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르는 대출금리…‘레고랜드 사태’가 보낸 후불 청구서?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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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 금리 상단 7% 돌파…예금금리도 4%대 진입
만기 도래 116조 규모 정기예금 영향에 수신 경쟁
당근과 채찍 시사한 당국…“대출금리만 더 오를 수도”

대출금리가 올 들어 최고 수준인 7%에 도달했다. 신규 취급액 기준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지난달 말에 비해 0.130%포인트 오르며 7%를 웃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출금리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은행권에선 4%대 예금이 속속 다시 등장하는 등 수신금리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이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 고금리로 조달한 116조원 규모에 달하는 예적금 만기가 도래하면서 재예치를 위해 수신금리 경쟁에 나선 탓이다. 당국은 수신 경쟁 가능성에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계획이지만 필요 자금 조달을 위해선 대출·예금 금리 모두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은행권의 입장이다.

지난 24일 서울 시중 은행에 대출금리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지난 24일 서울 시중 은행에 대출금리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270∼7.099%를 기록했다. 주담대 변동금리 상단이 연 7%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2월(연 7.603%) 후 9개월 만이다.

주담대 금리가 상승한 데는 은행채 금리가 올랐기 때문이다. 주요 시장금리 지표인 은행채 금리는 최근 미국과 한국의 긴축 장기화 전망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지난 2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내 추가 금리 인상 등을 언급하자 은행채 금리는 더 오르고 있다.

주담대 금리는 더욱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수신금리가 경쟁적으로 오르고 있어서다. 25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정기예금 36개 상품 중 10개가 만기 12개월 기준 최고 4%대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12개월 평균금리도 4.18%로 계속 상승 중이다.

은행권이 수신금리를 높인 건 지난 연말 유치한 정기예금의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11월 금융권에서 유치한 정기예금의 규모는 약 116조원에 달한다. 만기 정기예금의 재예치를 위해 수신금리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권이 대규모 예금 유치에 나섰던 배경에는 레고랜드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지난해 9월 레고랜드의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대출금 상환 불가를 결정하고 강원도가 보증 이행을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이로 인해 국채 수준의 신용도를 인정받던 지방채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채권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고,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경제 전반으로 퍼졌다. 돈줄이 막히자 은행권은 자금 조달을 위해 고금리 특판 경쟁에 나섰다. 그렇게 확보한 정기예금 규모가 약 116조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지난해 11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레고랜드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가’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태 강원지사가 지난해 11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레고랜드 이슈의 본질은 무엇인가’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신 경쟁, 결국 대출금리 상승으로…당국 규제 먹힐까

문제는 수신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 상승도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은행채와 예·적금 등 수신상품 금리가 오르면 코픽스가 상승한다. 코픽스는 신용대출뿐만 아니라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등 변동형 대출금리의 기준이 된다. 이런 코픽스가 오르면 대출 금리 역시 상승하게 된다.

당국은 은행들의 수신 경쟁이 결국 대출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4분기 취급한 고금리 예금의 재유치 경쟁이 장단기 조달과 대출금리 상승 우려 등 불필요한 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같은 날 열린 비상거시경제회의에서 “4분기(10∼12월) 고금리 예금 만기 도래 등에 따른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에 나서겠다”며 “시중 유동성 상황을 세심하게 모니터링하고 은행 유동성 규제를 유연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규제비율을 지키기 위한 자금 확보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러한 당국의 규제가 풍선효과를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예금금리 인상을 억제할 경우 자금 조달이 필요한 은행은 가산금리 확대 등을 통해 대출금리를 올릴 수 있다”며 “기존 차주들의 부담만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더 높은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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