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떠나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3.17 10:00
  • 호수 1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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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공장에서 사흘간 사망 사고 두 건…잇따른 CEO 입건에도 산재 사고 끊이지 않는 이유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한 달하고 보름 정도 흘렀다.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영자까지도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 이 법의 골자다. 재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1호’ 처벌기업이 되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했다. 산재 사고가 많은 제조업체나 건설업체의 경우 1월27일 법시행을 앞두고 조업이나 공사를 일시적으로 중단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건설이나 산업현장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있다. 3명의 사망자를 낸 경기도 양주의 삼표 채석장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 사고는 중대재해법 시행 불과 이틀 뒤인 1월29일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사고가 발생한 양주 현장사무소는 물론이고, 삼표산업 서울 본사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였다. 결국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관련 법 시행 후 최고경영자CEO)가 입건된 첫 사례였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3월3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경총회관 앞에서 여천NCC 폭발 사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중대재해 대책 수립을 촉구하며 여의도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연합뉴스

중대재해법 1호 처벌기업은 삼표산업

이 일이 있고 일주일이 흘렀다. 이번에는 경북 포항에 위치한 포스텍 캠퍼스 공사장에서 협력업체 직원이 철골구조물(금형)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월11일에는 여천NCC 폭발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4명이 숨졌고, 21일에는 쌍용씨앤이 동해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추락해 숨졌다. 2월말에는 경남 김해의 에어컨 자재 제조업체에서 근로자 16명이 연쇄적으로 독성물질에 중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을 대거 보내 조사를 벌였고, 이들 기업의 대표들 역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거나 입건을 저울질 중이다. 특히 쌍용씨앤이의 경우 원청업체뿐 아니라 하청업체 대표도 입건됐다. 역시 첫 사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후 한 달간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는 39건, 사망자 수는 42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52건 52명)과 비교했을 때 사고 건수는 32.7%, 사망자는 19.2% 감소했다”고 고용노동부 측은 설명한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도 최근 고용노동부 주요 기관장 회의에서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있으면 사망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 수치로만 중대재해법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다. ‘경영자까지 처벌’이라는 조항을 포함했음에도 2월 한 달간 산재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전인 1월까지 포함할 경우 사망자 수는 100명에 육박한다. 3월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3월3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 사업장에서 LS전선 근로자 4명이 감전 사고를 당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월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4대 안전관리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최고안전환경책임자(SCEO)라는 새로운 직책까지 만들어 대응했음에도 유사한 사고가 재발했다는 점에서 비난 여론이 일었다.

현대제철의 경우 사흘 만에 두 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3월2일 당진공장에 근무하던 근로자 A씨가 대형 용기(도금 포트)에 빠져 숨졌다. 당시 포트의 내부 온도는 섭씨 460도에 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현대제철을 상대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후 당진공장 고로사업본부 안전보건 총괄책임자와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역시 사고가 난 사업장의 본부장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다.

문제는 현대제철 예산공장에서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당진제철소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 현대제철 측은 “안타깝게도 현대제철의 위탁생산 전문사인 심원개발의 하청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위탁사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고용노동부와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요컨대 예산공장 부지와 메인 설비는 현대제철 소유지만, 자동차 부품 생산과 공장 운영 일체는 심원개발에 위탁한 상태다. 심원개발은 다시 MST라는 업체에 하청을 줬는데, 이 회사 근로자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안팎에는 다른 시각도 있다. 불과 사흘 만에 두 건의 사망 사고가 한 회사에서 발생한 것은 관리 시스템에 중대한 구멍이 뚫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현대제철 중대재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현대제철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모두 19건이다. 이로 인해 숨진 원·하청 노동자는 22명에 달한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회사 측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유사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재발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연합뉴스

현대제철 “예산공장 위탁사로서 책임 통감”

금속노조도 최근 충남노동인권센터 새움터 등과 함께 사고 조사를 벌였다. 사고 현장 조사와 조합원 인터뷰, 고용노동부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한 사고조사보고서에는 문제점이 상세하게 언급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사업주의 안전조치(추락방지조치) 위반이다. 보고서는 “사고 현장에는 추락 방지를 위한 방호 조치들이 전혀 이뤄져있지 않았다”면서 “난간이 있기는 하지만 높이는 고작 15cm 정도로 산안법상 안전난간 기준인 90cm 이상에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선 2인 1조 방식이 지켜지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숨진 노동자가 속한 현장은 가동률이 30% 수준이었다. 인원 투입비용 대비 수익이 낮기 때문에 단독작업 방식을 유지했다. ‘위험의 외주화’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현대제철은 해당 공정의 노동자들을 별정직으로 고용했다. 그 결과 위험이 관리되지 않은 채 남게 됐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유사 사고들이 이전에도 있었고, 근로감독에서도 작업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등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수익성만을 고려하면서 모든 기회를 걷어찼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기업의 CEO가 잇달아 입건되고 있음에도 현장에서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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