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정신 되살리는 ‘사회적 가치’, 기업이 만들어내야”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2.08.30 10:00
  • 호수 17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산업 생태계 경쟁력 만드는 것도 기업의 역할”

대한민국 1세대 기업들의 목표는 ‘사업보국’이었다. 지금 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창업 이념에는 국가 발전에 대한 의지가 들어있다. 어려운 시기에 한국 경제를 일으키고, 국민의 삶을 끌어올리는 것은 기업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기업들은 다시 위기를 마주했다. 한국 경제에는 비상등이 켜졌고 대외 경제 상황도 불투명하다. 시대 변화에 맞춰 기업의 역할도 확장됐다. 경제적 가치 창출만으로는 기업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 국가경제에 활력을 주고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까지 고려하는 사회적 존재가 돼야 한다. 또 다른 의미의 ‘사업보국’. 기업들이 시계를 돌려 창업주의 이념을 되새기는 배경이다.

기업의 창업주 정신은 왜 중요할까. 그리고 그것을 유산 삼아 새로운 원동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할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업가 정신은 창업주 정신과 통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한국경영학회장인 한상만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를 만났다. 한국소비자학회, 한국마케팅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기업사의 흐름을 연구해온 그는,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 생태계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지속가능경영포럼 이사장도 맡고 있다. 경영학회는 올해 7월 기업가 정신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함께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 전국 확산 발대식’을 개최했고, 최근 ‘신(新)기업가 정신 협의체’를 구축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도 협력을 제안했다. 그만큼 기업가 정신은 올해 경영학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다.

한 회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어떻게 내놓느냐에 따라 3년 이내에 살아남는 기업과 도태되는 기업으로 갈릴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기업의 힘이 정부의 힘보다 커진 지 오래다. 단기적으로는 복합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업 모두가 ‘선진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향후 100년 동안 어떻게 끌고 나갈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기업들이 창업주 정신을 꺼내든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창업주 정신을 기업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좋은 접근이지만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지, 기업이 속한 산업 생태계가 경쟁력을 갖추는 데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창업주 정신의 어떤 것도 되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기업들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기업들이 마주한 위기를 어떻게 보나.

“기업사에서 지난 60년 동안 이 정도 위기는 없었다. ‘복합적 위기’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이 촉발됐고, 세계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졌다. 미·중 충돌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도 리스크로 작용한다. 디지털 대전환, ESG 대전환 등 ‘대전환 시대’에도 살아남아야 한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 차원의 큰 전략이 필요하다. 향후 3년 이내에 한국 기업은 살아남는 기업과 도태되는 기업으로 갈릴 것이다.”

경영학회는 한국 기업들이 혁신하기 위한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무엇이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는 세 단어가 들어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한 도전의식, 창의 정신, 혁신이다. 한국은 지난해 공식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기업의 힘이 정부의 힘보다 커진 지는 오래됐다. 선진국 대한민국이 어떻게 나아가는지는 기업들이 미래 전략을 어떻게 그리는지에 달렸다. 단기적으로 ‘복합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업 모두가 향후 100년간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선진국 기업 경영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관점에서 올해 기업가 정신은 특히 중요하다. 기업들이 창업주 정신을 부각하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1960~70년대 주요 기업의 창업이 이뤄지던 시기를 기업가 정신이 가장 높았던 시기라고 본다. 특히 1세대 창업주들이 보여준 기업가 정신은 무엇이 다른가.

“1세대 기업이 지닌 차별화된 기업가 정신은 ‘사업보국’이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정신, 그것이 삼성,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같은 1세대 기업들에 담겼다. 창의 정신과 혁신 정신을 중심으로 기업가 정신의 정의가 바뀌면서 사업보국과 같은 가치는 일부 퇴색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복권 이후 첫 현장 경영에서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정신을 되새겼다. 최근 흉상을 설치하거나 창업주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등 창업주 정신을 강조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정신’은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지향점을 국가에 두고,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사회에 환원한다’는 신념 같은 기업가 정신을 새겼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인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고, 종업원들에게 지분을 나눠줬다. 그것이 ‘유일한 정신’이다. 지금의 유한양행에 이런 점들이 형식적으로 남아있지만, ‘유일한 정신’은 껍데기만 남아있다. 창업주 정신을 되살려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1세대 창업자들은 ‘사회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신념으로 뒀다. 지금은 기업이 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창업주 정신을 새로운 원동력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할까.

“창업주 정신을 불러오는 것은 좋다. 새로운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창업주를 기념하고 흉상을 제작하는 것만으로 창업주 정신을 소환할 수는 없다.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사회 간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또 ‘우리 기업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업뿐 아니라 구성원, 협력사가 다 같이 발전하는 ‘공유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메커니즘은 창업주 정신을 유산으로 삼아 도약할 때 작동한다. 기업이 속해 있는 산업 생태계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기업의 과제다. 이 전제 없이는 창업정신의 어떤 것도 되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창업주 정신을 잘 지켜가는 대표적인 기업은 어딘가. 기업이 창업주 정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나.

“‘제철보국’으로 시작한 포스코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7개 핵심사업에 대한 목표를 선언했다. 그룹의 핵심사업인 철강의 경쟁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비철강 부분인 2차전지 소재사업을 통해 미래 소재산업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친환경 미래 소재 대표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철강산업을 통해 나라에 기여한다는 정신을 가졌던 포스코는 그 정신을 확장해 산업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삼성에도 ‘이병철 정신’이 남아있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의 메기론(치열한 경쟁이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이론)을 기업 경영에 응용했고,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을 통해 창업주 정신을 확장하며 삼성을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옛날 것을 파먹기만 해서는 안 된다. 창업주 정신을 기반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혁신을 해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다른 나라의 기업가 정신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혁신, 도전, 창의라는 기업가 정신의 요소는 같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리워드가 아주 확실하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을 때 그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진다.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창업주 정신처럼 사회와 국가에 대한 기여를 중시한다. 지금의 2030세대들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을 보완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을 마주한 이 세대는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주인의식이 다른 세대보다 강하다. 자기만 발전하는 기업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창의성과 도전, 혁신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新)기업가 정신은 뭔가. 최근의 기업 경영은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적 책임에 방점이 찍힌다. 시대적 화두에 맞게 기업들이 변화하고 있다고 보나.

“지금 ESG 경영 등으로 불리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경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쉽게 말해 기업뿐 아니라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잘되는 것이 사회가 잘되는 것이고, 사회가 잘되면 기업이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가 지금은 깨졌다. 이걸 복원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회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을 ‘사회공헌’이라고 부르면서 별도의 사업으로 떼어놓고 있다. 사회공헌이 기업의 경영모델 안으로 들어올 때 파급력이 커지고,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기업은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40년 먼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지만 선진국으로서의 경영에 대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잃어버린 30년’에 신음했다.”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올해 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창업주 30여 명을 배출한 경남 진주의 지수초등학교를 K기업가정신센터로 구축했다. K기업의 역사를 알리고 기업가 정신 발굴을 위한 교육을 하겠다는 취지인데.

“1세대 기업의 국가에 대한 기여를 보여주고, 창업주 정신을 되살리는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교육은 기업가 정신을 형성하는 한 축이 될 수 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으면 한다. 단순히 창업주 정신을 알리고 가르치는 데 머물지 말고,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연계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경영학회가 기업가 정신 전국 확산사업을 전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지난해 전경련과 함께 기업가 정신 전국 확산사업 MOU를 맺고, 올해 발대식을 했다. 지역별로 1세대 창업주들의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사업이다. 울산·경남에서는 LG와 GS, 대구·경북에서는 대우, 부산에서는 포스코, 광주·전라에서는 금호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을 연구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경영학회의 지회별 주요 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업가 정신 사례경진대회도 연다. 1세대 기업뿐 아니라 디지털 대전환을 선도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함으로써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발굴하고자 한다.”

최근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협력들도 눈에 띈다. 지난 5월에는 대기업과 유니콘 기업이 신기업가 정신을 공동 선포하고 관련 협의체를 발족하기도 했다.

“미국에는 CEO들이 모인 BRT(Business Roundtable)라는 단체가 있다. 2019년 회의에서 기업의 목적을 새롭게 선언하고, 신기업가 정신을 강조했다.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 지난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대기업과 유니콘 기업을 포함해 출범시킨 신기업가정신협의회(Entrepreneurship Round Table·ERT)다. 경영학회의 올해 목표 중 하나도 신기업가 정신의 확산이다. 한국의 산업 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동일한 목적을 지향한다. 그래서 올해 10월 열리는 제1회 대한민국 경영자원탁회의를 한국경영학회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학계를 대표하는 경영학회의 K-BRT와 경영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의 ERT가 협력해 실무적·학술적인 보완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것이 목표다. 경영학회 지역 지회와 지역 상공회의소를 통해 신기업가 정신을 교육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하기 위한 지역 특화 모델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기업가 정신을 높이고 기업들이 마주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현 정부의 과제는 무엇인가. 정부가 방향을 잘 잡고 있다고 보나.

“경영학회는 정부에 세 가지 제언을 했다. 첫 번째는 혁신적 규제 개혁이다. 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달라는 취지다. 두 번째는 기업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파트너십의 관계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역 주도의 신성장동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제언했다. 정부가 친(親)시장, 친기업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정부는 아직 바꾼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친시장·친기업 정책을 통해 어떻게 양극화를 해소할 것인가, 어떻게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야 국민이 힘을 실어줄 것이다. 기업만 위한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경영모델이 나와야 하고, 그것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경영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국가적인 차원의 논의와 교육도 필요하다.”

 

[왜 기업은 지금 '창업주 정신'을 소환하나]

“집 나간 ‘초심’과 ‘도전정신’ 되찾아라”

[르포] 글로벌 경제위기, 창업주 정신으로 돌파하려는 재계

[인터뷰]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 “창업주 정신 되살리는 ‘사회적 가치’ 만들어내야”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