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단식’에도 이재명 외면한 尹…‘정치 전략’ 혹은 ‘검찰 신념’?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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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정부 단식’에 우려 메시지조차 無…해외 순방하며 ‘외교 전념’
“명분 없는 단식에 무대응이 최선” “李를 피의자로 보는 의중 작용”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누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단식하라고 했나?”

24일간 진행된 이재명 대표의 단식 과정에서 대통령실 관계자가 한 매체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한 발언이다. 해당 메시지 외에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에선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한 우려는커녕 어떤 공식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당초 대통령과 정부가 단식의 단초였지만 동요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외면한 이유로 정치셈법이 작용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식이 명분도 없었던 만큼 ‘무대응’이 최고의 전략이었단 것이다. 이 대표를 피의자로 인식하는 윤 대통령의 의중 또한 엿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제1야당 대표의 단식마저 외면하면서 대통령의 ‘협치 실종’ 이미지가 더 누적됐단 지적도 제기된다.

 

李 ‘단식의 시간’에 尹 ‘외교의 시간’…무대응 일관

당초 이 대표의 단식 명분은 모두 대통령과 정부의 문제점에 집중돼있었다. 이 대표는 지난 8월31일 단식을 시작하며 ▲각종 현안 관련 윤 대통령의 사과 ▲일본 오염수 투기 관련 정부 입장 철회 ▲국정쇄신과 개각 단행 등을 촉구했다. 이후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되자 당 차원에서도 용산 대통령실 앞에 두 차례(15·18일)나 가서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일각에선 민주당에서 정무수석실이 나서 이 대표의 단식을 만류하는 그림까지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 대표가 ‘단식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한 언급 없이 두 차례 해외순방까지 나서며 ‘외교의 시간’을 보냈다. 앞서 정치권에선 대통령실이 처음부터 이 대표의 단식에 전혀 움직이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후문도 들렸다. 여기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이 대표에 대한 단식 우려 메시지만 냈을 뿐, 이 대표의 단식장은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결국 이 대표는 지난 23일 길었던 단식을 정부·여당의 외면 속에서 끝마쳤다. 이 대표는 종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장 기록인 ‘23일’을 넘어서 정치사에 획을 그었지만, 가시적 성과는 전무했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사죄할 기미조차 없다. 여기에 일본 오염수 관련 정부의 입장 변화는 물론, 내각 총사퇴 역시 어떠한 조짐도 안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1야당 대표 단식조차 외면?”…‘불통’ 이미지 누적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이 대표의 목소리를 묵살한 이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국정이나 총선 전략상 이 대표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대표의 단식은 시작부터 ‘명분’이 없다는 당 내외 비판이 있었다. 일각에선 이 대표 사법리스크 관련 ‘방탄 단식’이란 의심도 제기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에선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셈법 상 플러스였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는 단식에도 불구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직격타를 맞았다. 특히 이 대표는 체포동의안 표결 직전 본인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번복하고 부결을 호소해, ‘방탄 단식’을 자인했다는 비판도 직면했다. 민주당 내부도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하고 계파갈등은 더욱 증폭된 분위기다. 한 친윤(친윤석열)계 여권 인사는 “정부·여당으로선 이번 단식에서 무대응으로 일관하고도 잃은 것이 없다. 오히려 민주당만 큰 상처를 입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또 일각에선 이 대표를 제1야당 대표가 아닌 피의자로 인식한 윤 대통령의 신념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의중이 국무위원과 여당에도 전달돼,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의 목소리로 대신 전달됐다는 것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정부가 민주당을 파트너가 아닌 ‘범죄집단’, ‘반국가세력’, ‘피의자’로 보고 있다”며 “이 같은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이 ‘투사’로 변모한 국무위원들의 스피커로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야권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제1야당 대표의 단식’조차 외면하면서 ‘불통’ 이미지를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25일 통화에서 “정부 여당이 이 대표를 철저히 외면한 것은 민주당 자체에 대해 ‘정치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이어질수록 정치는 양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정치 혐오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이 대표 단식 기간 정치권은 양극단의 정치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선 보기 드문 일들도 벌어졌다. 검찰의 회기 중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이에 따른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과 비리 검사 탄핵소추안 표결로 맞섰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보수와 진보 양극단 대결이 훨씬 더 심해지고, 정치의 모든 부분이 다 복잡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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