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논란’ 이면에 숨겨진 프랑스-터키의 중동 패권 야심
  • 오은경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09 15:00
  • 호수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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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참수’에서 ‘만평 논란’으로 이어지며 절정 치닫는 프랑스-터키 대결의 실제 내막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지난 10월15일 프랑스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풍자만화를 사례로 들며 수업했던 역사교사 사뮈엘 파티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슬람 세력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이슬람 단체에 대한 통제와 제재를 선포했다. 철저한 정교분리주의 원칙하에 히잡과 같은 종교성 복장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마크롱이 이슬람 혐오 확산을 주도하고 있으며, 유럽 내 무슬림들이 심각한 피해 대상이 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나치와 다르지 않은 파시스트라고 공격했다.

이런 갈등이 수그러들기도 전에 10월28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에르도안 대통령 조롱 만평이 실려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속옷만 걸친 에르도안이 히잡을 쓴 여성의 치마를 들어올리는 만평을 게재한 에브도는 2006년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하면서 이슬람권을 자극한 바 있고, 이로 인해 2015년 이 언론사 사무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총기난사 공격을 받기도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 연합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 연합

프랑스-터키, 수차례 외교·군사적 갈등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대립과 갈등은 기독교-이슬람 문명의 대립구도 속에 그려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무함마드 풍자만화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두 지도자 간 갈등은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프랑스와 터키의 갈등은 에르도안 집권 초기부터 앙금이 차곡차곡 쌓여왔고, 그 앙금이 최근 기회 있을 때마다 표면화되고 있는 것뿐이다.

우선 집권 초기부터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던 총리 시절 에르도안에게 프랑스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EU에 이슬람권 국가가 가입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프랑스는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부터 쿠르드족 인권탄압이나 터키의 낮은 국민소득 등을 문제 삼으며 발목을 잡아왔다. 그 이면에는 독일과 프랑스의 주도 아래 움직이는 EU에 터키가 들어오면 프랑스의 역할과 발언권이 상당 부분 축소될 것을 우려하는 프랑스의 속내도 부분적으로 숨겨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50년대부터 상당수의 터키인이 독일로 진출했고, 경제협력을 지속해 왔던 독일과 터키의 관계는 현안에 따라 부딪히긴 했어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심각한 외교 마찰로 번진 것은 프랑스가 2011년 ‘아르메니아 학살 규탄 법’을 가결하면서부터다. 프랑스 하원이 1차 세계대전 말기 오스만튀르크 제국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대량학살’ 사건(1915~16년)을 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인데, 징역 1년과 벌금 4만5000유로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으로 양국의 감정은 골이 깊어질 만큼 깊어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거의 100년 전 과거사를 놓고 충돌한 것이다. 당시 총리였던 에르도안은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통치 시절 알제리인 대량학살을 지적하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서 군사협력을 중지하고, 양국 정치지도자 상호방문을 중단하겠다며 강력한 맞대응에 나섰다.

올해만 해도 양국은 벌써 수차례 외교·군사적 갈등을 빚었다. 동지중해 해저에 묻힌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권을 놓고 두 나라는 치열한 이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동지중해에 위치한 키프로스 섬은 남북으로 나뉜 분단국이다. 남쪽엔 그리스계가, 북쪽엔 터키계가 독립국가를 수립했으나 유엔은 남쪽에 있는 키프로스만 공식 국가로 승인했다. 그리스계 남쪽 키프로스공화국은 프랑스의 토탈(TOTLA)과 이탈리아의 에니(ENI) 등 다국적 에너지 기업과 자원개발을 하고 있다. 여기에 터키도 뛰어들어 북키프로스공화국 역시 키프로스 섬 인근 대륙붕 자원에 권리가 있다면서 인근 수역에 시추선을 투입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프랑스는 EU의 금융지원 제한 등을 주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 연합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조롱한 만평을 표지에 게재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EPA 연합

중동의 새 맹주 터키에 대한 ‘불편한 시선’

프랑스와 터키는 모두 나토 회원국이다. 다시 말해 동맹국인 셈이다. 그러나 시리아의 쿠르드민병대와 리비아 내전 문제로 양국의 갈등은 매우 심각해진 상황이다. 시리아에서 벌어진 IS(이슬람국가) 격퇴전에서 쿠르드민병대는 프랑스·미국 등 서방국가에 협력해 왔다. 그런데 같은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쿠르크민병대를 공격했다. 터키 입장에서는 자국의 골칫거리인 PKK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다는 명분 때문이기는 했지만, 서방국가와 터키의 관계는 이로 인해 크게 금이 가고 말았다.

리비아 내전에서도 양국은 첨예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다. 리비아는 2011년 카다피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서부는 리비아통합정부(GNA)가, 동부는 리비아국민군(LNA)이 장악하고 있다. 동서로 나뉜 리비아는 내전 상태다. 여기에 터키는 리비아통합정부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유엔이 인정한 합법정부다. 프랑스는 비공식적으로 동부 유전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리비아국민군을 지원하고 있다.

두 나토 동맹국이 지정학적 대결로 치달을 수 있다는 회원국들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프랑스는 터키가 유엔의 무기 금수를 지키지 않았고, 그 감시를 위한 해상작전에 프랑스군 자산을 배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토 작전 참여를 중단했다. 리비아에서 터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프랑스의 반발 조치인 셈이다. 나토의 지중해 안보·대테러 해상작전인 ‘바다의 수호자’는 지중해상의 대량파괴무기(WMD) 이동 감사, 항해의 자유 보장, 테러 대비 등을 목적으로 2016년부터 개시된 나토의 공동 해상작전이다.

급기야 지난 7월11일에는 프랑스 공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라팔 전투기가 리비아 서북부의 알 외티야 공군기지를 공습해 터키군 시설 파괴는 물론 기지 사령관을 비롯한 고위급 장교 9명이 사망하는 등의 인명 피해를 냈다. 이는 21세기 들어 터키군의 최대 규모 피해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 9월 동지중해에서 그리스·남키프로스·이탈리아 해·공군 합동군사훈련을 벌이고, 드골 핵추진 항공모함을 급파하면서 터키를 자극하기도 했다.

9월27일부터 6주째 계속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카라바흐 영토분쟁으로도 터키와 프랑스의 대립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프랑스에는 대략 50만 명 정도의 아르메니아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에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아르메니아에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으며,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왔다. 휴전 중에도 민간인 공습을 계속하는 아르메니아를 두둔하고 나서는 프랑스에 터키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제 정세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이 빠져나간 빈틈을 타 러시아는 슬그머니 중동을 장악하고 있다. 중동의 아랍국가들 또한 더 이상 아랍민족주의나 이슬람이라는 대의명분에 종속되지 않고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등 실리적 행보를 표방하고 있다. 여기에 과거 이슬람 종주국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고 재현하려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중동·북아프리카에서 식민주의 패권을 팽창해 나갔던 프랑스의 야욕이 부딪히고 있다. 그 이면에는 맹주로 떠오르는 터키가 불편한 서방국가와 이를 끌어당기려는 러시아가 있다. 이슬람 포비아로 표면화된 유럽의 불편함 속에 터키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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