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바이든 밑에서 대권 수업 받을 것”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6 10:00
  • 호수 16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안팎,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을 더 주목하는 이유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 “바이든, 5년 전 사망한 장남과 친분 각별했던 해리스 일찌감치 눈여겨봐”

미국이 새로운 기대감에 술렁이고 있다. 물론 11월12일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불복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지층이 양분된 채 갈등과 반목 현상이 계속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이란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분위기로 서서히 확산하고 있다. 또 하나의 포인트가 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이 바이든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AFP 연합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된 11월7일, SNS와 거리에선 해리스에 대해 더 흥분한 사람들의 열기가 분출됐다”고 보도했다. LA타임스도 “부통령 선출이 대통령 선출보다 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건 미국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왜일까. 단순히 최초의 여성 당선인이어서? 최초의 아시아계여서?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어서? 아니면, 바이든이 곧 80대에 접어드는 고령이어서?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해리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11월7일 그의 승리연설에서 증명됐다. 이날 해리스는 “내가 여성 최초의 부통령이지만, 내가 마지막은 아닐 것”이란 명연설을 통해 여성들을 감동시켰다. 인도 태생으로 미국에 정착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흑인·백인·아시아계·라틴계 심지어 북미대륙 원주민들까지 “수 세대에 걸쳐 싸우고 희생해 온 여성들”을 호명했고, 이들의 희생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울림은 미국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과 다른 나라 국민에게까지 이어졌다.

해리스 당선인은 1964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자메이카인인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UC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였다. 어머니 샤말라 고팔란은 19세에 미국 UC버클리로 유학 와서 캐나다 맥길대 교수를 지낸 유방암 연구자다.

엘리트 부모 밑에서 큰 굴곡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나이 7세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저소득층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로 통학하는 공립학교 어린 소녀가 인종차별로 상처를 입었다. 그 어린 소녀가 바로 나였다”(6월27일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란 그의 말처럼 그 시대 흑인 소녀가 겪었을 사회적 편견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승리 선언’ 연설을 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UPI 연합 

여성·흑인·아시아계 ‘3중의 유리천장’ 한꺼번에 깨트려

그가 워싱턴DC의 흑인 명문 대학 하워드대를 졸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하워드대는 미국 사회에서 뿌리 깊은 백인 위주의 대학 문화에 맞서 흑인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한 대학이었다. 해리스는 하워드대 출신이란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여기서 정치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거쳐 검사로 입문했다.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선 흑인학생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2011년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선거의 여왕’이 됐다. 이때도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검사장과 장관 시절 강력한 추진력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2016년 11월 선거에서 그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했던 바버라 복서 민주당 상원의원이 은퇴를 선언하자 오바마와 바이든의 후원을 등에 업고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의 텃밭으로 통한다. 그의 상원 진출 역시 역사를 만들었다. 첫 아시아계이면서 흑인 여성으로는 역대 두 번째였다.

워싱턴에서 해리스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높이게 된 계기는 2018년 9월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 때였다. 검사 출신답게 날카로운 질문으로 시종일관 캐버노를 괴롭히자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해리스를 향해 “미친 여자”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올해 6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해리스는 당시 유력 후보였던 바이든을 토론에서 거침없이 몰아세우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바이든은 이렇듯 경선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여전사’ 해리스를 왜 러닝메이트로 지명했을까. 바이든과 친분이 있는 강석희 전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은 11월10일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바이든 당선인의 장남인 보 바이든이 델라웨어주 법무장관(2007~15)을 지낼 때 같은 시기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던 해리스와 상당히 교분이 많았다. 당시 부통령이던 바이든도 그런 해리스를 관심 있게 봤던 것으로 안다. 자신의 뒤를 이어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란 기대를 했던 아들이 5년 전 뇌종양으로 사망하자 무척 상심했으며, 그래서 아들과 교분이 두터웠던 해리스를 더욱 주목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시장은 1977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시장(2008~12)에 당선된 미국 민주당 소속의 유력 정치인이다.

익히 보도됐듯 바이든이 해리스를 선택한 배경에는 선거 전 발생했던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이 크게 작용했다. 트럼프 행정부에 분노한 흑인들을 다독일 카드가 필요했던 것이다. 여성·흑인·아시아계 등 ‘3중의 유리천장’은 해리스의 당선으로 모두 깨졌지만, 특히 이번에 여성의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가 많다. 김재현 미주시사저널 편집장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미국인들에게서 흑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은 많이 사라졌다. 오히려 그보다는 해리스가 여성 후보라는 점에 더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4년 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배한 것 역시 미국 사회에 의외로 뿌리 깊은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시 힐러리는 패배 연설에서 “저를 신뢰해 준 여성들에게, 저는 우리가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아직도 깨지 못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해낼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에 이뤄질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4년 전 발언이 지금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은 마치 해리스의 등장을 예언한 것처럼 들리는 까닭이다.

대통령 후보와 부통령 후보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미국은 이번엔 해리스를 선택했다. 이에 대해 강 전 시장은 “힐러리는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 밟은 인텔리지만, 너무 오래 노출된 탓에 신선함이 많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올드한 이미지였다. 그에 반해 해리스는 뉴페이스 이미지다. 미국은 새로운 사람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 ⓒ시사저널 박정훈 

“바이든, 해리스에 상당한 역할 줄 것”…역대 최강 부통령 전망도

강 전 시장은 해리스가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이미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만 78세인 바이든은 스스로가 4년 후 재선 도전을 하지 않을 것이란 뜻을 내비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그는 클린턴이나 오바마와 같은 민주당 내 젊은 차기 대권주자들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중에서 해리스는 가장 강력한 선두주자로 올라선 셈이다.

부통령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역대 부통령들은 대통령의 그림자 역할을 하며 조용히 처신해 왔던 게 통상적이었다. 간혹 대통령을 대신해 행사장에 참석하는 역할 정도였다. 오바마 때의 바이든이나, 트럼프 때의 펜스 부통령도 그랬다. 여성 대권주자의 처신이 어려웠던 점 또한 사실이다. ‘남성적’ 행동은 자칫 비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여성적’ 행동은 나약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이중적 잣대 탓이었다. 해리스 역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남성적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해리스가 과연 있는 듯 없는 듯했던 ‘2인자’ 역할을 조용히 수행할 수 있을까.

강 전 시장은 “검사장·법무장관·상원의원 등 해리스는 항상 보스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해리스니만큼 좀 더 큰 꿈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친구 아버지인 바이든의 든든한 후원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벌써부터 해리스의 부통령으로서의 역할은 기존 관행을 깨는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권을 어느 정도 가지는 역대 가장 강력한 부통령이 될 거란 얘기다. 강 전 시장은 “바이든 당선인의 성격상 자신이 다 하기보다는 해리스에게 상당 부분을 맡길 가능성이 크다. 후계자를 키우는 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 유리천장인 아시아계의 벽이 깨진 것도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무척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김 편집장은 “전통적으로 한인사회에서는 공화당 지지층이 강했다. 큰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는 성향 탓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 지지층을 결집시킨 강 전 시장의 역할은 바이든 캠프에서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 전 시장은 “바이든이 해리스를 선택한 요인 중 하나로 아시안계 표의 중요성도 고려됐다”며 “실제 이번 대선에서 한인사회를 포함한 아시안계가 바이든 후보에게 65~70%의 표를 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 직전인 10월14일 미 전역에 있는 한국 특파원이나 한인사회 유력 인사들 120명 정도를 모아 바이든 후보 캠프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리고 바이든 후보 지지 성명도 이끌어냈다. 당시 행사가 바이든 캠프에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한인사회의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상당수 발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