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진 딸 위장전입 이어 ‘아빠 찬스’ 특혜 취업 의혹
  • 이원석·구민주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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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외교장관 후보자 딸, 한국 정부서 예산 지원하는 美 소재 한미경제연구소 3년가량 근무
후보자의 ‘절친’으로 알려진 스티븐스 전 대사가 소장 취임하자 신설된 직책으로 채용
朴후보자 측 "딸, 구인 공고 보고 지원…개인적 친분과 무관"
박진 외교장관 후보자가 지난4월2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접견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접견에 참석해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4월2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접견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접견에 참석해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딸 박아무개씨가 한국 정부에서 예산을 대부분 지원하는 미국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 한미경제연구소(KEI)에 ‘아빠 찬스’로 특혜 취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 후보자와 ‘절친’으로 알려진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가 소장에 취임한 직후 연구소 내 없던 직책이 만들어졌고 그 자리에 박 후보자의 딸이 채용됐는데, 친분에 의한 특혜가 아니었냐는 의혹이다. 

시사저널이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KEI 채용 등 자료와 이를 바탕으로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박 후보자의 둘째 자녀인 박씨는 지난 2019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약 2년 11개월 동안 KEI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KEI는 지난 1982년 미국 내 한국 우호 여론 조성 등 목적을 위해 설립돼 현재는 경제 뿐 아니라 안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미 공공외교 역할을 하고 있는 비영리 민간기관이다. KEI는 운영 자금 대부분을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으로부터 받고 있다. 연 30억원이 넘는 규모다. 

박씨가 취업하기 직전이었던 지난 2018년 9월 KEI에는 새 연구소장이 취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8년 9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3년여간 주한미국대사를 지내 국내에서도 매우 익숙한 인사이다. 당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현 외교통일위원회)은 3선 의원이었던 박진 후보자다. 두 사람은 주한미국대사와 국회 외통위원장으로 상당히 자주 접촉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는 주변의 여러 인사들과 당시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실제로도 정치권 여러 관계자들에 따르면 스티븐스 전 대사와 박 후보자는 절친에 가까울 정도로 친분이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딸 박씨 역시 스티븐스 전 대사를 ‘고모’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스 전 대사가 소장으로 취임한지 약 석 달 뒤인 2019년 1월 박 후보자의 딸 박씨는 KEI에 행정비서 사무관리(Executive Assistant & Office Manager)직에 채용된다. 해당 직책은 원래는 없었다가 박씨가 채용될 때 신설된 것으로 확인된다. KEI는 직책 신설 이유에 대해 자료를 통해 “소장의 업무지원 및 사무실 관리를 담당할 직원 채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KEI에 따르면 2018년 12월 채용전형이 실시됐고, 서류-면접 전형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박씨가 채용됐다고 한다. 

지난 2010년 한 행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박진 외교부장관 후보자(당시 국회 통일외교위워장)와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장(당시 주한미국대사) ⓒ연합뉴스
지난 2010년 한 행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박진 외교부장관 후보자(당시 국회 통일외교위워장)와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장(당시 주한미국대사) ⓒ연합뉴스

딸 박씨, 스티븐스 전 대사에 ‘고모’라 불러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박씨는 남편의 석사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2018년 중순 재미교포인 남편 심아무개씨와 결혼했다. 결혼 직후 떠나 새롭게 미국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KEI에 채용돼 근무한 것이다. 박씨는 서울 모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통번역 석사학위를 갖고 있다. 영어 실력은 매우 유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KEI도 박씨 채용 이유에 대해 ‘한국어와 영어 통역 능력이 채용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공 외에 싱크탱크나 공공정책 분야의 경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취재에 따르면 박씨는 방송국 등 미디어 분야 2~3년과, 도시락 관련 스타트업 창업을 한 경력이 있다. KEI에서의 박씨 직책이 사무직에 가깝지만, ‘소장의 업무지원’ 등의 역할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정책연구 등 연구소의 본래 역할과 연관된 특장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KEI에 따르면 박씨의 연봉은 최초 5만 달러(약 6000만원)에서 퇴사한 3년차 땐 5만4000달러가량이었다. 두 자녀를 가진 박씨는 2년 11개월가량 근무하며 2020년 5월부터 8월, 2021년 10월부터 12월까지 2차례 유급 출산휴가(각 12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박씨는 두 번째 출산휴가를 마침과 동시에 퇴사했다. KEI는 규정에 따라 출산휴가 동안 급여와 은퇴연금 등을 100% 보장해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KEI의 출산휴가는 기존 8주였으나 박씨가 휴가를 떠나기 얼마 전이었던 2020년 2월 12주로 규정이 변경되기도 했다. 2017년 이후 KEI에서 출산휴가를 쓴 건 박씨가 유일하다. 아울러 박씨는 첫 출산휴가를 끝낸 2020년 8월부터 12월, 2021년 출산휴가 기간 외에는 반일 근무를 한 것으로 확인된다. 계산하면 2년 11개월 중 박씨가 정상적으로 근무한 기간은 1년 3개월가량이다. 

눈에 띄는 건 박씨가 퇴사한 이후 ‘행정비서 사무관리’라는 직책은 사라졌다는 점이다. KEI는 박씨가 두 번째 출산휴가에 들어갈 즈음 사무관리 직원을 새롭게 채용했을 뿐 이후 지금까지 박씨의 원래 직책이었던 행정비서 사무관리직에 대해선 별다른 채용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당시 KEI 직원들도 박씨가 박 후보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도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KEI에 근무하던 기간에도 박진 후보자와 스티븐스 전 대사는 여러 공적인 목적으로 접촉하기도 했다. 박 후보자는 지난 2020년 10월 스티븐스 전 대사와 온라인 화상 정책대담을 가졌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당사에서 윤석열 당선인(당시 대선 후보)과 만나는데 당시 자리에 박 후보자가 배석했다. 

KEI 측은 시사저널 질의에 대한 5월3일 답변을 통해 “박씨는 공개 채용 공고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경쟁적인 채용 절차를 거쳤다”며 “(박씨가 채용된) 행정 비서직은 몇년간 존재해 왔으며, 해당 역할은 2019년 이전엔 두 명의 다른 직원들이 담당했다. 현재는 이 역할을 사무 관리직에 있는 직원과 신설된 프로그램 관리직의 직원이 분담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KEI 측은 박씨의 유급 출산휴가 내용에 대해선 “박씨 채용 이전부터 있던 육아 출산휴가를 적용했다. 이전 직원들도 동일한 혜택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KEI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박씨가 채용된 행정비서직이라는 직책 자체는 당초 존재하지 않았고, 스티븐스 전 대사가 소장으로 오면서 다른 직원들이 분담하던 역할을 전담하는 직책을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용선 의원실에 제출한 KEI 채용 자료 등에서도 확인된다. 아울러 출산휴가와 관련해서도 연구소 설립 이후 현재까지 출산휴가를 사용한 직원은 박씨가 유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자 측은 딸 박씨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후보자의 딸은 동 연구소(KEI)가 자체적으로 정한 내부 기준과 절차에 따라 채용되어 근무한 것으로, 후보자와 스티븐스 전 대사와의 친분과는 무관하다”며 “후보자의 딸은 출가 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웹사이트에 게재된 직원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채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박 후보자는 지난 1997년경 딸 박씨의 중학교 진학을 위해 배우자의 주소를 여의도로 위장전입을 했던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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