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소액주주가 자본주의를 지킨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4 11: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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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나스닥지수, 최근 40여 년간 94배 상승…코스피는 30% 수준인 27배 증가, 왜?

주식시장이 불안하다. 미국도 그렇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공급망 차질로 물가가 뛰고 금리는 급등하면서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잠시 시선을 좀 멀리 돌려보자. 2012년 4월초 대비 2022년 4월초의 상승률을 비교해 보면 지난 10년간 코스피는 2029.29에서 2739.85로 35% 올랐다. 미국의 주가 상승률은 더 대단하다. 지난 10년간 S&P500 지수는 1419.04에서 4545.86으로 220% 올랐다. 기술주인 나스닥지수는 3119.70에서 1만4261.50으로 357% 상승했다. 우리와 차이가 크다. 지난 10년이 좀 특별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코스피 시장이 출발한 1980년 이후 상승률을 봐도 코스피는 27배로 오른 데 비해 미국 S&P500은 41배, 나스닥은 무려 94배로 뛰었다. 애초에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연합뉴스
대한항공 주주 대리인으로 주주총회에 참석한 참여연대 등 소액주주 대리인들이 2019년 3월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장의 총회 진행에 항의하고 있다.ⓒ연합뉴스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가장 큰 원인

한국 경제의 오래된 취약점 가운데 하나가 오로지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실력보다 낮게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안감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 문제는 다르다. 한국 주식시장이 저조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에서 비롯된다. 대주주의 횡포를 막을 장치가 없거나, 견제 장치가 있다고는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성장하면 그에 따른 가치를 주주들이 나눠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정 주주, 대주주만 기업 가치를 독식하는 일이 흔하다. 많은 재벌기업의 자산이 무수익 자산에 묶여있고, 재벌 총수들의 기업자산 편법 갈취 등이 횡행하고 있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최대주주 지분만 고가에 거래하는 이른바 ‘쪼개기 인수’ 방식이 대표적이다. 한샘은 지난해 기존 최대주주 등이 가졌던 약 30%의 지분을 사모펀드에 넘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샘 창업주 등은 당시 시장가보다 두 배 비싼 값을 받아가며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반 주주의 의사는 배제됐다. 현재 이 회사의 주가는 당시의 절반 수준이다.

최근 자본시장의 대세로 동시 상장을 노린 물적 분할도 마찬가지다. LG에너지솔루션이 전형적인 사례다. LG화학은 성장성이 높은 전지사업 부문을 LG에너지솔루션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시켰다. 분사와 상장을 거치며 모기업인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팔아 2조원 이상의 현금을 마련했고, LG에너지솔루션은 신주 공모를 통해 12조원 이상의 운영자금을 조달했다. 대주주와 기업은 불이익 없이 바라던 바를 얻었지만, 소액주주는 희생됐다. 미래 유망 사업이 사라진 LG화학의 주가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의 유망 사업에 대한 물적 분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만 상장사 중 기업분할을 결정한 곳이 50곳에 이른다. 그중에서 물적 분할은 무려 90%가 넘는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커진다. 자회사의 사업이 모회사에 남는 사업보다 수익성이 월등히 높다면 모회사의 주가는 하락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콘텐츠 제작사업의 물적 분할을 발표한 CJ ENM도 주가가 급락했고,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 SK온을 설립한 SK이노베이션 역시 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주주의 가치를 무시하는 기업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자본시장에서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 쪼개기 인수나 물적 분할뿐만 아니라 외견상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해 상충을 일으키는 행위도 많다. 상장회사의 대주주가 보유한 비상장회사와의 합병, 인적 분할 후 모회사와 자회사 간 주식 교환, 조건부 CB를 비롯한 준지분증권의 발행 등이 그 예다. 대주주가 소유하고 있는 비상장회사를 상장회사와 합병시키는 경우, 비상장회사의 가치평가가 높을수록 대주주는 이득을 보게 되지만, 소액주주는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조건부 지분증권의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지분 전환권이 있어 기존 주주에 대한 지분 희석 효과를 가져온다.

대주주의 상속 및 증여 상황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상속이나 증여 당시 대주주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대상 기업의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동기가 발생한다. 대주주가 시가 변동 상황을 고려해 호재와 악재 공시를 조율하며 주가를 관리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어떤 행위든 기업은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위라고 하지만 대주주는 피해가 없거나 오히려 혜택을 누리고 소액주주는 갑작스러운 기업 가치의 이전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갑작스러운 가치 이전으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현상은 방지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본격적으로 개방되면서 적지 않은 국내 기업이 외국계 주주 행동주의 펀드의 목표물이 됐다. 이들 펀드 대다수는 기업의 후진적인 회계관리 관행과 지배구조에서 파생되는 이슈들을 쟁점화해 경영권 분쟁을 유도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났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행동이 국민정서상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규제 개선과 함께 ‘개미 역할론’ 주목

하지만 낮은 배당과 저조한 주주환원율에서 알 수 있듯이 전반적인 주주 가치를 올리는 데 대한 국내 기업들의 무관심은 여전하다. 제도에 손을 봐야 할 대목이 많은 것은 물론이다. 물적 분할 같은 제도는 엄격한 규제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경우는 자회사 이사회의 독립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모회사와 자회사의 동시 상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당장은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견 표명과 참여가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12월16일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민간 자율규정 형태의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고,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국내 3대 연기금은 이미 코드 도입을 완료한 상황이다. 개인투자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개인투자자들도 이제는 기업 가치를 따져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맞다. 주주로서 회사를 응원함과 동시에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감시와 지적을 서슴지 않아야 한다. 마침 주주권리 보호 및 제도개선을 주장하는 세이브 코스피 주주운동이 시작됐다.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주주 가치를 높여보자는 모임이다.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 참여와 감시로 가능하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도 소액주주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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