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앞두고 ‘싱크탱크’에 힘 싣는 재벌기업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4.12 07:30
  • 호수 1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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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두산, 조직 재정비하며 내부 컨설팅 기능 강화
현대차·SK·롯데 연구조직도 오너의 관심과 지지 한몸에

문재인 대통령은 유력 대권주자 시절이던 2016년 10월1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삼성경제연구소장, SK경영경제연구소장, LG경제연구원장, 현대경제연구원장 등 대기업 싱크탱크 수장 4명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그는 국민과 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성장론’을 강조하고 국내 기업과 산업이 처한 어려움, 미래 산업의 변화 예측,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미래 먹거리 등을 논의했다. 재계와 중도층을 겨냥한 행보였다. 

이후 6년여가 지난 지금 문 대통령은 국민성장론·소득주도성장론 등 경제 성장 플랜을 현실화하지 못했고, 결국 중도층을 아우르는 데 실패하며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와 5년 내내 엇박자를 내던 재계는 재계대로 각자도생에 들어갔다. 그 방법의 일환이 자체 싱크탱크 강화다. 불안한 국내 정치·정책 환경,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사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격변기를 맞아 저마다 싱크탱크에 힘을 싣고 내부 컨설팅 역할을 확대하는 중이다. 특히 최근 치러진 20대 대선을 전후해선 조직 명칭을 바꾸거나 외부 인재를 영입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는 싱크탱크가 속속 등장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전경ⓒ시사저널 임준선

싱크탱크에 ‘생존 전략’ 일임한 삼성·LG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말 각각 삼성글로벌리서치와 LG경영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 내부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다. 경제·산업 연구 등 대외 기능을 줄이는 대신 계열사 경영진단과 사업 포트폴리오 컨설팅 역할을 강화했다. 삼성글로벌리서치는 30년 만, LG경영연구원은 26년 만의 사명 변경이다. 

삼성글로벌리서치 측은 사명 변경 후 “국내외 경영환경 분석, 계열사 산업·경영 연구를 선제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삼성그룹의 글로벌 초일류화에 기여하는 싱크탱크가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LG경영연구원 측도 “경제 분석, 산업 연구에 더해 계열사들의 변화와 혁신·미래 준비를 지원하는 LG그룹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면서 2021년 하반기부터 사명 변경을 추진했다”면서 “내부적으로 조직의 역할과 정체성을 더 명확히 하고, 외부적으론 우수 인재들에게 연구원의 역할을 더욱 명확히 전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양사는 경제·경영·산업·정책 분야 전반에 관해 연구하는 종합연구소 성격을 띠었다. 특히 삼성글로벌리서치는 국내 최고의 민간 경제연구소로 꼽혔다. 1987년 삼성생명 부설 연구기관으로 탄생한 삼성글로벌리서치는 1991년 주식회사 삼성경제연구소로 전환됐다. 삼성글로벌리서치가 2013년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각종 연구보고서는 세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국가 정책 어젠다를 설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LG경영연구원은 1986년 그룹 내 증권사 부설 럭키경제연구소로 출범했다. 1988년 럭키금성경제연구소로 바뀌었다가 1995년 그룹명 변경과 함께 LG경제연구소가 됐다. 연구보고서 발간에 더해 4대 그룹 싱크탱크 중 유일하게 외부로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1년 12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21년 10월21일 서울 강서구 마곡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청년희망ON’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5)과 구광모 LG그룹 회장(45) 등 젊은 총수들은 최근 글로벌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조직 쇄신에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은 글로벌 투자 행보와 파격 인사로 ‘뉴 삼성’ 의지를, 구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연일 강조하는 중이다. 삼성글로벌리서치와 LG경영연구원 등 싱크탱크들에 총수 리더십을 뒷받침해야 할 미션이 주어진 셈이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재계의 리딩 기업인 삼성과 LG가 싱크탱크 강화에 나서니 다른 그룹들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며 “이미 리스크 테이킹과 신성장동력 발굴이 절실한 오너들이 싱크탱크에 큰 관심을 두고 지원도 아끼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재계 20위권 대기업 중에선 삼성과 LG 외에 현대자동차그룹(HMG경영연구원), SK그룹(SK경영경제연구소), 롯데그룹(롯데미래전략연구소), 포스코그룹(포스코경영연구원), 두산그룹(두산경영연구원) 등이 싱크탱크를 두고 있다. 

삼성글로벌리서치와 LG경영연구원의 사명 변경과 내부 재정비는 대선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대선 전부터 국내 대기업들은 대선 결과와, 달라지는 리더십에 따른 경제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기업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당장은 반색하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새 정부와 호흡을 맞추며 실시간으로 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처하는 일은 고차방정식이나 다름없다. 기업별로 어떤 전략을 세우느냐에 따라 5년이 좌우될 수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월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경제 6단체장과의 오찬 회동에 앞 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두산경영연구원, 위기 극복 선봉에 

두산그룹은 문재인 정부 기간 두산중공업 유동성 위기와 탈원전 정책이란 이중 악재를 겪으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뼈를 깎는 자구안으로 약 2년 만에 채권단 관리체제에서 벗어났으나,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단계다.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사업들이 성공해야 완벽한 재기가 가능할 전망이다. 두산은 두산중공업의 가스터빈, 두산퓨얼셀의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 에너지그룹 전환을 꿈꾼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202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 비중을 6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로 수소 가스터빈과 풍력발전 등의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원전사업에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두산중공업은 미국의 원자력발전 전문회사인 뉴스케일파워와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원전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에 힘을 쏟고 있다. ‘탈원전 폐기’를 공언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곧 취임하면 두산중공업의 국내 원전 설비 공급사업도 회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두산의 드라마틱한 경영 상황의 중심에 두산경영연구원이 있다. 두산은 2020년 3월 산업은행에 긴급 자금지원 요청을 하는 동시에 임직원 연수와 경영 전략 지원을 담당하던 DLI(Doosan Leadership Institute)의 명칭을 두산경영연구원으로 바꿨다. 그룹 싱크탱크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려는 조치였다. 그러면서 국내 거시경제 연구·분석 권위자인 김성태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을 두산경영연구원으로 스카우트했다. 두산은 이미 기획재정부 국장 출신인 문홍성·김정관씨를 전략 지원 담당자로 영입한 상태였다. 두산경영연구원은 지난 2월 에너지사업 전략 수립을 위해 윤요한 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전환정책과장도 합류시켰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경영연구원은 2016년 3월 DLI 출범 때부터 오너 일가인 박용만 전 회장이 직접 수장을 맡을 만큼 그룹에서 힘을 싣고 역할도 꾸준히 늘려왔다”며 “향후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글로벌 경제·산업 트렌드 분석, 신사업 발굴 등 담당 업무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대기업 계열 증권사 리서치센터 위상은 위축 

힘이 실린 대기업 싱크탱크와 달리 대기업 계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국내 최초의 민간 연구소인 대우경제연구소(대우증권 산하)를 시작으로 경제·산업 연구를 이끌었던 증권사들이 리서치 부문의 비중을 줄이는 추세여서다. 

삼성그룹 계열인 삼성증권의 애널리스트 수는 지난해 말 72명에서 올해 4월 현재 63명으로 감소했다. 업계 선두권의 대형 증권사인 삼성증권에선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애널리스트가 21% 줄어들었다. 현대차증권(현대자동차그룹), 한화투자증권(한화그룹) 등 다른 대기업 계열 증권사를 비롯한 업계 전반의 사정도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널리스트 수가 감소한 이유로는 증권업계 영업환경 변화, 경제·산업 정보 입수 창구의 다각화 등이 꼽힌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법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투자 참고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이익을 내왔다. 그러다 최근 증권사들이 법인 영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수료가 점점 줄어드는 반면 기업공개(IPO)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은행(IB) 관련 업무 등을 통해 얻는 이익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리서치센터의 위상이 떨어졌다. 아울러 기업·개인 투자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급격히 증가한 상황에서 증권사 리포트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연봉과 성과급 등 처우가 예전만 못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지니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들의 이탈은 이제 일상화됐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증권사들도 별다른 자구책을 내지 않으면서 이를 묵인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간부는 “과거 대우증권, LG투자증권 등 증권사 리서치 조직이 탄탄한 인프라와 맨파워를 바탕으로 모회사는 물론 국내 경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시절이 있었으나, 옛말일 뿐”이라며 “위상과 처우는 나빠졌는데, (인력 감소로) 할 일은 늘어나니 실력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이탈하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대우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인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IB, 벤처기업 등에서 애널리스트들을 스카우트하는 사례가 많은 걸 봤을 때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연구와 솔루션 도출 방식이 요즘처럼 급변하는 경제 현장에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리서치센터는 현안과 시장의 요구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특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용주의, 신축적인 대응 등을 강조하고 나선 대기업들이 기존 싱크탱크에 계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기능을 흡수·보완해 가져가는 방식도 고려해 보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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