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에너지와 원전의 조화 가능하다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3 14: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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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원자력발전소의 10% 규모 SMR 주목
한국, 기술력 확보한 만큼 경쟁력도 있어

감사원은 10월20일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계속 가동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고,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경제성 평가 결과 도출 이전에 조기 폐쇄와 즉시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결과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대규모 전력을 비교적 저렴한 연료비로 생산하는 수단으로서 한국에 1970년대 후반 도입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는 점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 이후 많은 나라가 원전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가동 중단 및 폐쇄 결정을 내리면서 원전은 사라지는 것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향후 예상되는 전력 수요 충당과 이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추가 발생 억제를 위해선 원전의 역할이 일정하게 필요하다는 인식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다시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원전 폐쇄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11월12일 영국 BBC는 롤스로이스사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영국에 16개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은 현재 가동 중인 7개 원전 중 6개는 2030년까지, 나머지 하나는 2035년까지 폐쇄 또는 운전 정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즉 이번 발표는 좀 엉뚱하게 보인다. 정부 계획과 관계없이 민간부문에서 원전 건립을 추진하는 걸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를 밝히면서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포했다. ⓒ연합뉴스

전력 수요 급증의 대책으로 떠오른 SMR

롤스로이스 측이 발표한 원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전과는 좀 다르다. 일반적인 원전이 대규모 토목사업을 동반한다면 롤스로이스가 추진하는 원전은 규모가 작은 원자력 발전기기를 공장에서 사전 제작해 현장에 간단하게 설치하는 개념이다. ‘SMR(small modular reactor)’로 불리는 이 소형 원전은 원자로를 비롯해 중기발생기, 냉각펌프 등 모든 설비가 하나의 용기 안에 포함돼 규모가 일반 원전의 1~10% 불과하다. 단순한 구조 덕에 사고 발생 가능성도 낮췄다. 작은 규모와 표준화를 통해 기존 원전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건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롤스로이스 측은 주장한다. 

영국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 에너지 보급과 탄소 배출 저감에 적극 나섰다. 2020년엔 두 달 동안 석탄화력 발전 없이도 전력망을 유지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런 성과는 전체 전력 생산의 10%를 풍력이 책임지는 재생 에너지 확대와 더불어 석탄을 대신하는 천연가스 이용 확대(46%), 원자력(21%) 유지를 통해 달성했다. 모범적으로 탄소 배출을 저감하고 있는 영국이지만 향후 전력 수요의 폭발적 증가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저감량이 상쇄되는 넷제로(Net Zero)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발전 이외에도 운송 및 난방 등에 사용하는 화석연료 사용을 극적으로 줄여야 한다. 이는 결국 전력 수요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BBC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향후 전력 수요가 3배 가까이 증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영국 정부는 풍력의 비중을 25%까지 끌어올릴 예정이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원전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통적인 고가·대형 원전 대신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고 빠르게 설치할 수 있는 SMR을 통해 전력 수요를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수출산업으로의 육성도 도모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친환경 사업 지원계획의 일환으로 2억 파운드(약 30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원전에 대한 투자는 미국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미국을 2035년까지 100% 청정 에너지 경제로 전환시키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10% 수준 비용으로 대규모 송전망을 유지할 수 있는 전력 저장시설의 기술 개발과 더불어 SMR 개발 및 설치 등에 2조 달러(약 2200조원)를 투자할 계획임을 수차례 밝혔다. 풍력과 태양광 확대는 계속 추진하지만 이것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원전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역시 올해 1972년 이후 거의 50년 만에 당 강령에 원자력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표명해 향후 원전 투자와 지원은 확대·지속될 전망이다. 

실제 지난 9월 SMR 개발과 건설을 추진 중인 미국 뉴스케일(NuScale)사는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SMR 설계안에 대한 표준설계 인증을 획득했다. 현재 뉴스케일의 SMR은 kW당 건설비가 5000달러 정도로 경제성 기준인 4000달러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향후 건설이 진행될 경우 비용 감소 가능성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는 원전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다시 일으켰다. ⓒ연합뉴스

온실가스 배출 없는 원전 역할 다시 검토해야

지난 10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넷제로를 선언하면서 온실가스 감축은 다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됐다. 산업부문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과 태양광·풍력 등 재생 에너지 확대가 이뤄지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 저감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향후 운송부문에서 전기차로의 전환과 냉난방에 대한 전력 수요 증가 등이 예상돼 전력 수요 확대는 필연적이다. 그래서 온실가스 배출 없는 전력 생산 방식인 원전의 역할에 대해 다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원전의 방식이 꼭 기존의 대규모 가압형 경수로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 에너지는 환경 변화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큰 폭으로 변한다. 이에 따라 전력망 유지를 위해 별도의 발전설비를 갖춰야 하며 여기에 SMR은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재생 에너지 확대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원전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확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2012년 SMR에 해당하는 시스템 일체형 원자로(SMART)를 개발했고, 2017년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표준설계인가를 취득했다. 충분한 경쟁력과 잠재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지나치게 정치화된 원자력에 대한 대립 구도에서 탈피해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원자력의 역할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기존 원전 방식이 아닌 다른 다양한 대안이 존재함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기술에 얽매인 사고로는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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