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어 교수 논문 파장 애써 외면하는 일본 방송
  • 김재훈 일본 ‘라미TV’ 운영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7 10:00
  • 호수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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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와 인터넷 언론에서는 연일 “한국이 램지어 교수를 부당하게 비난한다” 보도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고 주장한 논문이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평소 혐한(嫌韓) 보도에 힘을 쏟고 있는 유력 주간지와 인터넷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위안부는 허구라는 식의 주장을 펼치거나, 한국이 램지어 교수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는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평소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옹호해 온 일부 한국인이 기고한 기사가 많았다.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한국이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일본 방송사는 아직 램지어 교수의 논문 사태에 관해 다루지 않고 있다.

지난 1월28일 산케이신문은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는 공인된 매춘부이며 일본에 의해 납치돼 매춘을 강요받은 ‘성노예’는 아니다”고 주장한 논문이 3월 한 국제학술지에 게재된다는 보도를 했다. 이에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램지어 교수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다가 학계에서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증거가 없고 결론 도출 과정에서 기초적 오류가 있다는 반론마저 쏟아졌다. 결국 논문 게재를 예고한 국제학술지가 3월호를 이번 달에는 출간하지 않기로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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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매춘부로 규정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유튜브 캡쳐

“지일파 논문에 한국이 달려들어 물어뜯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국제사회가 분노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일본 방송에서는 이 내용을 아예 외면하며 보도하지 않고 있다. 반면 일본의 최대 포털인 ‘야후재팬’에서는 평소 혐한 보도를 주로 해 온 유력 주간지나 인터넷 언론을 중심으로 기사가 나오고 있다. 그 내용도 램지어 교수를 옹호하거나 논문 내용을 인용해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야후재팬’에 게재된 일본 언론의 램지어 교수 논문 관련 보도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지난 2월14일과 18일, 인터넷 언론매체인 ‘JBpress’는 한국에서 《반일종족주의》의 공동 저자로도 유명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기고한 ‘성노예 설을 부정한 미국 논문에 꼼짝도 못 하는 한국’과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미국 논문의 내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잇달아 게재했다.

이들 기사에서 이씨는 “한국의 한 지상파 방송에서는 램지어 교수가 ‘친일파’이며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로부터 돈을 받고 있다’는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에 딱 걸맞은 보도였다. 이것은 한국의 정치적 전술 중 하나다. 발화자의 전문성에 의문을 품게 해서 공정성이나 편향성 문제로까지 발전시킨다. 어느 사회에서나 매춘부의 성 노동은 매우 힘들며, 자신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높은 수입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유곽이나 위안소 업체와 맺은 계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보면 일목요연하다. 사업주와 매춘부, 또는 위안부의 계약을 ‘기간제 고용’으로 파악해 그 계약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로 ‘JBpress’는 평소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옹호하는 한국인 및 재일 한국인들이 기고한 기사를 집중적으로 게재해 램지어 교수를 옹호하기 위한 정당성을 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월18일에는 일본 유력 주간지인 ‘슈칸신초’가 운영하는 ‘데일리신초’에서 ‘종군위안부는 매춘부인가 성노예인가, 하버드대 지일파(知日派)의 논문에 한국 관련 조직이 달려들어 물어뜯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인터넷 매체인 ‘유칸후지’의 경우 2월19일 보도에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 내용이 진실인 양 인용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위안부 배상 판결 내용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지 주장했다. 그리고 2월26일에는 ‘한국 반(半)광란 상태! ‘위안부=성노예’를 완전히 부정하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에 “돈으로 논문을 썼다”라고 망언, 게재 예정인 출판사에 압력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듯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 내용을 옹호하며 한국에 의해 부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는 논조로 보도했다. 반면 램지어 교수 논문의 문제점과 해외에서의 비판을 다룬 기사는 한국 언론의 일본어 기사와 일본인이 개인 명의로 야후재팬에 기고한 극소수의 기사 및 글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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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1일 일본의 극우 논객인 다케다 쓰네야스가 요미우리TV ‘거기까지 말해 위원회’에 출연해 “일본 정부에 의한 위안부 강제 동원은 없었다”고 발언하는 모습ⓒ요미우리TV 캡쳐

일본 네티즌들도 우경화 논조에 찬동

일본 언론 보도를 통해 램지어 교수는 일본의 우경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깃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재집권한 이후 강력히 추진해 온 ‘역사 수정주의’를 기반으로 급속히 우경화되고 있다. 특히 일본 지상파 방송에서마저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고 위안부는 날조된 것이라고 발언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과 약 2주 전인 2월21일, 요미우리TV에서 방송한 ‘거기까지 말해 위원회’에는 일본의 유명한 극우 인사인 다케다 쓰네야스가 출연했다. 그는 한국인은 일본 맥주를 못 마시면 견디지 못한다고 말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날 방송에서 다케다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조선의 여성을 강제 연행했다든지 강제 노동시켰다는 사실은 없다”는 망언을 했다. 또한 2017년 5월14일에도 같은 방송에서 그는 “강제적으로 20만 명의 여성이 연행됐다는 것은 픽션이라는 것을 이제 알지 않냐? 그러면 그동안 한국의 남자 녀석들은 뭐 하고 있었나? 손만 빨고 있었냐?”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10월13일 후지TV의 ‘Mr.선데이’에서는 출연자들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부당한 점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일본이 한국을 위해 인프라 정비 등 여러 가지를 해 줬는데 한국은 왜 그런 식으로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많은 일본 네티즌도 이런 일본 방송과 언론의 논조에 찬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우경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일본의 상황을 보면서, 제2의 램지어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램지어의 잘못된 논문을 바로잡는 것에만 그쳐선 안 된다는 지적이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 사회에서 당연한 듯이 이뤄지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미화와 역사 왜곡 시도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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