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으로 한류 이끄는 K팝을 보라"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29 11: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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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노마드 정호재의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

해외여행이 아득해지는 시대에는 그 대체재조차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시후의 차갑고, 습한 공기를 가진 항저우나 쿨리(옛 중국인 노동자)가 곧 튀어나올 것 같은 싱가포르 클라키의 습한 거리, 호안끼엠 호수의 아득한 야경이 이제는 기억에서 다 사라져가고 있다. 이때 출간된 정호재의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는 빠른 비트의 K팝을 들으면서 이런 도시를 주유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15년 전부터 아시아 각국을 취재하다가 3년 전에 일을 그만두고 동남아로 떠난 노마드다. 이후 2년3개월은 싱가포르에서, 7개월은 미얀마, 2개월은 호찌민과 방콕, 족자카르타 등에서 살았다. 이런 노마드도 코로나19는 어쩔 수 없었다. 귀국해 논문을 써도 된다는 교수의 허락을 받고, 지난 6월 귀국해 논문보다는 책을 우선 냈다. 그의 책은 말 그대로 ‘방금 막 3년간의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악단처럼 신비하고 흥미롭다.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정호재 지음|눌민 펴냄|472쪽|2만1000원》
《아시아 시대는 케이팝처럼 온다|정호재 지음|눌민 펴냄|472쪽|2만1000원》

그는 왜 K팝에 집중했나

책은 K팝이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지만, 문화를 통해 투사한 한국과 아시아에 대한 깊은 사색이다. 그는 왜 K팝에 집중했을까.

“우리나라에 굉장히 깐깐한 일본과 싱가포르 미디어가 한국을 존경하는 순간도 있다. 박지성과 손흥민 같은 축구 선수, BTS(방탄소년단), 싸이, 트와이스, 블랙핑크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봉준호 감독 때는 컬처쇼크 수준이었다.”

그중 가장 집중할 수 있는 게 K팝이다. 다른 것은 보거나 듣는 것이라면, K팝은 직접 춤을 추고, 한글을 배우고, 찍는 등 가장 능동적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풍경이 낯설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대다수는 자국 노래나 영어 팝을 즐겼는데, 3~4년 만에 대중문화 소비가 K팝으로 바뀌는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비교아시아학’이라는 특이한 논문을 준비하는 그에게 좋은 관심거리가 됐다. 한 싱가포르국립대 비교문학 교수는 아시아의 현대화는 ‘제3세계’가 글로벌화에 자연스럽게 포섭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학문에서 아시아는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관념으로만 느껴졌다. 마르크스, 헤겔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아시아를 설명하려 했지만 성공한 적은 제대로 없다. 반면에 도올 김용옥 같은 이들은 동양학을 바탕으로 서양 철학을 종횡무진 주유한다.

하지만 그가 만나는 동남아 국가들의 가장 큰 관심은 싱가포르 등에서 열리는 BTS 콘서트의 표 구하기인 것이 현실이다. 한국 여권을 가졌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말을 걸고,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저자는 그 내면을 확인하고 싶었고, 그의 경험과 K팝의 여정을 정리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위대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경계한다.

“블랙핑크를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어낸 원동력은 아세안의 열성적인 팬들이었다. 이는 비단 아시아의 지역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 시대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와 있을지 모른다. BTS 현상은 동양의 문명이 부활하고 복구된 것이다. 한류는 정복의 역사를 앞세운 국가의 명예보다는 개인의 창의성과 기업의 자유로움, 나아가 합리적인 제도가 지역적 천연성과 지리의 이점을 바탕으로 서로 소통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오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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