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사회안전망 갖춰지면 노동개혁 논의할 수 있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3 14:00
  • 호수 16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진보정치 금기’에 도전하는 김종철 정의당 대표
“당 지지율 두 자리, 세 자릿수 지방의원 배출이 목표”

당직자를 포함해 정의당 당원들은 자신들의 정치활동을 설명할 때 ‘진보정당운동’이라는 말을 종종 쓴다. 이들 중 일부는 의원 배지를 달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못한다.

생업을 뒤로하고 정치 혁신과 사회 개혁에 투신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그렇다 보니 진보진영 일각에선 운동과 정치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운동을 정치의 상위 개념으로 보는 경향도 분명 있다. 진보적 가치와 정치적 현실주의는 양립 가능할까. 이에 대해 고(故) 노회찬 의원의 입장은 단호했다. “한국 (진보)정치는 운동과 정치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운동이 정치의 우위에 있거나 정치보다 더 높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의당에서 노 전 의원의 이러한 실용주의적 정치 노선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김종철 신임 대표다.

김 대표는 97세대(1990년대 학번, 1970년대 출생)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최근 언론이 그와 함께 97세대로 분류하는 이는 박용진·박주민 민주당 의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등이다. 학계에선 이들이 이전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와 차이 나는 이유를 ‘실용적 사고’에서 찾는다. 김 대표 역시 당 대표 선거에 나서면서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진보의 금기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일성은 정치 노선과 계파를 뛰어넘어 당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증세와 복지 확대 주장하는 97세대 선두주자

그가 말한 금기 타파는 증세와 복지 확대다. NL계로 대표되는 국가사회주의 관점에서 볼 때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김 대표는 “강한 노동과 넓은 복지는 정의당이 추구해 온 생태와 평화의 존중과 함께 진보정치를 떠받드는 중요한 가치”라고 설명했다. 노동 개혁과 관련해서도 그는 “실업·해고 등 노동 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이 갖춰진다면 (노동 개혁도) 전향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의당으로선 21대 총선 결과가 여전히 아쉽다. 비례위성정당 출현으로 정의당 의석수는 당초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다. 혹자는 진보정당 위기를 지적한다. 정의당의 전신인 통합진보당이 2012년 총선에서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의 성과를 냈을 때만 해도 진보정당의 집권은 꿈이 아닌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정의당을 포함해 여러 진보정당의 존립 기반마저 위태롭다. 김 대표의 복안은 어디에 있을까.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진보정당의 선명성을 더욱 강조하겠다”면서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까지 지지율 두 자릿수, 내후년 지자체 선거에서 세 자릿수 지방의회 의원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97세대가 부상함에 따라 김 대표의 다음 행보도 주목받는다. 11월17일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일차적으로 임기 완수가 목표지만, 당이 요구한다면, 2022년 대선과 지자체 선거 출마도 적극 고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당 대표 선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나.

“선거를 앞두고 토론회에서 제가 과감하고 선명한 진보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 후 선거운동 차원에서 당원들에게 전화를 많이 걸었는데 ‘토론 때 한 얘기가 와 닿았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당원들이 약간 진보적인 사람들이긴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인식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그런 주장을 했다는 건 그동안 정의당의 정책이 선명하거나 과감하지 못했다는 걸 뜻하나.

“그런 반성도 좀 해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세 문제에서 법인세는 최소한 노무현 정부 수준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충해야 한다고 하긴 했는데 그걸 의제화시켜 끝까지 밀고 나가진 못했다. 연금 개혁 같은 것은 필요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진 못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낀 의제를 중심으로 많이 발언했다. ‘데스노트’가 대표적이다. 각광은 받았지만, 우리가 뭘 주도한 건 아니었기에 우리 정의당이 평론, 평가하는 정당으로 비친 건 아쉽다.”

데스노트로 대표되는 캐스팅보터 역할이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도 있다.

“20대와 21대는 국회 구조가 바뀌었다. 지금은 민주당이 압도적 과반이다. 협치야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읍소하다 보면 민주당이 허락하는 진보 프레임이 갇힐 것이다. 우리가 더 세게 비판해야 민주당이 바뀐다고 본다.”

정의당이 선점했던 상당수 정책과 의제들을 지금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음에도 국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 민주당이 보수정당이 돼 가고 있다고 본다. 기득권에 물들고 있다. 노동자 출신인 한정애 의원마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돼선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솔직히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정치 지도자에게 중요한 게 소신과 신념이다. 무엇을 잘하기 위해 어떤 인생역정을 살았고, 무엇을 공부했는가를 중요하게 보는데 이 대표는 그런 게 없다.”

그건 민주당 주류인 친문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개혁과 진보를 더 강하게 추진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국민의힘보단 좀 낫지 않냐’에 그친다. 신(新)보수정당에 불과하다.”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가 금기인가.

“세금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저쪽(국민의힘 또는 보수진영)은 완전 금기고, 우리도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일각에선 노동 개혁과 관련해서도 정의당이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업과 해고가 반복되는 노동자들에게 사회안전망을 갖춰주는 게 중요하다. 그런 것들이 전제된다면 유연화도 고민해 볼 수 있다. 그게 덴마크식이다. 노동 환경 유연화를 받아들이면 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업급여 액수와 지급 기간을 늘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국가가 재교육과 재취업 훈련을 시켜줘야 한다. 노동이사제도 필요하고, 비정규직 확대에 따른 동일노동·동일임금도 법제화해야 한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당 지지율은 3~4%인데, 당내 차기 대선주자인 심상정 전 대표의 지지율은 1~2%에 불과하다. 대중성 확대가 중요한 과제 아닌가.

“그나마 최근에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주문하고 있다.”

언론에선 김 대표를 97세대 선두주자로 분류한다. 직전 세대인 86세대와의 구분에 대해선 동의하나.

“86세대와는 세대 분리보다는 노선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86세대는 어떻게 보는가.

“현실에 안주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정의당 내부에선 계파나 노선 경쟁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우리 내부에선 그걸 정파 또는 의견그룹이라고 부른다. 나 개인은 평등사회네트워크라는 그룹에 소속돼 있다. 그것을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계파를 입에 올리기 꺼려 하는 건 정파 자체가 인맥이기 때문이다. 누구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며, 어디서 갈라졌는지가 중요해서다. 정당이 투명하게 운영돼야 하듯 정당 내 정파도 마찬가지다.

다른 진보진영과의 연대도 모색하나.

“고민 중이다. 내년 부산시장 재보선에서는 진보정당, 시민단체와 공동후보를 내자고 제안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의당과 치열한 정책 논쟁을 벌이길 희망했다. 이 지사의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제외하고 기본주택·기본대출은 이미 다 나온 것이다. 그걸 기본권 측면에서 접근하는 건 굉장히 긍정적이다.”

국민의힘의 좌클릭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개인 플레이 아닐까.”

별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김 위원장이랑 이야기하면 이분이 혼자 이야기하는 것인지, 당내 공감대가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간다. 국민의힘이 변화를 꿈꾼다면 당론으로 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당 대 당으로 논의할 텐데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요즘 소속 의원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무엇인가.

“최근 여러 가지 의제를 내놓았는데, 그걸 입법화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원외 당 대표로서의 한계로도 들린다.

“솔직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걸 이렇게 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취임 후 한 달 정도 지났으니 설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조세 개혁도 그렇고 연금 개혁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가져온 의제가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어 다행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차별금지법에 대해선 민주당이 답을 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재임 기간 중 정한 목표가 있나.

“내년 재보선 때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제3당으로서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유의미한 결과란 뭔가.

“최소 두 자릿수 지지율은 나와야 한다. 대선이 당 대표 임기 후반부에 있는데 그때는 진짜 진검승부를 벌일 생각이다. 과거 우리 당엔 노회찬과 심상정만 있었다면 이제는 두 분에 버금가거나 더 멋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대선 3개월 뒤 지방선거가 있다. 개인적으로 지방자치 체제에서 정의당의 가치를 더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지방의원 세 자릿수 당선이 목표다.”

김 대표 스스로 대선이나 지방선거에 뛰어들 계획도 있나.

“내년 재보선 때는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고 우리가 실력이 있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다. 지방선거에서 다들 출마하기 어렵다고 말하면 대신 들어갈 생각은 있다. 책임져야 하기에. 차기 대선은 임기가 70% 정도 남았을 때 열린다. 취임 1년 차인 내년 10월경이면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텐데 물론 나도 후보군의 한 명으로서 열심히 뛸 생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성과가 중요하다.”

일찍부터 ‘진보 이끌 기대주’로 불리며 높이 평가돼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정치권에서 미완의 기대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90학번인 김 대표는 3년간 회사 생활을 한 뒤 1999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비서로 정치권에 발을 내디뎠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과 윤소하 전 의원이 원내대표를 할 때 비서실장을 지냈다. 민노당 시절에는 대변인과 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권영길 대표가 이끈 국민승리21 시절에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과 함께 진보정치를 이끌어갈 쌍두마차로 불렸다.

김 대표는 2006년 지방선거 때 36세 나이에 민노당 대표를 지낸 김혜경씨를 이기고 민노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 18대와 19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두 차례 모두 낙선했다. 또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허동준 민주당 후보와 후보 단일화에 나섰지만 아깝게 밀리면서 역시 원내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1대 총선에선 비례대표 후보 16번에 이름을 올렸다. 또 다른 97세대 주자인 보수 성향의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과는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

☞연관기사 

‘시즌2’ 새 출발 천명한 정의당, 문제는 ‘인물’이다

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144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