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에 김태년‧이낙연까지…文대통령 ‘레임덕설’ 쏘아올린 장면 셋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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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시즌2에 당정청 불협화음 지속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우려하는 시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 파동으로 정치권이 들썩인 데 이어, 이번엔 검찰개혁 시즌2로 불리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방안을 두고 당정청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문 대통령이 당부했다는 ‘속도조절론’과 관련해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입장이 엇갈리면서다. 

문 대통령 임기 마지막 1년을 남겨 놓은 시점에 당정청의 불협화음은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레임덕을 촉발할 수 있는 청와대와 민주당 사이 권력다툼이 이미 시작됐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4월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이 주도권을 틀어쥐려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의 레임덕의 징조로 해석됐던 장면 세 가지를 되짚어봤다. 

문재인 대통령 옆 모습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옆 모습 ⓒ 연합뉴스

#1 ‘속도조절’ 맞다는 靑유영민, 언제 그랬냐는 與김태년

당정청 간 엇박자는 지난 24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언급을 사실상 시인하면서다. 그동안 속도조절론을 적극 부인하던 여당과 정반대의 기조를 보인 터라, 민주당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유 실장은 이날 “박 장관이 임명장을 받으러 온 날, 문 대통령이 속도조절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에 국회 운영위원장인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문 대통령이 ‘속도 조절 하라’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하자 유 실장은 “정확한 워딩은 기억 못 하지만 그런 뜻이었다”고 말했다. 재차 김 위원장이 “그렇게 답변하면 문 대통령이 ‘속도 조절’ 워딩을 쓰신 게 된다”고 지적하자, 유 실장은 “정확한 워딩은 그게 아니었지만 그런 의미의 표현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후 유 실장이 회의 막바지에 발언 기회를 얻어 “(문 대통령이) 속도 조절이라는 표현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화상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화상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속도조절론이 촉발된 계기는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나온 박범계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당시 박 장관은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에 대해 “대통령께서 제게 주신 말씀은 크게 두 가지”라며 “올해부터 시행된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는 차원의 말씀”이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박 장관의 말은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의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속도조절론’을 내세운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일부 여권 인사들이 속도조절론을 반박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의 법안을 대표 발의할 것으로 알려진 박주민 의원은 “(속도조절론을) 공식, 비공식으로 들은 적이 없다” “박 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들었다는 ‘제도의 안착’이 검찰개혁 시즌2의 속도 조절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일부 강경파 인사들은 수사‧기소권 분리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제 와서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면 (형사소송법 제정 뒤) 67년의 허송세월이 부족하다는 것이 돼 버린다”며 논란에 가세했다.

이는 곧 여권이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주문을 무시하고 검찰개혁 시즌2를 밀어붙이는 모습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은 중수청 설치법안을 예정대로 올해 상반기 내에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월말이나 3월초에 검찰개혁 특위 차원에서 법안 발의가 예정돼 있고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반기 중 국회에서의 법통과 처리를 함께 고민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야당은 이 같은 여당의 반응을 레임덕 징조의 하나로 해석하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은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는데 불명예 퇴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67년 허송세월이 부족하다는 것이 돼 버린다’며 신속한 추진을 강조했다”면서 “이 정부의 특기인 쇼인지, 아니면 진정한 임기 말 레임덕의 방증인지 모를 일”이라고 꼬집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2 文대통령 ‘패싱’ 의혹 촉발한 박범계 ‘사후재가’ 논란 

이보다 앞서 문 대통령의 ‘레임덕설’을 쏘아올린 것은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 파동이었다. 신 수석은 지난 2월7일 이뤄진 검찰 고위급 인사 과정을 두고 박범계 장관과 마찰을 빚어 사의를 표명했다가 지난 22일 청와대에 복귀했다. 문 대통령이 사의를 만류했는데도 아랑곳 않고 휴가를 떠났던 탓에, 신 수석이 문 대통령에 ‘항명’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민정수석에 임명된 지 두 달도 안 돼 벌어진 일이라 문 대통령으로서는 체면을 구긴 일이 됐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박 장관이 문 대통령의 사전 재가도 없이 검찰 인사를 발표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법무부가 검찰 인사를 먼저 발표하고 문 대통령에게는 사후 결재를 받았다는 것이다.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 야권에선 곧바로 “박범계의 국정농단”이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청와대는 7일 검찰 인사 발표 이후 8일에 전자결재가 이뤄졌고 9일 정부 인사발령이 됐기 때문에 절차대로 진행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사후 결재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입장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헌법에도 대통령의 행위는 문서로 해야 한다고 돼 있다”며 “전자결재든 뭐든 결재하는 순간이 대통령의 (승인) 결정인데, 그 전에 발표하니까 패싱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운데)와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9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운데)와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9월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3 “당신들 참 나쁜 사람”…홍남기 질타한 이낙연

여당은 검찰 개혁 작업뿐만 아니라 4차 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쥐려는 모습을 연출했다.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 문제를 들어 민주당의 ‘보편지급’ 추진에 반대해왔으나,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의지를 관철시켰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비공개로 열린 고위당정청회의에서 당의 보편지원 방침에 반대한 홍남기 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향해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 주도의 국정 운영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특히 대선주자들의 몸풀기가 본격화하면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당정청 간 주도권 다툼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복심이자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경수 경남지사는 “대통령이 한 말씀 하면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다 정리되는 건 과거 권위적인 정치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라며 “지금 민주당이 훨씬 민주적이고, 민주적인 논의와 토의 과정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방지할 수 있는 계제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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