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추진비가 알려주는 장관들의 ‘단골 맛집’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1 10:00
  • 호수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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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조용하고 별실 있는 식당 선호…종로구 한식당 ‘가진화랑’은 靑도 자주 찾아

미식가들은 블로그나 SNS에서 홍보하는 식당을 결코 ‘맛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위 공무원들이 즐겨 찾는 단골식당에서 진정한 미식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장관 수행비서를 했던 한 공무원의 말이다. “장관들은 외부 사람들에게 밥 살 일이 많다. 체면을 차리는 분들이어서 조용한 분위기와 정갈한 음식을 선호한다. 가격대도 적당해야 하고, 당연히 맛있어야 한다. 따지는 게 많다 보니 진짜 맛집을 찾아다니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의 현직 장관들이 즐겨 찾는 맛집은 어딜까. 시사저널이 올 3~9월 장관급 중앙행정기관 23곳 기관장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자주 가는 식당들이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몰려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특히 빈번하게 등장하는 곳은 ‘가진화랑’(한식), ‘차이797’(중식), ‘테라스222’(양식) 등으로 나타났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이들 3곳을 직접 찾아가 봤다.

11월24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테라스222. 코로나19 영향 탓인지 점심시간임에도 손님이 붐비진 않았다. 정부서울청사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주변 인적은 드문 편이다. 미술관과 대한축구협회 회관 등이 주위에 자리 잡고 있다.

테라스222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친필 사인과 사진이 있다. 이 외에 여러 정치인의 사인이 전시돼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테라스222(오른쪽 사진) ⓒ시사저널 박창민
테라스222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친필 사인과 사진이 있다. 이 외에 여러 정치인의 사인이 전시돼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테라스222(오른쪽 사진) ⓒ시사저널 박창민

강경화 외교장관이 자주 찾는 ‘테라스222’

테라스222는 미술 갤러리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실내에는 각종 그림과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테이블 간격도 널찍해 여유가 있었다. 칸막이가 있는 룸도 여러 개 있어 사적인 모임을 갖기에 유리한 구조였다. 

식사 가격은 저렴한 편이 아니다. 주 메뉴인 파스타와 피자는 2만3000~3만원대다. 스페셜 요리는 A·B코스로 분류되는데, 2인 기준 11만~15만원이다. 이 외에 리조토·스테이크·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을 제공한다. 와인과 수제맥주도 준비돼 있고, 그에 맞는 다양한 안주도 갖춰져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테라스222를 자주 찾는 장관 중 한 명이다. 3~9월 외교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 따르면, 강 장관은 이곳에서 네 차례 업무추진비를 썼다. 이 가운데 5월과 6월 두 번은 일대일 식사를 했다. 5월에는 ‘외교현안 관련 업무회의’를 위해, 6월에는 ‘유관기관 업무협의’를 위해서였다. 테라스222는 강 장관의 오랜 단골집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식당 한편에 강 장관이 2017년 8월27일 방문했다는 사인과 사진이 걸려 있었다. 전·현직 통일부 장관도 자주 찾았다. 통일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보니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 번, 김연철 전 장관이 세 번 테라스222에서 식사를 했다.

테라스222는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식당 입구에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손학규 전 민생당 대표, 남경필 전 경기지사 등 여러 정치인의 사진과 사인이 전시돼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단골이라고 한다. 전직 장관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다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테라스222 관계자는 “고위 관료 출신과 정치인들이 이곳에서 모임을 많이 한다”며 “룸도 있고 한적한 분위기 때문에 많이들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테라스222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친필 사인과 사진이 있다. 이 외에 여러 정치인의 사인이 전시돼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테라스222(오른쪽 사진) ⓒ시사저널 박창민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가진화랑 ⓒ시사저널 박창민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맛집”

이날 오후 6시에는 또 다른 단골식당인 가진화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곳은 여느 맛집과 달리 인터넷에 정보가 많지 않다. 가진화랑은 2층 주택을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밖에서 봤을 때는 식당처럼 보이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식당 느낌이 났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분위기였다.

벽에는 크고 작은 미술품들이 걸려 있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비빔밥을 먹고 있는 사진과 친필서명이 눈에 띄었다. 단체손님이 들어갈 수 있는 룸은 두 개 마련돼 있다. 이곳은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고 있다. 제공하는 공식 메뉴는 비빔밥 정식 하나뿐이다. 가격은 점심 1만5000원, 저녁 1만7000원이다. 단 ‘비공식’으로 제공하는 메뉴도 있다. 예약손님이 미리 요청하면 불고기·수육·회 등도 따로 준비해 준다고 한다.

가진화랑은 업무추진비를 조사한 3~9월에 장관 10명이 거쳐간 식당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명래 환경부 장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가진화랑에서 식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영선 장관은 4월부터 8월까지 매달 한 번 가진화랑을 찾았다. 장관 외에 다른 공직자들도 자주 온다고 한다.

청와대 인사들도 자주 찾는 고객 중 하나다. 15년 전 가진화랑이 개업했을 때 위치가 청와대 바로 옆 궁정동이었다. 당시 청와대 인사들이 가진화랑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공직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가진화랑 주인은 “여기는 아는 사람들만 오는데, 장관과 청와대 사람들이 자주 온다”고 했다. 이어 “가게가 식당 같지 않아서 좋다고 하신다”며 “별실도 있고 여러 사람과 식사하기도 편한 게 인기 요인 같다”고 덧붙였다.

중식당 차이797은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중 가장 자주 등장한 식당이다. 이곳은 에너지종합기업 삼천리그룹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다. 전국에 30개 지점이 운영 중이다. 가격대는 1인당 3만~5만원 정도다. 장관급 인사 대다수가 이곳을 최소 한 번은 들렀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등 11개 중앙부처 장관과 은성수 금융위원장,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차이797에서 업무추진비를 썼다.

특히 차이797 지점 중 광화문점에서 결제 빈도가 높았다. 3~9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차이797에서 총 11차례 식사를 했는데, 이 중 3번이 광화문점이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도 같은 지점에서 세 차례 식사했다. 광화문점에서 업무추진비 사용이 많은 것을 두고 정부 관계자는 “정부서울청사와 가깝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건물 사이의 거리는 500m 미만이다. 또 광화문점에는 최대 66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룸도 있다. 룸은 코스요리를 주문하면 이용할 수 있다.

한편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단체 도시락을 주문한 빈도가 높아 이채로웠다. 반찬가게 ‘러블리마마’(10건), 수제도시락 전문점 ‘모심’(7회), 낙지전문점 ‘상상낙지’(7회), 한우전문점 ‘세종누가’(5회), 일식당 ‘이범석류 스시노미찌’(5회), 한식당 ‘진짜우리집식당’(8회) 등에서 도시락을 주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식당 모두 해수부가 있는 정부세종청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락 가격은 1인당 1만~3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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