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베] 아베·스가 외면하는 한·일 문제, “차기 정권 중요 과제”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8 10: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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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전문가 “다음 정권 외교정책에 양국 관계 개선 필요”

8월24일을 기점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연속 재임 일수 기준 ‘전후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798일을 연속 재임한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의 기록을 이날 깼다. 그리고 나흘 뒤인 28일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첫 번째 총리직을 사임할 때와 다름없이 ‘건강 악화’가 그 이유였다.

이날 회견에서 기자들은 7년8개월 장기집권의 ‘레거시(유산)’가 무엇인지 아베 총리에게 물었다. 그는 “국민 여러분이 판단하는 것” “역사가 판단하는 것”이라면서도 동일본대지진 후의 도호쿠 지방 부흥을 성과로 제일 먼저 언급했다. 그리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고용 확대를 이루었다고 강조했고, 유아교육·보육 무상화 등도 정권의 성과로 들었다. 외교와 안전보장에 관해서도 집단적 자위권에 관련된 안전법제를 제정한 것을 성과로 꼽았다.

동시에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들도 언급했다. “(일본인 북한) 납치 문제, 러·일 평화조약 문제, 헌법 개정 모두 아주 큰 문제”라며 “아쉽게도 이런 과제를 남긴 것은 통한의 극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자민당 집권은 계속되는 만큼 자신의 정치적 과제를 다음 총리가 이어나가 주길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끝내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한·일 관계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일본 총리가 8월28일 사의를 표명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도쿄 신주쿠 거리를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EPA 연합

강상중“아베 정권 최대의 레거시는 ‘위안부 합의’”

하지만 일본 언론은 한·일 관계 문제를 아베 정권의 남겨진 과제로 꼽고 있다. 2015년에 발표한 이른바 ‘아베 담화’에서는 ‘사죄 외교’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통절한 반성과 진심의 사과”를 언급하면서도 “자식과 손자들에게, 그리고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된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93년 위안부 동원 과정에서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개입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 1995년 전후 50주년 기념식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공식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의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 위안부 합의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그리고 수출규제까지. 한·일 관계는 지금 악화일로에 있고, 따라서 일본 언론은 아베 정권의 ‘미완의 과제’로 역사 문제를 시작으로 한 한·일 관계 악화 문제를 빠뜨리지 않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석학, 강상중 도쿄대학 명예교수는 일본 아사히신문 계열 주간지 ‘AERA’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합의’를 아베 정권 최대의 레거시로 꼽았다. 아베 정권의 특징으로 ‘선거’와 ‘외유’를 지적한 강 교수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며 “아베 총리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것, 즉 ‘위안부 합의’로 레거시를 남겼다”고 평했다. 위안부 합의 막후에 작용했던 미국의 강한 압력을 지적하며 “이후 양국이 역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아베 총리로서는 본의가 아니었던 이 한·일 합의가 반드시 커다란 담보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아베 정권 최대 유산으로 위안부 합의를 꼽은 이유를 설명했다.

9월 중에 치러질 자민당 총재 선거의 후보자는 9월3일 현재 세 명으로 추려졌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세 사람은 악화된 한·일 관계라는 아베 정권의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먼저 이시바와 기시다 두 사람이 9월1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표명하는 회견을 열고 한·일 관계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이시바의 경우, 회견에서 ‘한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조선반도’ 즉 한반도를 언급하며 북한의 납치 문제와 함께 묶어 의견을 개진했다. “한반도에 관해서는 (각국이)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며, 상대와 다른 생각을 확실히 주장해야 하지만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상호이해를 강조했다. “아시아는 일본에 필수불가결한 파트너”라며 “우리는 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것을 모르고서 아시아와의 연대는 있을 수 없다. 아시아에 대해 ‘이해, 공감, 납득’, 이런 것들을 해 가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한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역사 문제와 현재의 악화된 한·일 관계도 염두에 둔 발언인 것은 분명하다.

이시바 전 간사장(왼쪽), 기시다 정조회장AP 연합

“차기 총리, 한국이 납득할 해결책 제시할 수 있는지가 문제”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일 관계에 접근하겠다는 이시바와는 달리,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외무대신이었던 기시다의 경우 출마 표명 회견에서 “한국이 국제법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한·일 관계 악화 책임의 소재, 개선의 열쇠를 쥔 쪽은 한국이라는 인식을 내비쳤다. 반면, 스가는 9월2일 가진 선거 출마 의사 표명 회견에서 두 경쟁자와는 달리 한·일 관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정권이 추진해 온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한 만큼 이제껏 취해 온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가 당원들까지 포함된 전체 투표를 생략하기로 결정되면서 스가 장관이 자민당 총재, 즉 일본 총리가 될 확률이 높아졌다. 자민당 내 가장 많은 파벌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현 상황에서는 스가가 차기 총리로 결정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베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한·일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고, 아베의 지지를 등에 업은 최대 유력 후보인 스가도 한·일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은 다음 정권의 외교정책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국제정치 전문가 스즈키 가즈토 홋카이도대학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중(對中)·대한(對韓) 외교를 차기 정권의 가장 어려운 외교 과제로 뽑았다. “한·일 관계의 악화는 문재인 정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의 반도체 재료 수출관리 강화로 쌍방의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차기 총리가 일종의 막후공작 같은 것을 이용해, 한국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며 한·일 관계 개선에 차기 정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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