 의혹이 제기되자 소속 학교에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C씨에게 수차례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했다. 한편 A씨는 “돈을 준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에 신경 좀 써 달라는 취지에서 돈을 줬을 뿐, 한예종 합격이나 시험문제 유출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C씨는 시험문제를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A씨는 “입시를 돕는 무용강사는 매번 시험문제를 예측하고 수업을 한다”며 “수업 과정에서 다른 물건도 썼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껏 한예종 시험문제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물건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한예종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는 무용원 기출문제를 전부 살펴본 결과, 봉투와 관련된 물건은 없었다. 사건 직전인 2018학년도에는 ‘본인 가방 속 오브제’란 주제가 출제됐다. 그 외에는 ‘바람’ ‘지속과 멈춤’ ‘비오는 날의 기억’ 등 추상적인 주제들이었다.

이와 관련해 취재 과정에서 한예종 무용원 D교수의 개입 가능성이 거론됐다. 본지가 입수한 ‘한예종 시험위원 위촉 명단’ 공문에 따르면, 1차 시험문제(분리수거용 봉투)는 D교수와 외부위원 등 2명이 출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D교수는 채점위원도 맡았다. 그는 C씨와 사제 관계로 작품을 함께 연출한 바 있다. 더군다나 당시 시험 이후 C씨는 한예종 겸임교수로 재취업했고, 출제 외부위원은 정교수로 부임했다.

 

“연습 대상이 검은 봉투였다는 건 우연”

D교수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시험문제는 시험 당일 아침에 출제위원이 모여 결정하기 때문에 사전 유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험생이나 강사들은 여태껏 출제됐던 문제를 갖고 응용해 연습을 한다”며 “그 연습 대상이 검은색 봉투였다는 건 우연”이라고 주장했다.

한예종은 오랜 기간 입시·채용 비리로 몸살을 앓아왔다. 2012년 한예종 음악원 교수 이아무개씨는 수억원을 받고 자신이 가르친 입시생들을 부정 입학시켜 구속됐다. 또 2014년에는 김현자 전 한예종 무용원장이 교수 채용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그해 한예종은 ‘학교비상쇄신위원회’를 만들며 자체 개혁에 나섰다. 그래도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2018년 국회에 따르면, 2016년 한예종 직원으로 채용된 사람이 면접위원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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