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글로벌 경제위기, 창업주 정신으로 돌파하려는 재계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2.08.30 10:00
  • 호수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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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롯데의 요람인 창업주 기념관 가봤다

기업의 창업주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이 재계에서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반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 발전에 기여한 국내 대기업 창업주들의 족적은 역사적 산실 그 자체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재확산과 글로벌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대란에 직면한 재계는 창업주 정신을 되새겨 위기 극복에 나서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업들이 창업주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창업주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기업)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유산을 지켜내고, 지속 가능하게 하는 건 산 자의 몫이다.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었던 창업주들을 통해 ‘도전정신’과 ‘근본’을 잃지 않겠다는 기업들의 의지가 깃든 곳이 바로 창업주 기념관이다. 시사저널은 최근 건립된 창업주 기념관들을 직접 찾아가 봤다.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37-38번지에 위치한 장원 기념관. 장원 기념관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창업자 장원(粧源) 서성환(1924~2003) 선대 회장의 일대기 기록물을 전 시해 놓은 공간이다. 서성환 회장이 사용했던 소품과 아모레퍼시픽 과거 자료ⓒ시사저널 박정훈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37-38번지에 위치한 장원 기념관. 장원 기념관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창업자 장원(粧源) 서성환(1924~2003) 선대 회장의 일대기 기록물을 전 시해 놓은 공간이다. 서성환 회장이 사용했던 소품과 아모레퍼시픽 과거 자료ⓒ시사저널 박정훈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37-38번지에 위치한 장원 기념관. 장원 기념관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창업자 장원(粧源) 서성환(1924~2003) 선대 회장의 일대기 기록물을 전 시해 놓은 공간이다. 서성환 회장이 사용했던 소품과 아모레퍼시픽 과거 자료ⓒ시사저널 박정훈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37-38번지에 위치한 장원 기념관. 장원 기념관은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창업자 장원(粧源) 서성환(1924~2003) 선대 회장의 일대기 기록물을 전 시해 놓은 공간이다. 서성환 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시사저널 박정훈

중앙정보부도 탐낸 아모레퍼시픽 영업지도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인 고(故)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의 장원 기념관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부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면, 오래된 2층 단독주택과 다를 게 없다. 아모레퍼시픽은 서 회장이 살았던 자택을 개조해 기념관을 만들었다. 1973년 11월 준공된 서 회장의 자택은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남동은 공동묘지였다. 1960~70년대 택지 조성사업이 시작되면서 지어진 게 서 회장의 집이라고 한다.

장원 기념관의 건물 연면적은 164평이며, 대지 면적은 492평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서 회장이 생전에 생활했던 공간에 7개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서 회장이 사용했던 서류가방과 안경, 구두 등 각종 소품이 그대로 있었다. 그의 과거 집무실도 그대로 재현해 놨다. 아울러 서성환 회장이 아모레퍼시픽을 일구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한남동 장원 기념관은 아름다움으로 세상에 이바지하고자 했던 서 회장의 염원이 담긴 공간”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서 회장의 집착은 그의 호인 장원(꾸밀 粧·근원 源)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해 세계와 소통하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한국 화장품 업계를 이끌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화장품 한류의 중심에 서있는 아모레퍼시픽의 초석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 회장은 1945년 해방을 계기로 태평양화학공업사(현 아모레퍼시픽)를 창립한 후 오직 화장품만 바라봤다. 당시 날림으로 만들었던 화장품에 규격화된 디자인과 상표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 비춰보면 혁신에 가까웠던 국내 최초의 화장품 연구실도 세웠다. 1964년도에는 전통적인 유통구조를 탈피한 제3의 유통 경로인 방문판매를 도입해 크게 성공했다.

특히 전국에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방문판매 조직이 만든 영업지도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도 탐낼 정도였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판매망 구축을 위해 전국을 행정구역에 따라 바둑판처럼 나누어 구역을 정하고, 가정집들의 세대원 숫자까지 일일이 조사했다. 이처럼 영업지도가 촘촘하고, 면밀했던 까닭에 중앙정보부에서 역으로 아모레퍼시픽에 지도를 공유해 달라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이처럼 독보적인 방문판매 조직은 오늘날 아모레퍼시픽의 성장 배경이 됐다.

장원 기념관은 ‘여성’ 역시 서 회장의 창업 정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아모레퍼시픽의 모태는 어머니 윤독정 여사가 제조해 판매했던 동백기름에서 시작됐으며, 여성이 키운 기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소외받던 시절 서성환 회장은 그 누구보다 여성 일자리 창출에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아모레퍼시픽 방문판매원은 도입 초기 전쟁 미망인의 생계수단을 제공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오늘날 아모레퍼시픽이 여성과 관련된 각종 학술대회와 장학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건 창업주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신격호 회장의 흉상ⓒ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1995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신격호 회장ⓒ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롯데제과의 변천사ⓒ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1921~2020)의 일대기와 롯데그룹의 역사를 최첨단 IT 기술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시사저널 박정훈

신격호 기념관, 최첨단 IT 기술로 좀 더 생생하게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신격호 기념관은 장원 기념관과 대조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신격호 기념관은 지난해 신 명예회장 탄생 100주기를 기념해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마천루(지상 123층·지하 6층)라고 불리는 잠심 롯데월드타워 5층에 마련됐다. 키오스크와 홀로그램, 인터랙션 등 다양한 IT 기술을 도입해 신 명예회장의 도전정신과 경영이념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키오스크(무인 단말기)를 통해 전시된 물건이나 사진에 얽힌 일화를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데, 그만큼 생동감이 넘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라이브 드로잉의 대가’로 불리는 김정기 작가가 롯데의 50년 발전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대형 드로잉도 눈길을 끈다. 롯데 칠성사이다를 들이켜는 사람들과 1989년 국내 최초 패스트푸드 롯데리아 1호점 개점식, 1982년 롯데 자이언츠 프로야구단 창단식 등 다양한 장면을 구현했다. 벽면 큐알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면 김정기 작가가 그린 롯데 50년사 그림을 다운받아 볼 수도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거대 기업을 일궈냈다. 껌을 파는 식품업으로 시작해 유통·관광·석유화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룹을 만들어냈고, 70년 가까이 ‘왕좌’에서 그룹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현역에서 가장 늦게까지 활동한 1세대 기업인으로도 꼽힌다. ‘실패를 모르는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한국 기업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현재 신격호 기념관은 임직원과 귀빈 등을 대상으로만 공개하고 있지만 9월말부터 일반 관람객을 대상으로도 개방할 계획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최첨단 전시 기술을 접목해 만든 이 기념관에서는 신격호 명예회장의 일대기와 한국 경제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며 “일반인도 손쉽게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념관을 만들었다. 단체 예약 관람, 도슨트 서비스 등 다양한 운영 방안을 계획 중이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37-38번지에 위치한 장원 기념관ⓒ시사저널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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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5층 신격호 기념관ⓒ시사저널 박정훈

반기업 정서 속에서 창업주 재조명 필요성 대두

재계에서는 창업주들이 역사적으로 재평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다수 창업주가 생전에 각종 사건·사고와 비리에 휘말려 대중에게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아직까지 창업주 이병철 선대 회장의 기념관을 건립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제일모직 옛터에 조성된 대구창조캠퍼스에 삼성그룹의 역사를 알리는 기념관 ‘삼성존’을 열 계획이었지만,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전면 중단됐다.

창업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부각되면서, 경제 발전 과정의 공로가 축소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 창업 1세대들은 대부분 고인이 됐다”며 “한국 경제와 기업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창업주들은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에 대한 대중의 반감도 크기 때문에 이런 기념사업 등을 통해 창업주를 존중하고, 재조명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왜 기업은 지금 '창업주 정신'을 소환하나]

“집 나간 ‘초심’과 ‘도전정신’ 되찾아라”

[르포] 글로벌 경제위기, 창업주 정신으로 돌파하려는 재계

[인터뷰]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창업주 정신 되살리는 ‘사회적 가치’ 만들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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