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으로 체면 구긴 바이든, ‘대만’ 향한 선택은?
  • 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04 07:30
  • 호수 1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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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만 침공 때 방어할 의무 있다”
‘전략적 모호성’에 변화의 기류 감지돼

전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한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의 중심 무대가 ‘대만’으로 옮겨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대만 전략에 최근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고 있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 변화가 점쳐지고 있어서다. 워싱턴 조야에서도 미 행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탈피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앞으로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대만 통일을 역사적 과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내년 10월말쯤으로 예상되는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3연임을 노리고 있는 시 주석은 대만의 독립 움직임을 용납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상 대만의 독립 선언은 중국의 ‘레드라인’인 셈이다.

ⓒXINHUA·EPA·AP연합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차이잉원 대만 총통, 바이든 미국 대통령 ⓒXINHUA·EPA·AP연합

미군, 대만 워게임에서 연이어 중국군에 패해

시 주석의 이 같은 정치적 상황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 강도를 높이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대규모 대만해협 봉쇄 훈련을 벌였고,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혼란스러운 철군으로 인해 발목이 묶여 있던 지난 8월엔 중국 군함이 대만 남쪽 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수륙양용 상륙차량들이 중국의 해변을 휩쓰는 등 대만해협을 건너는 모의훈련을 진행했다. 10월초엔 150대가량의 전투기와 폭격기 등이 대만을 위협했다.

중국의 군사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진 상태다. 1996년 중국이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행동을 감행하자, 미국은 항공모함 2척을 대만 인근에 급파하면서 강경하게 대응했다. 중국은 미국의 무력시위를 보면서 자신들의 군대가 얼마나 뒤떨어졌는지 이해했고, 곧바로 물러섰다. 이후 중국은 군 현대화 등 군사력 강화에 매진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의 군비 지출은 76% 증가했다. 중국은 부인하고 있지만 지난 8월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또한 미군이 2018년 이후 대만에서 실시한 ‘워게임’에선 신형 첨단 전투기 등을 동원했음에도 미군이 중국군에 반복적으로 패하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요인으로 인해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미국 내에서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공군이 대규모로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한 것을 거론하며,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직후를 가장 위험한 시기로 지목했다. 러시아가 2014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장악했듯 중국도 대만을 향해 무력행사를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미 스탠퍼드대 프리먼스포글리 국제학연구소의 오리아나 마스트로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온건파들조차 평화 통일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제 군사적 옵션이 지금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도 “2022년 시작되는 3선 연임의 계기를 마련한 시 주석이 자신의 집권기에 왕위에 앉기 위해 대만 정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필립 데이비슨 전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지난 3월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오는 2027년 이전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2027년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창설 100주년을 맞는 해인 데다 시 주석이 내년 당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하면 4연임을 달성해야 하는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시기라는 점에서다.

다만, 중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게 보고 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 6월 중국이 당장 대만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은 10월18일 게재한 글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대만을 원하는 만큼 (중국에서) 권력과 공산당의 정치적 독점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대만을 정복하기 위한 값비싼 전쟁은 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 ‘군사개입’ 여론에서도 찬반 팽팽

이로 인해 그간 대만에 대한 군사개입과 관련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오던 미국 정부의 태도에도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 간 회동 뒤 1979년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하에 대만과 단교했고, 대만과의 상호방위조약도 폐기했다. 이후 미국은 1979년 국내법으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에 자기 방어 수단을 제공하고 유사시 대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근거를 두고 있지만, 구체적인 군사개입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군사개입을 실행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월21일(현지시간) 볼티모어에서 열린 CNN 타운홀 미팅 행사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때 미국이 방어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예스”라면서 “우리는 그렇게 할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바이든은 지난 8월에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무력 침략 시 대만에 군사개입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전략적 모호성 폐기’로 해석되자, 미 백악관은 곧바로 대만 방위는 대만관계법에 따르는 미국의 정책엔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탈피 행보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만이 아니다. 미국 군함은 올해 첫 8개월 동안 대만해협을 8차례 통과했고, 미 행정부는 지난 8월 대만에 7억5000만 달러 상당의 새로운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최소한 1년 전부터 해병대와 육군 특수부대 등 소규모 미군이 대만군과 함께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만의 유엔 가입 문제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고 있다.

다만, 전략적 모호성 폐기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조지프 보스코 전 미 국방부 중국 담당 국장은 최근 정치 전문매체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혼란을 끝내고 미국이 대만을 지킬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스 회장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오랜 ‘하나의 중국’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CGA)가 한국국제교류재단(KF) 등의 후원을 받아 지난 7월7~26일 미국 성인 20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침공을 받았을 때 미군이 지원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조사(41%)에 비해 11%포인트나 올라간 것이지만, 여전히 여론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진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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