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조선인 학살한 독, 아직도 재일한국인들 괴롭히고 있어”
  • 이해람 인턴기자 (haerami0526@naver.com)
  • 승인 2023.09.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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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풍자만화가 미시마 아유미 인터뷰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 작품에 담아”

올 9월은 간토대학살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된 해다. 1923년 9월1일 도쿄, 요코하마를 비롯한 간토지역 일대에 규모 7.9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여파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고 해안에는 쓰나미가 몰려 왔다. 10만명 이상이 사망했고 300만명이 이재민이 됐다.

몇몇 ‘소문’이 퍼지면서 지진은 학살로 번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문이었다. 이후 일본 군대, 경찰, 민간 자경단은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로 인해 최소 6000여명의 조선인이 살해된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자가 2만3000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관람객들이 미시마 아유미 작가를 비롯한 '아이고전'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아이고전 실행위원회 제공
관람객들이 미시마 아유미 작가를 비롯한 '아이고전'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아이고전 실행위원회 제공

지난 1~9일 간토대학살을 추념하는 ‘간토대학살 100주기, 100년 만의 통곡 아이고展(전)’이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렸다. 해당 전시에는 총 37명의 한국인, 재일동포, 일본인 작가가 참여했다. 시사저널은 ‘아이고전’에 참여한 일본인 풍자만화가 미시마 아유미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고전 포스터
아이고전 포스터 ⓒ아이고전 실행위원회 제공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만화 그렸다

한·일관계사에 관심을 갖고 풍자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분노하기도 하고, 떨떠름한 기분도 느낀다. 학창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 들었을 때 그랬다.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하는 캠프에 방문했을 때 한국인은 물론이고 재일한국인, 아이누(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사할린 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와 만난 뒤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만화가에 등단하자마자 수요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 풍자만화를 그리게 됐다.”

‘위안부’를 둘러싼 문제는 미시마 아유미 작가가 한·일관계사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였다.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 이용수 여사는 협상이 타결되자 “전부 무시하겠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는 나왔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을 결성해 합의를 비판했다. 이들은 “제멋대로 합의하는 것은 피해자를 모독하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사죄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죄를) 표명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시마 아유미 작가는 ‘표현의 부(不)자유전’ 전시 중단 사태도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킨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2019~22년 일본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하는 ‘표현의 부자유전’이 열렸다. 하지만 극우 성향 활동가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폭죽을 배송하는 등의 문제로 전시회가 중단된 바 있다.

전쟁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작품을 만들며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위안부 합의’와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 중단 등 큰 문제들이 발생할 때 ‘내가 이와 같은 문제를 그리지 않아도 되는가’를 스스로 묻곤 한다. 이미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풍자만화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00년의 독' ⓒ미시마 아유미 제공

100년 전 차별, 지금도 여전...일본 좀먹고 있어

간토대학살을 주제로 한 ‘아이고展’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전시를 기획한 고경일 상명대학교 만화학과 교수의 제안을 받았다. 소중한 주제라고 생각했기에 꼭 참여하고 싶었지만 ‘내가 무엇을 그릴 수 있을까’, ‘이것으로 충분할까’ 계속 불안했다.”

간토대학살은 원래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전시 참여를 결정한 뒤로 사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나가와현 가마쿠라 출신인데, 같은 간토지역이지만 학살은 도쿄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나가와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0년의 독’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작품에 담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2021년 8월에는 재일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교토 우토로지구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남성이 인터넷에 나도는 선전을 믿고 범행을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100년 전 차별이라는 독이 지금도 일본을 좀먹고 있다. 그 독을 멈추고 싶다는 바람,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1면에 쓰인 글자는 1923년 9월 1일 지진 당일 아침 신문의 표제다. 지진이 있기 전부터 조선인들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이나 편견이 만연해 있었다는 점을 담고자 했다. 2~3면은 간토대학살의 모습을 그렸다. 4면부터는 현대가 된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보는 사람들이 차별의 독(재일한국인에 대한 혐오)을 삼키려 하고 있다. 5면에서는 그 사람을 덮치는 독을 우산으로 막고 씻어내려고 하고 있다. 우산은 차별을 금지하고 혐오를 용서하지 않는 제도와 한·일 간의 문화교류 등을 의미한다. 차별은 ‘악인’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차별을 막는 우산이 돼야 한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록이 남아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도 추도문을 보내는 것으로 차별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는 일본 유권자들이 역사나 인권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풍자만화를 그리는 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작품에 담을 것인가.

“‘아이고전’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작가와 만나고 여러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좋은 경험이 됐다. 앞으로 더 진지하고 대범하게 작품 활동에 임하고 싶다. 이번 전시회처럼 한·일 문화교류를 지속해 차별이라는 독을 막는 우산을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일본의 풍자만화가 미시마 아유미
일본의 풍자만화가 미시마 아유미 ⓒ미시마 아유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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