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웠던 유진상가가 예술을 입었다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0 11: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민들 외면 받은 지난 공공미술, ‘홍제유연’은?

‘서울은 미술관’은 2016년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공공미술 사업 이름이다. 난해한 수식어들을 빼고 이 사업을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도시’와 ‘시민’이란 두 개의 키워드로 설명된다. 도시에 변화를 주는 예술,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미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공미술은 미술관의 전시실 밖으로 나온 예술로서 처음 등장했다. 여기서 ‘미술관’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큐레이터나 평론가와 같은 일부 전문가들이 작품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미술계의 폐쇄적인 관행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틀을 깨고 예술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공공장소로 옮겨온 것이 공공미술(public art)이다.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이기도 했고, 더 나아가 ‘대중(public)과 소통하는 미술’이기도 했다.

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유진상가. 1970년 홍제천을 복개한 부지에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지어졌다. ⓒ김지나
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유진상가. 1970년 홍제천을 복개한 부지에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지어졌다. ⓒ김지나

스산한 굴다리에서 미디어 아트 공간으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홍은동 유진상가의 ‘홍제유연’도 서울은 미술관 사업의 하나다. 유진상가 아래로 흐르는 홍제천 지하 구간에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설치한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작품에 참여한 흔적들도 보였다. 어둡고 음습했을 지하 공간은 화려한 미디어아트 작품들로 채워져 독특한 스펙터클을 연출하고 있었다.

종로구 평창동에서부터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홍제천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유진상가 앞에서 갑자기 뚝 끊긴다. 유진상가가 홍제천을 복개해 만들어진 땅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 최고급 주상복합건물이었다던 유진상가는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더 이상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낡은 모습이었다. 건물 자체가 북한의 침투에 대비한 군사시설로도 기능할 수 있게 설계됐다는 이야깃거리는 시대가 변하면서 무색해져 버렸다.

유진상가의 재건축은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단골 이슈였고 실제로 사업이 추진될 뻔한 적도 있었지만, 매번 원활히 해결되지 못했다고 한다. 철거 이후 홍제천을 온전히 복원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좌절됐다. 비슷한 시기에 건설돼 당시에는 대등한 명성을 날렸던 세운상가나 낙원상가에 비해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도 의아했다. 낡은 건물 속에서 어떤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법도 했지만, 어쩐지 유진상가만은 유효한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해온 것이다. 

그러다 유진상가 하부공간을 통해서나마 끊어진 홍제천을 다시 연결하고 보행로를 만든 것이 작년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천을 복원했어도 건물 아래 지하 공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대단한 임팩트를 기대할 순 없을 것이었다. 여가 장소로서 쾌적함보다는 스산한 굴다리 같은 느낌이 컸는데, 여기에 공공미술이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는 적절한 솔루션이 된 듯 했다. 지지부진한 유진상가의 재건축 논의 가운데, 서울시 공공미술은 그 모토에 맞게 ‘도시’와 ‘시민’을 위한 자기 할일을 해 낸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당분간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유진상가 하부공간에 복원된 홍제천 산책로에서 7월부터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설치한 ‘홍제유연’ 전시를 볼 수 있다. 사진은 홍제유연 전시 작품 중 하나인 《온기》  ⓒ김지나
유진상가 하부공간에 복원된 홍제천 산책로에서 7월부터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설치한 ‘홍제유연’ 전시를 볼 수 있다. 사진은 홍제유연 전시 작품 중 하나인 《온기》 ⓒ김지나

예술은 단지 도시 변화의 ‘촉매제’

서울시의 공공미술 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몇 해 되지 않았지만 순탄치 않은 여정을 걸어오고 있다. 2017년 ‘슈즈트리’, 2018년 ‘한강예술공원’ 사업은 흉물 논란이 일었고, 올해는 서울식물원에 공공미술이란 이름으로 시설물을 설치하려다 시민들의 뭇매를 맞았다. 시민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의식해서였을까, 2018년부터는 ‘공공미술 시민아이디어 구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대상지 선정에서부터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 선발까지 일련의 과정에 시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탄생한 중랑구 용마폭포공원의 ‘타원본부’는 코로나 사태로 제대로 된 관람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언뜻 시민들의 의견과 취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유지관리 문제에 미처 대처하지 못한 행정의 무능력함이 원인처럼 보인다. 그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행정기관들이 저지르고 있는 더 근본적인 오류는 예술이 도시 환경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바꾸고 시민들의 일상을 업그레이드 시키리라는 착각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술이 루틴하고 평범한 시공간에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으나, 그것은 변화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촉매제다. 공공미술은 시민들이 도시 환경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해보고 기존 틀에서 벗어난 다양한 생각을 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굳이 영구설치의 형태가 아닌 단기적, 일시적 이벤트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홍제유연’은 유진상가 일대의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 유진상가와 홍제천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환기시키고 새로운 공론을 일으킬 수 있다면 성공이라 생각한다. 이번 공공미술 사업을 계기로 도시재생과 문화기획 분야의 실질적인 관심과 행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