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홍콩 장악 프로젝트…이젠 언론이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09 07:30
  • 호수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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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중’ 성향 홍콩 언론 장악에 나선 중국
“홍콩 언론도 中 정부 선전장 될 것” 우려

5월17일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거리를 오가던 몇몇 시민은 신문 가판대를 일부러 찾았다. 대만 ‘빈과일보’에서 발행한 마지막 종이신문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대만 빈과일보는 이날 1면 지면을 통해 “운영상 적자가 계속되고 있어 (모기업인) 넥스트디지털이 종이신문의 발행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현재 대만 빈과일보는 온라인에서 뉴스 서비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새로 등록되는 뉴스의 양은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종이신문 발행이 중단되면서 대만 빈과일보 직원 중 절반 이상이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대만 빈과일보는 홍콩 미디어그룹인 넥스트디지털이 2003년 창간했다. 넥스트디지털은 2001년 대만에 진출해 먼저 시사주간지를 창간한 바 있다. 대만 빈과일보는 중국의 어두운 실상을 폭로하는 특종을 자주 터뜨리면서 독자들을 끌어모았다. 단시일 내에 대만에서 ‘연합보’ ‘중국시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대 주류 신문으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하루 신문 발행량이 52만 부에 달했다. 또한 2010년 케이블 뉴스방송인 넥스트TV까지 개국했다. 하지만 급속한 성장은 대만 미디어 업계의 반감을 샀다. 따라서 2012년 반(反)넥스트디지털 운동이 일어났다.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가운데)가 2020년 8월10일 홍콩 자택에서 체포된 후 경찰의 호위를 받고 있다.ⓒEPA 연합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가운데)가 2020년 8월10일 홍콩 자택에서 체포된 후 경찰의 호위를 받고 있다.ⓒEPA 연합

창간 18년 만에 발행 중단한 대만 ‘빈과일보’

결정적으로 대만 빈과일보의 위기를 불러일으킨 이는 모기업의 사주 지미 라이였다. 라이는 2014년 홍콩에서 일어났던 우산혁명에서 시민단체 간부로 적극 참여했다. 그래서 홍콩 경찰은 공공질서를 혼란시킨 혐의로 라이를 기소했다. 그로 인해 같은 해 12월 라이는 홍콩 빈과일보 사장과 넥스트디지털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모기업 사주의 행동은 한때 대만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은 넥스트디지털 산하 언론매체를 은밀히 공격했다. 중국에 사업장을 둔 대만 기업들을 압박해 대만 빈과일보에 광고를 주지 않게 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세계의 언론 환경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미디어의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해 버린 것이다. 따라서 대만 빈과일보의 신문 발행량은 갈수록 줄어들어 2020년에는 9만6000여 부로 감소했다. 여기에다 반중(反中) 기사 외에 사회·연예·스포츠 등 가십성 보도에 치중했던 대만 빈과일보의 경영 방식이 화를 키웠다. 대만 빈과일보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넥스트TV는 2013년 경영권이 다른 기업에 팔렸고, 시사주간지는 지난해 2월 폐간됐다. 넥스트디지털로부터 지원이 없을 경우, 앞으로 9~10개월 정도 버틸 수 있는 운영자금밖에 없다.

그러나 넥스트디지털은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다. 지분의 71.2%를 소유한 사주 지미 라이가 4월과 5월에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라이를 옭아맨 것은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홍콩국가보안법이다. 라이는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기간 불법집회를 조직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 판결 이후 홍콩 정부는 5월14일 국가안보를 해치는 범죄행위와 관련 있는 사람의 재산 처분을 막을 수 있는 홍콩보안법 조항을 인용해 라이의 자산을 동결했다. 동결 자산은 넥스트디지털 지분과 다른 경영업체 3개 지분 전부로, 5억 홍콩달러(약 717억8500만원)가 넘는다.

지난해 라이는 넥스트디지털에 5억 홍콩달러를 대출해 줬다. 하지만 라이의 자산이 동결되면서 넥스트디지털은 추가로 대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대만 빈과일보에도 자금을 지원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홍콩 빈과일보의 경영 상황도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산혁명 이후 중국이 홍콩 빈과일보를 계속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홍콩 빈과일보는 홍콩 대기업과 중국계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못 받고 있다. 1995년 창간 이후 한때 53만 부에 달했던 하루 신문 발행량도 9만1000여 부로 감소했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최근 홍콩 언론계에서는 “중국이 홍콩 반환일인 7월1일 이전에 빈과일보의 신문 발행을 어떻든 중단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5월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그 배경으로 홍콩의 경찰 총수인 크리스 탕 경무처장의 발언을 꼽고 있다. 탕 처장은 4월부터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5월11일 완차이구 의회 회의에서는 “증오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가짜뉴스는 홍콩보안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SCMP는 이를 “빈과일보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탕 처장은 “특정 언론을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며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걱정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콩 언론계에서는 반중 언론에 대한 홍콩 정부의 공격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탕 처장의 발언 외에도 시그널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왔다. 5월15일 렁춘잉 전 홍콩 행정장관은 SNS에 “빈과일보는 체제 전복적인 정치조직”이라며 “정말 언론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행정장관은 홍콩 정부의 수반이다. 렁 전 장관은 어느 누구보다 친중 성향이 강하다. 홍콩에서는 그의 발언이 중국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본다.

홍콩 정부는 먼저 공영방송 장악에 나섰다. 지난 2월 전임 렁카윙 방송국장을 반년 앞당겨 사임시켰다. 그런 뒤 정부 관료인 리팩천을 임명했다. 과거 방송국장은 주로 민간 전문가가 역임했다. 리 처장은 3월 부임 이후 공영방송인 ‘RTHK’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6명의 선임 간부를 사직시켰고 보도에 대한 게이트 키핑을 강화했다. 이렇게 공영방송을 장악한 이유는 RTHK가 2019년 민주화 시위를 앞장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홍콩 경찰은 지난해 11월 민주화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백색테러’ 다큐를 제작한 RTHK 기자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바 있다.

 

중국 기업, 홍콩 언론사 인수에 나서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이 홍콩 언론에 대해 직접 통제에 나서는 현실이다. 4월 홍콩 쯔징문화그룹은 홍콩 최대 위성방송인 ‘피닉스TV’를 인수했다. 피닉스TV는 중국에서도 수신되어 중화권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쯔징문화가 새로 선임한 이사 3명이 모두 베이징 출신이었고, 그중 한 명은 중국 재정부 국장인 쑨광치였다. 5월10일 홍콩 매체 ‘명보(明報)’는 이런 사실을 폭로하며 “쯔징문화가 중국 정부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 관료를 언론사 간부로 파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홍콩 기업을 앞세워 피닉스TV를 장악한 셈이다.

지난 1월에는 홍콩과 맞닿은 선전(深)의 부동산업체 카이사가 성도그룹의 최대 주주가 됐다. 성도그룹은 홍콩 4대 일간지이자 중도 성향인 ‘성도일보’와 영자 경제지 ‘스탠더드’를 소유한 미디어 업체다. SCMP는 “성도일보를 통해 중국은 홍콩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5월3일 홍콩기자협회는 기자회견에서 “언론의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고 침해하기 위한 정부의 고삐 죄기가 겨우 시작됐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 언론은 정부의 선전 역할을 하는데 홍콩 매체도 그런 방향으로 몰고 가려고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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