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르포] 더 이상 코로나에 관심 두지 않는 영국 시민들
  • 사혜원 영국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3.28 11:00
  • 호수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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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위드 코로나’ 선언한 영국의 일상
3월21일 ‘최다 확진 신기록’ 보도에도 마스크 거의 사라져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전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것은 바로 영국의 행보다. 영국은 확진자와 사망자 폭증도 가장 먼저 겪었고, 이후 집중적인 백신 접종과 함께 ‘위드 코로나’ 선언도 가장 먼저 실시했다. 다른 나라들이 영국과 같은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지금의 영국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자국의 내일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시사저널이 런던 르포를 통해 2022년 3월말 현재 영국의 상황을 정확히 들여다보고자 한 것도 이 때문이다.

3월13일 영국 런던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열린 세인트패트릭스데이 퍼레이드 축제를 즐기고 있다.ⓒEPA 연합

정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갈 방법 보여줘”

결론적으로 가장 먼저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던 영국은 한때 감소세를 나타냈으나, 현재 다시 감염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1월4일 21만8000여 명의 신규 확진자로 정점을 찍은 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고, 이로부터 3주가 지난 25일에는 사망자 수가 440명으로 역시 정점을 찍었다. 이틀 뒤 영국 정부는 모든 방역규제를 철폐하는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다.

이후 2월 하루 확진자 수가 3만 명대로 떨어졌다가 최근 들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8만 명대로 늘어났다. 3월21일(현지시간) 기준 22만6524명의 신규 확진자로 신기록을 세웠다. ‘스텔스 오미크론(BA.2)’이라는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다. 하지만 사망자 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으면서 영국은 더 이상 거리 두기 등 방역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3월초 영국 인구의 거의 5%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음에도 사지드 자비드 보건장관은 최근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는 데 대해 “특별한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자비드 장관은 “영국은 백신을 통해 ‘방어벽’을 구축했고, 확진자 수 증가는 위드 코로나 정책, BA.2 변이 바이러스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모두 예상 범위 안이다. 상황은 아직 안정적이다”고 시민들을 안심시켰다. BBC 라디오4의 투데이(Today) 인터뷰에서 자비드 장관은 “영국의 병원에 있는 1만1500명이 현재 코로나19 확진자지만, 이 중 60%는 코로나와 무관한 이유로 치료를 받고 있다”며 “특별히 우려할 이유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자신감 있는 자비드 장관의 반응과 달리 의학계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그의 발언 중에서 ‘대다수 확진자가 코로나와 무관한 증상으로 입원해 있다’고 한 점이 문제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확진받은 환자들이 무증상이나 경미한 증상만 겪는다고 해도, 같은 병동에 입원한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다른 환자들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손을 놓은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자비드 장관은 “전혀 아니다”며 “우리는 어떻게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국가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계획은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우리가 계속 집중할 한 가지는 백신 접종 프로그램”이라고 대답했다. 이를 증명하듯, 영국은 3월21일부터 75세 이상 고령자, 요양원 거주자, 면역 저하자 등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500만 명을 대상으로 ‘2차 부스터샷’(4차 접종)을 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영국이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세계에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자신감 있게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확진자 수와 입원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발표를 섣불리 인정하거나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런던 위생의학학교의 리암 스미스 교수는 “영국의 위드 코로나 방침 이후 영국 시민들의 행동 변화와 모임 증가 등을 감안하면, 이러한 확진자 수 증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면역학자 뮈게 세빅 교수도 “이제 감염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자명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감염으로 인한 심각한 결과를 막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좀 더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트앵글리아대학의 전염병 전문가인 폴 헌터 교수는 “부스터샷 접종 이후 시간 경과로 인한 면역 저하가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주요 원인은 BA.2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든버러대학의 역학자인 마크 울하우스 교수도 “최근 영국에서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BA.2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원래 있던 BA.1 오미크론 감염 사례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위드 코로나 시행으로 인한 시민들 일상 행동의 변화가 확진자 수 증가의 주요 원인은 아닐 것이라고 진단하며 “기존 백신이 BA.2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는 데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코로나19는 여전히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의료계 “감염 후유증 방지에 더 집중해야”

백신에 대해 스미스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은 ‘생명의 은인’이지만 완전히 전염을 막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며 4차 접종을 권고했다. 이처럼 백신이 스텔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반면 시민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무덤덤하다. 영국 언론은 스텔스 오미크론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훨씬 더 집중된 보도를 하고 있다. 역대 최다 신규 확진자 수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나와도 별로 놀라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나도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일주일 정도 아팠다. 66세인 나에게는 그냥 심한 감기 정도였다”라거나 “확진 판정을 받아도 자가격리를 할 필요가 없으니, 내 주변에는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도 그냥 평소처럼 출근하는 사람도 많다. 별문제 없다”는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코로나, 이제 지겹다’는 반응조차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 아예 코로나19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듯하다.

실제 런던 시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확진 판정을 받아도 자가격리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은 더욱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면 마스크를 착용한 승객이 15명 중 한 명 보일까 말까 한 정도이고, 회사에서도 공용 공간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회사에 아예 들고 가지 않는 사람도 많다.

4월1일부터는 신속항원검사 및 자가진단키트가 더 이상 무료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이 지금 테스트를 몰아서 받는 것이고, 4월부터 사람들이 유료 테스트를 받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확진자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얘기들도 나온다. 4월부터 영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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