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이다’ 김해신공항 백지화에 들끓는 PK와 TK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0.11.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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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어디에도 힘 못준 채 보궐선거 앞두고 ‘혼돈’
부산 중구 유라리광장에서 지난 11일 부산·울산·경남 시민단체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취소하고 가덕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시민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 중구 유라리광장에서 지난 11일 부산·울산·경남 시민단체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취소하고 가덕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시민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2004년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첫 논의 단계에서 같은 노선을 탔던 두 지역은 거듭된 ‘급정거’와 ‘항로 변경’ 속에 결국 등을 돌리게 됐다. PK와 TK의 엇갈린 운명을 바라보는 야당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텃밭 지역’의 극명한 대립 속에 국민의힘은 내년 4월 보궐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부산 민심이 여권으로 기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차기 대통령 선거에도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PK와 TK 사이에 낀 야당은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 직후 불협화음을 내며 복잡한 속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여당은 정치적 결정이란 비판을 뒤로한 채 ‘가덕신공항’ 추진에 속도를 내며 야당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모양새다. 선거를 앞두고 급부상한 이번 이슈는 상당기간 지역 갈등과 정치권 공방 등 여러 후폭풍을 불러 올 전망이다.
 

‘청사진과 백지화’ 왕복한 신공항 사업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17일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김해공항 활주로 추가 건설에 대한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로써 16년 전 시작된 동남권 신공항 사업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신공항 사업은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가시화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사업 타당성 등을 이유로 백지화 했고, 박근혜 정부 때 되살아났다. 박근혜 정부는 신공항 입지로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2016년 6월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 방안으로 최종 결정했다. 결과에 숨죽이던 두 지역은 가덕도도, 밀양도 아닌 제3안 제시에 허를 찔렸고, 공방은 재점화 됐다. 특히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김해공항 확장안으로는 관문 공항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12월 신공항 사업은 다시 검증대에 올랐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2016년 영남권 신공항 타당성 조사 당시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가덕신공항 안을 일부 수정한 2020년 부산시 가덕신공항 수정안 ⓒ 부산시 제공
2016년 영남권 신공항 타당성 조사 당시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가덕신공항 안을 일부 수정한 2020년 부산시 가덕신공항 수정안 ⓒ 부산시 제공

김해신공항이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되면서 ‘가덕신공항’ 추진 가능성은 한층 힘을 받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특별법 발의, 긴급대책위 구성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여권의 속도전에 PK와 TK는 전면전에 돌입했다. PK는 결정이 다시 뒤집히는 걸 막기 위해, TK는 원점으로 되돌리기 위해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자체는 물론 시민단체도 “우리는 남이다”를 외치며 양보없는 혈투에 들어갔다.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 후 “정책 결정의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부산시는 여러 정부에 걸쳐 장기간 검토된 사안임을 언급하며 혈세와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 등 절차를 최대한 단축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 추진을 요청했다.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PK 여론은 물론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TK는 거세게 반발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김해공항 확장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보완해 추진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목적으로 (신공항 이슈를) 이용하려 하는 것은 영남권을 또다시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PK와 TK에 각각 지역구를 둔 정치인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부산시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결정에 환영 의사를 표하며 “가덕신공항 추진에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이 적극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당 서병수 의원(부산 진구갑)과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도 이례적으로 정부 정책을 긍정 평가하며 협조를 약속했다.

야당 소속 TK 의원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하며 맞불을 놨다. 대구시당위원장인 곽상도 의원은 “전문기관의 용역 평가를 통해 결정된 국책 사업이 갑자기 부산시장 보궐선거용으로 뒤바뀌어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권영진 대구시장 등도 선거를 위한 ‘포퓰리즘 정치’가 이같은 결정을 가져온 것이라며 여권의 잘못된 선택으로 국가 미래와 영남권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 물거품 됐다고 주장했다.

대구를 지역구로 둔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가덕신공항 건설에 찬성한다면서도 “가덕신공항 특별법과 대구신공항 특별법, 광주 공항 이전 특별법을 동시에 만들어 국토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구 지역 내 신공항 건설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가 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김해신공항' 백지화 발표가 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PK와 TK’, 어디에도 힘 못주는 국민의힘

PK와 TK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면서 국민의힘은 난관에 봉착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실책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민주당과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며 유리한 고지를 점한 듯 했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에 지도부는 물론 당 전체가 혼돈에 빠져들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상반되는 발언을 이어가며 지도부 내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대선 전초전으로 인식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부산 지역 지지율을 소폭 앞서는 것을 확인한 야당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당론을 확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재로선 어느 쪽에도 힘을 싣지 못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발표가 선거를 위한 정략적 결정임은 분명하다면서도, 검증 결과가 나온 만큼 가덕신공항 건설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공항을 둘러싼 거듭된 발목잡기와 내분이 표면화 되면 보궐선거도, 대선도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한 것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앞둔 국민의힘 잠재 후보들도 조속한 당내 갈등 봉합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신공항을 어디에 짓든지 TK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며, 소모적 당내 분쟁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지역 공동 발전을 위한 생산적 논의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가덕도공항을 만들어 대구와 남부권 전체 교통망이나 산업파급 효과를 함께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그 갈등은 과거와 같은 갈등으로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7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민항기가 이륙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이날 타당성 검증 결과 발표를 통해 "김해신공항안은 안전, 시설운영·수요, 환경, 소음 분야에서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미래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17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민항기가 이륙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이날 타당성 검증 결과 발표를 통해 "김해신공항안은 안전, 시설운영·수요, 환경, 소음 분야에서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미래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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