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왜 영화화됐나…“억울한 ‘소년들’ 많아”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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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의 ‘실화 3부작’ 마지막 작품 《소년들》
사건 통해 보여지는 ‘사회의 구조’에 주목

《부러진 화살》(2012)로 시작해 《블랙머니》(2019)를 지나 2023년 《소년들》에 당도하면서 정지영 감독의 ‘실화 3부작’이 완성됐다. 그동안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이면을 조명해 온 정 감독은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올해 또 하나의 부조리한 사건을 파헤쳤다. 11월1일 개봉하는 영화 《소년들》을 통해서다.

정 감독에게 《소년들》은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이자, 잊어서는 안 될 ‘가려진 진실’을 비추는 영화다. 그는 2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이 영화를 “2000년대를 통틀어 많은 관객들이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언급했다. 영화는 잘못된 수사와 판결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된 ‘소년들’의 억울함을 비췄다. 정 감독은 알려진 ‘사건’ 그 자체뿐 아니라, 사건의 내막을 통해 보여지는 ‘사회의 구조’에도 주목했다.

영화 《소년들》 포스터 이미지 ⓒCJ ENM 제공<br>
영화 《소년들》 포스터 이미지 ⓒCJ ENM 제공

영화의 모티브인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다뤘고, 금융범죄 실화극 《블랙머니》는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화 3부작’의 마지막인 《소년들》의 기반이 된 사건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99년 2월6일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가 침입해 주인 할머니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난 사건으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다뤄진 바 있다.

당시 근처에 살고 있던 3명의 청년이 범인으로 지목됐고, 이들은 경찰의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거짓 자백했다. 결국 이들은 구속돼 징역 3~6년을 선고 받고 복역을 마쳤다. 그 사이 진범들이 부산에서 붙잡혀 자백까지 했지만, 담당 검사가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사건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들의 무죄가 밝혀지기까지는 무려 17년이 걸렸다. 출소한 이들은 경찰의 강압수사를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2016년 전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들의 변호인은 유족이 보관 중인 현장검증 동영상과 사건 기록 등을 제시하며 재심 개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 해 10월 전주지법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재심 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이어졌고, 서울중앙지법은 4년에 가까운 심리 끝에 지난 2021년 1월, 국가가 1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년들》은 이러한 실화에 기반해, 진실을 찾기 위해 진행되는 지난한 싸움을 그려냈다. 나라슈퍼는 영화에서 ‘우리슈퍼’가 됐다. 영화는 우리슈퍼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 뒤,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내몰려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수감된 3명의 소년들을 보여준다. 새로 부임해 온 수사반장에게 진범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그는 소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재수사에 나선다.

2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정지영 감독 ⓒ흥미진진 제공
27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정지영 감독 ⓒ흥미진진 제공

사건의 전말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인물 구성 

정 감독이 이 사건을 2023년으로 가져온 이유는 뭘까. 정 감독은 당초 2000년 8월 발생한 ‘약촌 오거리 사건’을 영화화하고자 했으나 이미 영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이 사건은 영화 《재심》(2017)으로 영화화됐다). 이후 정 감독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접한 뒤, 이 사건의 깊이를 느끼게 됐다. 극 중 등장한 소년들은 가난하고, 배움이 짧았다. 정 감독은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재심을 담당한 박준영 변호사를 통해 허락을 받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정 감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의 전말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수사반장 캐릭터를 작품에 삽입했다.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수사반장이 이 인물의 모티브가 됐다. 사건의 진실을 좇는 황준철 반장 역은 배우 설경구가 맡았다. 정 감독은 캐스팅 과정에서 설경구가 《공공의 적》에서 연기한 캐릭터인 ‘강철중’을 떠올렸다고 한다.

사건의 진실을 좇는 황준철 반장 역할은 배우 설경구가 맡았다. ⓒ흥미진진 제공
사건의 진실을 좇는 황준철 반장 역할은 배우 설경구가 맡았다. ⓒ흥미진진 제공

처음으로 정 감독과 호흡을 맞춘 설경구는 “《소년들》을 선택한 이유는 ‘정지영 감독’이다. 한국 영화계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정 감독님과의 작업은 거부할 수 없는 끌림으로 다가왔다”며 “실화에서 오는 강렬함에도 끌렸다. 잊혀서는 안 될 사건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대중에게 각인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황 반장과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전북청 수사계장 최우성 역은 유준상이 맡았다. 유준상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사건과 관련된 서류 다섯 권을 읽으면서 왜 이 이야기를 감독님이 선택했는지 알게 됐다”며 “이 시대에도 다가오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진경, 허성태, 염혜란 등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도 작품에 힘을 보탰다. 황 반장의 아내 김경미 역을 맡은 염혜란은 “이 영화는 가슴 아프고 먹먹한 이야기지만, 한 편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용기를 주는 ‘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어떤 것을 살피고, 어떤 것을 마주해야 할지 생각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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