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이재명, ‘대권·당권 판’ 뒤흔든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7 14: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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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당권 놓고 박원순계·김부겸과 ‘非NY 연대’ 가능성
“이낙연 대세론은 흔들릴 것” 전망 나와

박원순-이재명 두 광역자치단체장의 운명이 극적으로 갈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7월9일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다. 반면에 이재명 경기지사는 7월16일 대법원이 원심파기 후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 지사로선 그동안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공직선거법 관련 재판에서 자유롭게 됨으로써 2022년 대선 도전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됐다. 여권의 대선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대선 판도만 그런 게 아니다. 8월29일에 있을 민주당 대표 선거에도 큰 변수가 생겼다.

박 전 시장과 이 지사의 정치성향은 중도진보에 가깝다. 또 두 사람 모두 민주당 내 주류는 아니다. 현재 민주당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친문계와도 다소 거리가 있다. 되레 이 지사는 강성 친문(親文‧친문재인계)들이 극도로 경계심을 나타내는 정치인이다.

그런데 민주당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의원 역시 친문계와 딱히 연결고리가 없다. 현재로선 압도적으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어 정권 재창출이 당면 과제인 친문계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대안만 생긴다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선 그 시작점을 이 지사에 대한 7월16일 대법원 판결로 봤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이 지사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로 보기 힘들다며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7월16일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대법원의 원심 파기환송으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7월16일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20~40대 이재명 지지세 갈수록 높아져

앞서 설명한 것처럼 지금까지 이재명 지사와 친문은 당내에서 대척점을 이뤄왔다. 양측 모두 결집력이 강한 지지층을 갖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지사는 허위사실 공표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었다. 낙마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이낙연 의원 다음으로 대선후보 지지율 2위를 기록하는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였다. 그런데 대법원에 의해 봉인이 해제됐다. 다리에서 모래주머니를 떼어낸 스프린터가 얼마나 빨리 1위를 쫓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권이 이 지사의 향후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7월7일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이낙연 의원은 28.8%로 여전히 1위를 달렸지만, 2위인 이재명 경기지사(20.0%)와의 격차는 한 자릿수로 좁혀졌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김부겸 전 의원은 3.3%,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4%였다. 김 전 의원과 박 전 시장의 지지층이 옮겨가게 되면 1·2위 간 지지율 역전도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참고로 4월21일 같은 기관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의원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0.4%, 이 지사는 14.8%였다.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20대층의 이낙연 의원 지지율이 빠르게 줄었다는 점이다. 4월21일 조사에선 36.0%(이낙연 의원)대 14.1%(이재명 지사)였던 것이 7월7일 조사에선 18.8%대 20.9%로 역전됐다. 30대 응답자 사이에서도 이 지사는 35.0%를 기록, 29.0%를 얻은 이 의원을 크게 앞섰다. 정치평론가인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코로나19 위기 때도 이 지사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민주당 지지층인 2030세대에서 이 지사의 지지율이 빠르게 올라간 지금, 이낙연 대세론은 사실상 깨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회생한 이 지사로선 이번 대법원 판결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현 정부와 어떤 식으로 차별화할지도 관심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친문에게 있어 이 지사는 ‘정적’이라기보다 ‘대체재 성격의 정치인’이다. 이 지사가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차별화를 꾀할 순 있다”고 내다봤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 지사의 상승세에 긴장한 이낙연 의원 측이 내부 단결을 위해 덩달아 차별화에 나설 경우 여권 내부 분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갑작스러운 사망도 여권엔 충격이다. 지지율 면에선 ‘빅2’와 큰 차를 보였어도 ‘소통령’이라 불리며 10년간 서울시정을 이끈 행정 노하우가 있기에 박 전 시장은 잠룡으로서의 잠재력이 충분했다. 민선 최장수 서울시장이었던 박 전 시장은 현실정치에 등장하는 것도 그랬지만 퇴장 순간마저도 드라마틱했다. 사후 평가도 엇갈린다. 장례 절차가 끝나자마자 전직 비서 측의 성추행 폭로 기자회견이 터져 나오면서 여권으로선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지지자들은 아직도 박 전 시장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내 박 전 시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7월14일 입장문을 내고 “고인이 스스로를 내려놓은 이유를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정치인 중에 가깝다는 제게도 자신의 고뇌에 대해 일언반구 거론하지 않았다”면서 “그의 공적 업적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적 한계와 과오까지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성찰할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박 의원은 “고소인께 그 어떤 2차 피해도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두 당권주자를 비롯해 이재명 지사, 김두관 의원 등 당내 대권주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여성 표를 의식해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박 전 시장을 대놓고 옹호하기도 어렵지만, 또 강하게 비판하기도 쉽지 않다.

민주당 대표 후보인 이낙연 의원(왼쪽 사진)과 김부겸 전 의원이 7월10일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민주당 대표 후보인 이낙연 의원(왼쪽 사진)과 김부겸 전 의원이 7월10일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덩치 커진 박원순계가 어디로 쏠릴지 관심

그동안 정치권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대권에 나설 것이란 예상은 불문가지였다. 박 전 시장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10년 동안 서울시정을 열심히 펼쳤는데도 지지도가 오르지 않아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고 한다. 원외인사의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이 지사가 기본소득 등의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지지율을 높이고 나선 것도 적잖은 부담이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은 것은 박 전 시장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21대 국회에 들어간 점이다. 언론에서 말하는 소위 박원순계 의원들은 대략 15~20명 정도다. 박홍근·기동민·남인순 의원을 비롯해 천준호·윤준병·김원이·진성준·박상혁·허영 의원 등은 지난 21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갔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이 그간 사석에서 ‘여의도에 기반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많았는데 총선 이후 박원순계 인사들과 자주 모임을 가지면서 고무돼 있었다”고 말했다.

구심점이 사라진 이상 박원순계 인사들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가 관심이다. 두 당권주자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박원순계 의원들은 대체로 ‘비낙(非洛‧비이낙연)’ 성향이 강했다는 게 민주당 안팎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들은 그동안 ‘유력 대선주자가 7개월짜리 당 대표에 나서면서 선거가 과열양상을 보일지 모른다’며 이 의원의 당 대표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이낙연 의원이 당 대표 자리까지 거머쥐게 되면 대선 경선판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기 때문에 박 전 시장 등 다른 대선주자들의 활동 공간을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도 비낙 활동은 불가피했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경선 레이스에서 사라지면서 박원순계가 어느 쪽으로 향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게 됐다.

전체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의원 측은 박 전 시장의 사망 이후 ‘이낙연 대세론’이 확산될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낙연 캠프 관계자는 “박 전 시장은 당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런 그가 사망하면서 당이 혼란에 빠지게 생겼는데, 이러한 때 당이 대표 자리를 놓고 갈등을 빚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의원 측근들 사이에는 “여권의 주류인 친문 세력을 잡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대선 완주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당이 혼란스럽더라도 당 대표 자리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다. 7월7일 국회에서 가진 출마기자회견의 변이었던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훗날의 질문에 제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이 의원의 생각은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더욱 강해졌다.

이 의원의 출마선언이 있었던 7월7일 송영길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제가 당 대표가 되려면 우리 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를 낙선시켜야 하는데 만일 대선후보가 당 대표에 낙선하면 사실상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정권 재창출을 위한 중요 후보를 낙선시키고 당 대표가 되어 정권 재창출에 앞장서겠다고 당원들에게 호소한 것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형용모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송 의원은 또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유력 후보의 코로나 재난 극복의 책임의지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낙연 의원 지지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가 기사회생하면서 NY 대세론에 변수가 생겼다.

 

“이재명은 영남 출신…이낙연 측에 부담”

되레 당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은 “미니 대선 격인 재보궐 선거(내년 4월)를 한 달 앞두고 전당대회를 또 다시 열어 당 대표를 뽑아선 안 된다. 이번 당 대표 선거는 준비된 대선주자를 뽑는 선거가 아니라, 대선 승리의 발판인 대선주자를 키워내는 인물을 뽑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재명 지사의 대선가도에 장애물이 사라진 만큼 비낙계가 한데 뭉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박 전 시장과 이재명 지사 지지층이 같은 비주류인 김부겸 전 의원을 측면지원할 경우 민주당 당권 경쟁은 지금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엄경영 소장은 “민주당에 있어 지금과 같은 난세에는 이재명 지사와 같은 투사형 지도자를 주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 지사의 상승세를 전망했다.

최진 원장도 “박원순 전 시장의 고향이 경남 창녕, 이재명 지사가 경북 안동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 모두 영남권과 인연이 있으며,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낙연 의원 측에선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조국 전 장관도 재판 결과에 따라 살아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며 여권 대선 판도 변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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