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의 신념 ‘차기 대통령도 우리 손으로’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1.30 08: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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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이재명 양강 구도에 대한 불안감…친문 지원받는 ‘제3 후보론’ 대두

더불어민주당 ‘친문(친문재인)’세력의 움직임이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친문 의원들은 민주당 전체 의원의 3분의 1가량이 참여하는 매머드급 싱크탱크 ‘민주주의4.0 연구원’을 출범시키며 차기 재집권의 견인차가 될 것을 자임하고 나섰다. 이들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책적 제안을 위한 모임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국은 여권의 대선후보 구도에 어떤 식으로든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누가 민주당의 대권 후보가 될 것인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양강 구도를 형성해 온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가운데 한 사람이 될지조차도 불확실하다. 최근 들어 당 안팎의 친문세력을 중심으로 제3 후보의 필요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친문의 고민은 1·2위를 다투고 있는 이 대표와 이 지사 가운데 누구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친노-친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현 주류의 정치적 혈통이 아니다. 친문세력 내에서 적임자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를 밀면서 대선후보로 만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마땅한 후보감이 떠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이낙연-이재명이 일단은 선두 반열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11월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민주주의4.0 연구원 창립총회 및 제1차 심포지엄에서 도종환 이사장 겸 연구원장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민주주의4.0 연구원 창립총회 및 제1차 심포지엄에서 도종환 이사장 겸 연구원장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이재명에 대한 불안감 생겨나

그런데 문제는 이낙연-이재명 두 사람으로는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상승세를 타왔던 두 사람의 지지율은 최근 들어 박스권에 갇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야권의 잠재적 후보로 급부상해 이들과 선두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 되면서, 야권의 추이에 따라서는 대선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긴장감이 여권 내부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야권의 대통령 후보감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해 왔지만, 막상 여권 후보들이라고 그리 강력한 주자인 것은 또 아니었던 셈이다.

이 대표든 이 지사든 확장성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지지율이 꺾일 경우, 야권의 후보 추이에 따라서는 경쟁력에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양강 구도는 불안한 1·2위 경쟁이며, 정권의 중심인 친문들로서는 두 인물로 대선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새로운 제3의 대안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정세균 총리가 제3의 후보로 출마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친문이 전폭적으로 미는 주자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면 친문이 가장 기대를 걸었던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사건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음에 따라 사실상 대선 출마가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친문이 자신들의 후보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이광재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심지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이름까지 거명되고 있다. ‘민주주의4.0’에 결집한 친문은 이제 이낙연-이재명뿐만 아니라 여러 선택지를 놓고 저울질할 것이다. 차기 대권 후보에 대한 선택권은 자신들에게 있음을, 차기 대통령 역시 자신들이 만들 것임을 믿으며.

 

‘성찰 없는 재집권 시도’ 시선 받을 위험성도

친문세력의 적극적 움직임은 과거 선거에서 친문이 제일 앞 열에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처신을 했던 때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2012년 대선을 치를 때는 이해찬 대표 등이 뒤로 물러서면서 친노-친문 프레임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는 행보를 했는가 하면, 2016년 총선 때는 이해찬·노영민·정청래·김현 등 대표적 친문들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해서는 ‘친문’ 색채를 엷게 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 선거의 핵심 과제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과거를 돌아보면 민주당 친문세력이 재집권의 주역이 되겠다며 대규모 조직을 만들어 선봉에 결집하는 광경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 같은 변화는 친문세력이 갖는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과거처럼 누구의 눈치를 보며 지레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이유도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일 것이다. 그런 자신감은 친문이 문재인 정부를 대표하는 유일하고도 명실상부한 책임세력이라는 판단의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한 손에 제3 후보의 카드를 든 친문, 그들의 위용을 과시하는 세력화는 기존의 대선주자들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이미 이 대표도 이 지사도 친문의 눈치를 보느라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이낙연 대표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데는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을 보임으로써 민심에 부응하는 대선주자로서의 기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크다.

이 대표는 추미애 장관의 거취에 대해서도,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서도 말할 자유가 없는 여당 대표다. 이 대표가 만약 문 대통령과 다른 입장이나 노선을 택할 경우 이제까지 소극적 지지를 해 왔던 친문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대표는 자생력 없는 친문 의존형 대선주자라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사정은 이재명 지사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이 지사의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던 것은 자기의 뚜렷한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대권 주자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무공천 주장을 했다가 하루 만에 거두어들이는 등 친문의 눈치를 보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어 고유의 매력이 상실되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의 숙명과도 같은 ‘친문 눈치보기’는 결국 친문층의 지지를 얻는 대신 중도 확장성을 포기해야 하는 길로 이들을 내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친문세력이 다시금 여권의 대권 구도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상황이 우리 정치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하는 점이다. 여권의 차기 대선을 다시 친문이 주도하는 상황은 여당 내 힘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여권 내의 어느 세력도 친문의 지원 없이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권으로서는 현존의 세력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가장 효율적인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중심 세력으로 정권의 공과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친문의 영향력을 차기 정권으로까지 이어가려는 모습은, 성찰 없는 재집권 시도라는 시선을 받을 위험성도 크다. 친문세력이 만들고 지켜왔던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 부동산 세금의 증가, 윤석열 찍어내기로 변질된 ‘검찰 개혁’ 등으로 민심을 등 돌리게 만들었다. 그 길을 무조건 추종하며 지켜왔던 친문세력은 그러한 국정 난맥에 대해 당연히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런데 국민에게 책임을 통감하는 말 한마디 없이 다시 한번 ‘친문 정권’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민심은 이들에게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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