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영 “무력감은 정치인의 태도 아냐…정말 힘 갖고 싶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2 14:00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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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타임지 NEXT 100인’ 선정된 장혜영 정의당 의원
“올해 최대 고민은 ‘공공성’, 누구든 어디서든 존엄하도록”

그는 끊임없이 물었다. 대상은 기성의 벽이었다. 1987년생으로서 1987년 민주화의 주역들에게 “그 뜨거운 심장이 모두 어째서 차갑게 식어버렸는지” 물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기성 의원들이 ‘내로남불’을 일삼고,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에 소극적임을 꼬집은 사자후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당시에는 조문을 거부하며 행동으로 질문했다. 피해자의 편에 서며 여성 인권과 2차 가해란 무엇인지 환기시켰다. 공수처법 개정안 표결을 하면서는 ‘찬성’ 당론을 따르지 않고 ‘기권’을 선택하며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차별금지법 발의로 지금 대한민국이 진정 2020년대에 있는지 물었다. 스스로 가장 평범한 정치인이라 소개하는 장 의원의 평범한 질문들은 지난 1년여간 적잖은 파장을 불러왔다.

그가 던지는 질문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장 의원은 “가장 취약한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정치를 하는 목표이자 계속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최근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떠오르는 인물 100인(TIME 100 Next 2021)’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으로선 유일하다. 장 의원은 “개인 장혜영이 아니라 지금껏 장혜영이 대변해 온 가치들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했다. 2월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 ‘다음(미래)’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장혜영의 미래, 정의당의 미래, 진보의 미래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의 고민을 막힘없이 풀어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이제 국회의원으로서 1년이 다가오는데, 경험해 본 정치는 어떤가.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직 1년이 안 됐나’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벌써 임기의 4분의 1이 다가오니 앞으로 더 밀도 있게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동안 정치는 엄청난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반대로 아쉬운 점도 있다. 최근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재산의 절반인 5조원을 기부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많은 분이 그 5조원을 어떻게 쓸지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우리 국가 예산은 558조원이다. 100배다. 그런데 누구도 국가 예산으로는 그런 상상력을 품지 않는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사실 인터뷰 요청은 지난 1월초에 했다. 유가족들의 단식 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는 됐지만, 기존 내용과 상당히 달라져 큰 반발과 논란이 있을 때였다. 당시 그는 SNS에 “우리가 시작했고 우리가 밀어올린 법에 피눈물을 머금고 찬성 아닌 기권을 눌렀다”고 밝혔다.

당시 무력감을 느꼈나.

“무력감은 적어도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정말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법사위에서 논의할 때 참관은 가능했지만 발언권은 없었다. 그래서 눈으로 모든 과정을 녹화했다. 이 감정을 잊지 않겠다고,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겠다고 되뇌었다.”

당 차원에선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

“1년 후에 법이 시행된다. 그나마도 50인 미만 사업장엔 3년간 유예 기간이 주어졌다. 매우 점진적인 도입이 예상된다. 일단 상반기에는 현장에서 법 시행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당 차원에서 구체적인 개정안을 준비하려 한다.”

‘불평등.’ 장 의원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단어다. 평소 염불처럼 반복하는 말이라고 했다. 불평등의 대안을 찾는 일이 진보가 가야 할 핵심 의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코로나19 팬데믹 1년간 국가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며 “정치는 단기주의에만 매몰돼 위기를 국민에게 전가하기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양극화와 불평등은 더 가속화됐다. 국회에서 본 지난 1년은 어땠나.

“지난 1년간 지난하게 ‘보편과 선별’을 두고 싸웠다. 과연 그것이 본질일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보편과 선별’이란 익숙한 논쟁에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 있는지 묻고 싶다. 어느 기준으로 봐도 우리는 적게 거둬 적게 베푸는 저부담 저복지의 나라다. 증세는커녕 국채 발행조차 안 된다고 하면 우린 결코 고복지 사회로 갈 수 없다. 기획재정부와 기재위조차 눈앞의 이슈에만 몰두한다. 단기적 재정에 함몰돼 미래를 기획하고 있지 않다.”

정의당의 대안은 무엇인가.

“민주당이 재원 마련 차원에서 제기한 안이 이낙연 대표의 ‘이익공유제’다. 기업의 선의에 기대겠다는 것이다. 정치는 민간의 선의에 잠시 기대는 게 아니다. 제도화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의당은 ‘특별재난연대세’를 주장한다.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한시적으로 먼저 거둬 더 힘든 사람들에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재난 상황에서 오히려 연대라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 경험이 쌓이면 위험이 언제 어디서 발생해도 연대의 힘이 작동할 것이란 믿음이 생길 것이다.”

 

“민주당, 파트너로서 실망스러워”

그는 정의당의 오늘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최근 진보 원로인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정의당의 전신)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쓴소리를 했다. 정의당이 민중과 멀어졌는데 무엇을 갖고 진보정당이라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다는 메시지였다. 또 진보정당의 근본은 ‘노동’임을 강조했다. 지난해 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장 의원은 이 질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입당했을 때부터 가장 취약한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그게 곧 정의당 정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권 전 대표님의 말씀 또한 이 점을 강조하시려는 맥락에서 이해했다. 기대가 있어야 실망도 있다.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채찍질해 주신 것 같다. 다만 ‘노동’이라는 가치는 굉장히 넓고 본질적인 것이라 그 안에 젠더 등 여러 가치가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선 최근 정의당이 ‘노동’이란 가치보다 ‘젠더’와 ‘기후’ 문제 등에 집중한다고 비판한다. 장 의원은 “노동과 젠더를 따로 떨어트려 보는 건 굉장히 무리한 도식화”라며 이런 주장을 단호히 부정했다. 장 의원이 다른 의원들에게 틈만 나면 추천하는 책이 《퀴어는 당신 곁에서 일하고 있다》다. 그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 성폭력을 경험한다. 이걸 여성 문제로 봐야 할까, 노동 문제로 봐야 할까. 당연히 둘 다에 해당한다. 삶에서 일은 떼려야 뗄 수 없으며, 노동 안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정체성은 함께 숨 쉰다. 분리해서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총 300석의 21대 국회에서 정의당 의석은 단 6석. 장 의원은 그 안에서 ‘여성’ ‘초선’ ‘비례대표’다. 당장 동료 의원 10명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한 법안 발의부터 쉽지 않다. 어느 범주에 포함되든 그는 국회에서 늘 ‘소수’다.

민주당과의 소통은 어떤가.

“민주당이 파트너로서 보여주는 모습은 사실 실망스럽다. 정부·여당으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많은 걸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용기를 내지 않고 있다. 물론 공감하고 지원해 주려는 여당 의원들도 계신다. 특별재난연대세도 기획재정위원장인 윤후덕 민주당 의원이 ‘이 좋은 법안을 그동안 왜 안 냈냐’며 도와주고 계신다. 다만 좀 더 구조적인 도움이 뒷받침되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한계를 느낄 때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나.

“망망대해에 섬 하나가 된 기분이 들 때도 많다. 그러나 여성·청년이기에 앞서 국회의원이다. 사각지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난 어머어마한 권력을 갖고 있다. 과거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아졌다. 주어진 능력을 활용할 창의력을 발휘하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기성 정치인들은 정치인 장혜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낯선 존재’라는 느낌을 많이 갖는 것 같다. 자리가 있을 때마다 ‘21대 국회에서 가장 평범한 정치인 장혜영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초선·청년이라는, 국회에선 드문 인구학적 특성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청년 대표, 여성 대표, 진보정당 대표로는 봐 주지만 보통의 인간 대표로는 안 봐 주시는 것 같다. 경직됨을 많이 느낀다. 소통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21대 국회가 마무리될 즈음엔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

“제가 하기 나름이겠다. 우리와 같은 존재가 국회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본다. 기재위만 해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제 존재가 분명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라떼’ 얘기를 좀 덜 하신다거나… 신경을 쓰신다.”

ⓒ시사저널 이종현
장 의원은 평소 취미로 기타를 연주한다. “언어의 감옥에 갇힌 상태로 살다 보니 때때로 멜로디를 통해 환기를 시키곤 한다.”ⓒ시사저널 이종현

타임지에서 ‘넥스트 100인’으로 꼽힌 장혜영의 2021년 어젠다는 무엇일까. 장 의원은 망설임 없이 ‘공공성’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추상적인 개념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불확실’하다는 건 말 그대로 내가 어떤 상황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주할지 몰라 불안하다는 걸 의미한다. 한 시민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우리 시스템이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 어떻게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다. 교육·경제·정치·의료 등에 있어 과연 현 상황이 그러한가를 두루 되짚어봐야 할 시기다.”

장 의원은 인터뷰 말미에 함께 사는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은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2018년 장 의원은 동생이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자립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을 만들었다. 그는 동생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영감이 되는 존재다. 존재 그 자체로 화두를 던지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데 동생이 그렇다. 동생은 제가 의원인 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오늘 커피를 사 오는지 안 사오는지, 양치질하라고 잔소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그러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국회에 있다 보면 마치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멋있는 옷 입고, 멋있는 말을 하고 있는 것도 결국 삶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점을 잊지 않게 해 주는 존재가 바로 동생이다. 제가 누군가를 지켜드린다는 것은 주제 넘은 말이다. 다만 낮은 곳에 제 손길이 너무 늦지 않게, 국회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없게 하겠다.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겠다고 동생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장 의원은 매일 스스로에게도 매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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