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후계구도 대해부 ③CJ그룹] 아직도 갈 길 먼 CJ 승계 구도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11.08 07:35
  • 호수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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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올리브영 IPO 연기되면서 4세 승계 ‘급제동’
CJ그룹 “자금 상황 나쁘지 않아…내년 이후 재추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의 일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2010년 눈길을 끄는 발표를 했다. 창립 60주년을 맞는 2013년까지 그룹 매출 38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2020년까지 그룹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넘어서는 ‘그레이트 CJ’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3년간 CJ그룹 매출은 9조원대에서 17조원대로 외형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회장은 2013년 7월 수천억원대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과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을 중심으로 그룹경영위원회가 발족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선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서 대규모 투자나 M&A(인수합병), 신규 사업 진출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이런 흐름은 2016년 8월 이 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날 때까지 계속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CJ그룹의 연결 매출은 35조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레이트 CJ’ 달성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왼쪽부터)이재현 CJ그룹 회장,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 ⓒ시사저널 최준필

이재현 회장 건강 악화로 승계 작업에 속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회장의 건강마저 최근 악화되고 있다. 희귀 유전병인 샤르코라마리투스(CMT)를 앓고 있는 데다, 신장 이식수술 부작용으로 체력이 극도로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때 70~80kg까지 나갔던 몸무게는 현재 40kg대까지 줄어들었다”면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부 활동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와 딸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가 최근 승진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선호씨는 2013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해 바이오사업팀과 식품전략기획 1부장 등을 맡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9년 불미스러운 일로 일선 업무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1월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 담당(부장급)으로 복귀했고, 지난해 말 정기인사에서는 임원급인 식품전략기획1담당 경영리더로 승진했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성장전략을 수립하고 미래 글로벌 식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업무를 맡았다.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 선호씨는 미주사업 대형화의 기반을 구축하는 등 식품사업의 구조적 경쟁력 강화에 그동안 힘써왔다. 미국 슈완스(Schwans) 법인과 CJ푸드 법인의 통합이 대표적이다. 2020년에는 ‘비비고’와 미국프로농구(NBA) 구단 LA 레이커스의 글로벌 마케팅 계약 체결을 주도하기도 했다.

경후씨 역시 최근 몇 년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경후씨는 2011년 지주사인 CJ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2017년 3월 CJ ENM 상무대우로 승진했고, 3년 만인 2020년 부사장 대우에 올랐다. 현재는 직급 통합에 따라 이선호 경영리더와 마찬가지로 경영리더로 변경됐다.

문제는 이들 남매가 갖는 그룹 내 영향력이 아직 미미하다는 점이다. CJ그룹은 현재 지주회사인 CJ(주)를 통해 CJ제일제당, CJ ENM, CJ푸드빌, CJ CGV, CJ올리브네트웍스, CJ올리브영 등 핵심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재현 회장이 지주회사인 CJ(주) 지분 42.0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선호·경후 남매는 각각 2.99%와 1.33%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4우선주(신형우선주)를 대거 매입했다. 하지만 승계를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보유한 CJ 지분을 어떻게든 넘겨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C&I레저산업과 CJ올리브영의 역할에 주목해 왔다. 오너 4세들이 지분을 많이 보유한 만큼 승계를 위한 역할론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전략적인 차원에서 CJ그룹이 먼저 밀었던 회사가 C&I레저산업이다. 2006년 설립된 이 회사는 인천 옹진군에 위치한 굴업도 골프장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이재현 회장이 42%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다. 이선호 경영리더와 이경후 경영리더도 각각 38%와 2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개인회사인 것이다.

CJ올리브영이 고속 성장하면서 승계를 위한 핵심 고리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명동의 올리브영 매장ⓒ시사저널 이종현

CJ올리브영이 4세 승계 핵심 고리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환경 파괴 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인천시도 2009년 환경문제를 이유로 심의보류 결정을 내리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경영난에 직면한 C&I레저산업은 방독면 제조업체인 SG생활안전을 한화그룹으로부터 인수했다. 계열사의 무인경비 사업부문을 넘겨받아 이 회사와 합치기도 했다. 이후 계열사의 일감 지원을 받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했다. 회사 이익이 모회사인 C&I레저산업을 거쳐 이 회장 일가에게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계속되자 이 회장은 2018년 결단을 내렸다. 내부거래 의존도가 높은 무인경비 사업을 KT텔레캅에 매각했다. 인력경비 사업도 계열사인 CJ텔레닉스에 양도했다. 이후 내부거래가 줄어들면서 회사 매출은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에는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C&I레저산업은 승계를 위한 핵심 위치에서 멀어졌다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CJ올리브영은 상황이 다르다. 이 회사는 국내 H&B(헬스앤뷰티) 업계 시장점유율 85%를 차지하고 있다. 점포 수만 1275개(올 상반기 기준)다. 지난해 매출은 2조1192억원, 영업이익은 1378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3%, 38% 증가했다. 올해 상황도 나쁘지 않다. 상반기 매출은 1조26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상반기 매출 1조원대를 돌파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CJ올리브영은 연내 IPO(기업공개)를 준비해 왔다. 주요 증권사들은 이 회사의 가치를 2조~4조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 대표 주관사로 미래에셋증권과 모건스탠리를 선정한 상태다.

주목되는 사실은 선호씨가 이 회사의 지분 17.97%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55.24% 지분을 보유한 CJ(주)에 이은 2대 주주다. 경후씨 역시 이 회사 지분 4.21%를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재계는 물론이고 금융권도 CJ올리브영의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오너 4세들이 CJ(주)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선호·경후 남매는 지난해 보유 지분 일부를 처분해 1000억원 넘는 현금을 거머쥐었다. 이 돈으로 CJ(주)의 4우선주를 매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계속된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發(발)’ 금리 인상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각종 악재로 코스피를 포함한 전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했다. 연초 3000선을 오르내리던 코스피 지수는 최근 21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코스피 2000을 지켜낼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달러를 기준으로 평가해 보면 종합주가지수의 하락 폭은 연초 대비 40%에 이르렀다. IPO 시장도 얼어붙었다. 카카오페이, LG에너지솔루션 등 지난해 ‘IPO 대박’을 쳤던 기업들의 주가가 반 토막이 났다. 흥행에 비상이 걸린 CJ그룹 측은 CJ올리브영 상장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와 관련해 CJ그룹 측은 “주식시장이 얼어붙으면서 IPO를 잠시 연기한 것뿐이다”고 설명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올리브영의 성장세가 견조한 데다 자금 수혈이 시급한 상황도 아니다”면서 “내년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IPO를 재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PO 연기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

시장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찬성파의 경우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하는 게 더 낫다고 평가한다. 상장 재추진 시점도 그리 그리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는 “최근 들어 주식시장이 바닥을 다지고 성장으로 돌아섰다”면서 “코스피가 2500을 넘어가면 다시 CJ그룹 측에서 IPO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4세 승계에 속도를 내왔던 CJ그룹의 질주에 급제동이 걸린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시한다. 지난해 SK와 LG, 카카오 등 주요 기업이 증시 활황기 때 IPO에 성공하면서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 들어 이런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주가 하락으로 국내 증시가 꽁꽁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지난 10월 기업 분석 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의뢰해 500대 상장기업 오너 일가 1902명의 주식 가치를 분석한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조사 결과 주식 부호 상위 50명의 지분 가치가 연초 대비 27조원 이상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 가치가 조(兆) 단위로 증발한 오너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변수가 갈 길 바쁜 CJ그룹 오너 일가의 승계에 변수가 되는 것은 아닌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CJ 4세들 지분 취득 경위 불투명

경영권 승계 때 정통성 논란 일 우려도

CJ그룹 승계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이슈는 오너 4세들이 비상장 주식을 취득한 절차가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선호·경후 남매가 경영을 승계받는다 해도 정통성 논란이 지속적으로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4세 후계 구도의 핵심 회사인 CJ올리브영의 경우 회사를 떼어냈다가 붙이는 과정에서 이전까지 전무했던 오너 4세들의 지분이 크게 증가했다. CJ그룹은 2014년 9월 계열사인 CJ올리브영과 CJ시스템즈의 합병을 결정하면서 CJ올리브네트웍스를 탄생시켰다. 당시 CJ올리브영은 CJ(주)의 100% 자회사였다. CJ시스템즈 역시 CJ(주)가 최대주주로 66.32%를 보유했다. 이재현 회장의 지분은 37.88%에 불과했고, 4세들의 지분은 전무했다.

합병을 앞두고 이 회장은 선호씨에게 CJ시스템즈 지분 11.30%를 증여한다. CJ올리브영과 CJ시스템즈의 당시 합병 비율은 1대 0.0259923이다. 그러다 보니 CJ올리브영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던 CJ(주)의 지분율은 76.07%에 머물렀다. 반대로 이재현 회장과 선호씨의 지분율은 각각 11.3%와 11.30%로 높아졌다. 이 회장은 2015년 12월 합병법인인 CJ올리브네트웍스의 나머지 지분도 장남인 선호씨와 장녀인 경후씨, 조카인 소혜씨와 호준씨에게 증여했다. 이로 인해 선호씨의 지분율은 15.8%까지 높아졌다.

CJ그룹 계열사들은 이후 CJ올리브네트웍스에 집중적으로 일감을 몰아줬다. 이듬해 3월 공시된 2016년 실적을 보면, 회사의 매출이 3454억원에서 1조558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328억원에서 699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당시 이 회장은 어느 정도 회사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였던 만큼, 내부 정보를 이용한 자녀들이나 조카 밀어주기가 아닌지 의심이 일고 있다.

실제로 합병 당시 CJ올리브영과 CJ시스템즈의 자산총계는 각각 2533억원과 2897억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매출은 오히려 CJ올리브영이 4579억원으로, CJ시스템즈(3572억원)보다 많았다. 그해 일시적으로 CJ올리브영이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이 유일한 흠이었다. 이전까지 매년 영업이익을 늘렸고, 심지어 합병을 앞둔 9월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126억원의 영업이익과 9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2016년 9월8일 CJ올리브네트웍스는 자회사인 CJ파워캐스트와 또 한 번 주식 교환을 공시한다. 비율은 1대 0.3270027이다. 이전까지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60% 지분을 가진 CJ올리브네트웍스였다. 뒤를 이어 이선호(24%), 이경후(12%), 이소혜(4%) 순이었다. 그런데 그해 12월6일 공시된 ‘최대주주 등의 주식보유 변동’을 보면 CJ(주)의 지분율은 55.01%로 21.06%나 감소했다. 이선호(17.97%), 이경후(6.91%), 이소혜(2.18%), 이호준(2.18%)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최대 두 배 가까이 상승한 것과 대조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얼마 후 공시된 2016년 실적을 보니 이 회사의 매출은 1조4390억원, 영업이익은 82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6.3%와 17.31%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IT 회사인 CJ시스템즈는 최근 3년간 3개 회사와 합병했다. 이후 2019년 말 CJ올리브영이 올리브네트웍스와 분할될 때까지 최대주주는 모두 CJ(주)였다. 하지만 보유 지분이 미미했거나 전혀 없었던 이 회장의 자녀들이나 조카들은 대주주 지위에 올랐다. 심지어 선호씨의 경우 CJ올리브네트웍스의 지분 일부를 아버지에게 증여받고 10년도 안 돼 2조원대 회사의 2대 주주가 됐다. 반면 최대주주였던 CJ(주)는 합병과 분할 과정에서 지분율이 크게 낮아진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벌 일감 몰아주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오너 일가를 밀어주기 위해 CJ(주)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닌지 의심된다”면서 “상황에 따라 CJ(주)의 소액주주들로부터 집단소송 등 법적 다툼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CJ그룹 측은 “절차대로 처리한 만큼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CJ올리브영과 CJ올리브네트웍스 양사 모두 합병 시너지를 바탕으로 성장 가속화가 이뤄졌다”면서 “2014년 합병 당시 올리브영의 본격적인 성장을 앞두고 IT 부문과 합병했다면, 1위 사업자로 자리매김한 이후에는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분할을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합병과 분할 당시의 기업 가치와 비율은 외부 회계법인에서 적법한 기준(상증법평가 및 현금흐름할인법)에 따라 객관적으로 평가해 결정된 만큼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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