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당분간은 미국 쪽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
  •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1 08: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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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쪽의 자극과 위협 없는 한 북한 내부 문제 해결에 집중할 가능성 커   

치열했던 미국 대선이 끝나고 결국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당선인 인수위원회는 11월23일(현지시간)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팀 핵심 인사 명단을 발표했다. 바이든 후보가 대선 승리 선언을 한 지 3주를 넘어가고 있는데도 북한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 사례와 비교해 보면 분명히 이례적이다.

2008년 오바마 당선 당시 북한 매체는 이틀 만에 “공화당 후보인 상원의원 매케인을 많은 표 차이로 물리쳤다”고 보도했다. 2012년 오바마 재선 때에는 사흘 만에 논평 없이 사실만 전달했다. 2016년 트럼프 당선 당시에도 이틀 만에 당선자 이름은 거론하지 않고 ‘새 행정부’로 표현하며 대선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 긴 침묵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친선을 유지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승복하지 않아서일까. 김 위원장은 대선 중 코로나19에 감염된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반해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해서는 원색적인 모욕을 서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바이든과 같은 미친개를 살려두면 더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으므로 더 늦기 전에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막말 비난을 쏟아냈다. 또 바이든을 “모리간상배” “사흘 굶은 들개” “치매 말기” “집권욕에 환장이 된 늙다리” “미치광이” 등으로 지칭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대목들이다.   

11월15일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

침묵 자체가 미국을 향한 메시지일 수도

하지만 북한은 이제 좋든 싫든 바이든 당선인을 상대해야 한다. 사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 가능성에 일찌감치 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4일 최선희 외무상 제1부상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이용되는 정치적 도구로서 북·미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미 이룩된 수뇌회담 합의도 안중에 없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는 미국과 과연 대화나 거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라고도 했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 계산표를 짜놓고 있다”며 “그 누구의 국내 정치 일정과 같은 외부적 변수에 따라 우리 국가의 정책이 조절 변경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상관없이 이미 결정된 노선과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에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제재 완화에 더는 연연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제재를 무력화하기 위해 정면돌파전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지난해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한 발언과 맥락이 일치한다. 즉 미국이 자기들의 근본이익에 배치되는 요구를 그 무슨 제재 해제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미국의 대치는 어차피 장기성을 띠게 돼 있으며 적대세력들의 제재 또한 계속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적대세력들의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자력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들을 고려하면 북한의 침묵은 자연스러운 대응으로 비치기도 한다. 또한 침묵 자체가 미국에 대한 나름의 의사 표시일 수 있다. 북한이 내부적으로는 미국 대선 결과를 놓고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무관심한 것 자체를 일종의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누가 당선되든 그 결과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우리 갈 길을 간다’는 기조를 침묵이라는 무언의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국 변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미 관계를 장기적인 전략 아래서 관리해 나가겠다는 입장에서 보면 일관된 태도인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을 통해서도 향후 대미 정책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 그는 적대세력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가중되는 핵위협을 포괄하는 모든 위험한 시도와 위협적 행동을 억제하고 통제 관리하기 위해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가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고 지역의 평화를 수호하는 데 이바지할 전쟁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 어떤 세력이든 자기들의 안전을 다쳐놓는다면, 자기들을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한다면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해 응징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들의 군사력이 그 누구를 겨냥하게 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고, 그 누구를 겨냥해 전쟁억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 내정자(왼쪽)와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연합뉴스·AP연합

바이든 시대 북·미 기싸움 더 치열해질 전망

사실상 미국을 겨냥해 자신들을 건드리지 말고, 자극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을 향한 높은 수준의 경고 메시지나 다름없다. 실제 미국 행정부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공개에 크게 못마땅해했다. 11월17일(현지시간)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은 하와이를 보호하는 시나리오 아래 요격미사일 ‘SM-3 블록 2A’를 발사해 모의 ICBM을 격추했다. 북한의 향상된 핵미사일 능력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미 간에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단기간 내 북·미 관계가 개선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미 군사훈련, 대북 제재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이 전환되지 않는 한 미국과 다시 마주 앉지 않겠다는 입장도 고수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언제쯤 대선 결과와 관련한 반응을 보일까. 바이든 당선인의 인수인계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북한도 매체를 통해 조만간 관련 소식을 보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밝힌 대미 입장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작아 보이지만 내년 초에 열릴 예정인 제8차 당대회에서 대미 정책 방향도 공개할 것이다. 워싱턴 쪽에서 자신들을 크게 자극할 만한 발언과 위협적인 군사행동이 나오지 않는 한 코로나19 대응과 올해 미진했던 경제건설 등 내부 문제 해결에 집중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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