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의 ‘의대생 증원’, 獨 의료계선 환영하는 이유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24 10:00
  • 호수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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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 코로나19로 절실해진 공공의료 서비스 대폭 확대 계획

9월8일 독일 연방정부는 공공의료 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발표했다. 이날 베를린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을 비롯해 독일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로베르트-코흐 연구소 소장, 공공의료 서비스의 연방 수장 등 각 지역 보건위생국 국장들이 모여 독일의 공공의료 서비스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메르켈은 국민을 향한 공개 담화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공공의료 서비스의 인력과 인프라가 매우 부족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현재 공공의료 서비스 종사자들이 과다한 업무량과 비효율적인 일 처리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공공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해 40억 유로(약 5조6000억원)를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9월8일 독일 연방정부는 공공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해 40억 유로(약 5조6000억원) 지원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EPA연합
9월8일 독일 연방정부는 공공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해 40억 유로(약 5조6000억원) 지원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EPA 연합

공공의료 개선에 5조6000억원 통 큰 지원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3월부터 현재까지 독일 보건위생국들은 급격한 업무 과다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는 검사뿐 아니라 추적 과정 역시 중요해 신속하게 검사할 수 있도록 검사키트 수급이 원활해야 하고 의료진에게 제공할 마스크나 일회용 장갑 등 또한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추후 확진 판정이 나면 질병관리본부에 보고를 하고 접촉한 사람들을 추적해 연락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소요된다.

독일은 코로나19에 비교적 잘 대처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앞서 언급한 모든 단계마다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엔 검사키트를 비롯한 의료장비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첫 코로나19 슈퍼전파자가 거주했던 하인스베르크 지역 의회 의원이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마스크 등 장비를 지원해 달라고 서한을 보낸 사실은 당시 독일의 절망적 상황을 가늠케 한다.

바이러스 확산기에 들어서는 접촉자를 추적하기 위한 지역 보건소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보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로베르트-코흐 연구소에서는 일시적으로 500여 명의 ‘컨테인먼트 스카우트’를 파견했다. 의대생을 비롯해 교육 단계에 있는 의료계 종사 희망자들이 보건위생국에서 근무하며 접촉자 추적을 도와주는 제도를 뜻한다. 그러나 이 역시 지원자가 부족해 인력난을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메르켈은 장기적 전망을 갖고 공공의료 개선에 예산을 더 지원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메르켈은 발표 자리에서 “미래엔 많은 의사가 공공분야에서만 일하고 싶어 하게 될 수도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공공의료 서비스 지원 내용의 핵심은 각종 공공의료 서비스와 관련된 기관들의 인력난을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는 약 400개의 보건위생국이 있으며, 여기에 1만7000명이 근무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22년 말까지 5000명의 인력을 추가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중 1500명은 내년 말까지 채용할 예정이다. 여기엔 의사뿐만 아니라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직원과 기타 전문인력이 모두 포함된다. 이에 대해 의료계에선 대체로 필요한 방침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다만 현재보다 더 많은 의사가 공공의료 분야에 몸담게 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보수가 제대로 책정돼야 하는데, 이 문제에 있어 아직 구체적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집권당인 기독민주당(기민당)과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 연합에선 의대 입학 정원을 5000명 늘리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아직 ‘제안’ 단계에 불과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독일이 4.3명으로 한국(2.3명)을 크게 웃돈다. 그럼에도 독일 의료계가 현재 의대 입학생 증원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는 데는 그간 정부와 의료계의 충분한 합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꾸준한 설득으로 의료계 반발 잠재워

2017년 정부가 주마다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고 이들을 학업 후 10년간 취약지역에 근무토록 하는 ‘지역의사할당제’가 처음 제안됐다. 당시만 해도 의료계에선 직업 선택의 자유 훼손 등의 이유를 들며 적잖은 반발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증원 규모를 5000명으로 한 이유 설명과 양질의 근무 환경에 대한 약속 등을 통해 이러한 여론을 조금씩 잠재워갔다.

여러 언론에서도 공공의료 서비스 개선과 의사 증원의 필요성에 대해 보도했다. 의료 전문잡지 ‘에르츠테블라트’에서도 튀링겐주를 사례로 들며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기사를 냈다. 튀링겐주의 경우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중 25%가 해외인력이다. 국내 의사로는 충당이 안 될 정도로 의사가 부족한 것이다. 또한 튀링겐주에서 조사한 결과, 지난 10년간 해당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의 49%만이 해당 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독일 교육의 경우 전국적으로 동일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 단위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튀링겐주에서 예산을 들여 양성한 의사들이 다른 주로 곧장 이동하기 때문에 지역으로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인구노령화로 인해 현직 의사 중 상당수가 향후 10년 안에 은퇴를 하게 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 역시 의대 입학 정원 증대 방침에 힘을 싣고 있다.

공공의료 서비스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또 다른 큰 문제는 바로 디지털 분야다. 현재 독일 각 지역 보건위생국은 각기 다른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일 처리 과정에서 여러 비효율이 야기되고 있고 신뢰도 또한 낮추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 로베르트-코흐 연구소에서 매일 공개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각 지역 보건위생국의 보고가 며칠씩 늦어져 많은 결함을 보이고 있다. 그 때문에 시민들은 연구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에서도 이 수치보다는 다른 출처에서 집계된 숫자를 인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를 타파하고자 독일 연방정부는 추가로 5000만 유로(약 700억원)를 지원해 2022년 말까지 모든 보건위생국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공동플랫폼 개발 외 디지털화 개선 전체를 위해 8억 유로(약 1조1200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독일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글로벌 디지털 시대에 뒤처져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공공분야에서 이러한 합의가 도출됐다는 사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추가 지원되는 이 예산이 어떻게 쓰일지는 좀 더 논의돼야 하지만, 이번 공공의료 서비스와 관련한 장기 지원책들은 대체로 환영받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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