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핵 위협, 먹혀드나…독일 내 ‘우크라 무기 지원’ 반발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9 12: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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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중화기 지원’ 법안 통과시킨 독일 정부에 우려 목소리
“러시아 자극해 핵전쟁으로 번질 수도”

4월28일, 독일 연방하원은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지원하는 의안을 찬성 586표, 반대 100표로 통과시켰다. 물론 독일은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오고 있다. 외무부 장관 베어복의 발표에 따르면 벌써 수천 대의 대전차 로켓포, 스팅어 타입과 스트렐라 타입의 지대공 미사일을 비롯한 기관총, 수류탄, 폭약 등이 독일 땅을 떠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고 있다.

다만 이번 결의에 따라 추가로 지원되는 무기는 중화기로, 대표적으로는 게파르트 탱크가 포함된다. 독일 연방군은 이 게파르트 탱크를 지난 10년간 보유조차 하고 있지 않지만, 최근 정부에서 구입을 승인함에 따라 우크라이나로 보내질 예정이다. 이어서 탱크 투입에 필요한 탄약 구입은 현재 브라질과 협의 중이며 병사 교육은 독일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됐다.

추가적으로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제공한 슬로베니아에 독일은 마르더 장갑차와 푹스 경량탱크를 보내는, 일명 ‘순번교환제’를 실시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러한 결정은 메르켈 시대 이후 ‘시대전환’을 선포한 숄츠 총리의 기치와도 합치한다.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독일 신호등 연정(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합으로 여당 구성)의 세계사적인 발의는 제1 야당인 기민당의 지지까지 받으며 통과된 것이다.

같은 날 기민당 대표인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연설은 지금의 독일 여론을 잘 대변한다. 그는 독일이 중화기를 지원하기로 한 연방하원의 결정이 장기적으로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을 세계대전으로 확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일선의 비판 목소리를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일축했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장관이 4월26일(현지시간)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기지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화기 지원을 허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AP 연합

독일 젊은 세대, ‘우크라 무기 지원’ 여론 주도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숄츠 총리는 야당은 물론 여당 소속 동료 정치인들과 주류 매체로부터 공개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여론 역시 중화기 지원을 쉽게 결정짓지 못하는 숄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쪽으로 몰아붙였다. 특히 전쟁 전에는 반전과 평화를 위해 무기 수출을 제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젊은 층도 이번 전쟁에 대해서는 독일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크게 비난했다.

이러한 젊은 층의 선두주자로 녹색당 소속의 전 하원의원인 안톤 호프라이터가 있다. 그는 지난 2014년만 해도 독일이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에게 무기를 지원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무기 없는 평화를 주장했던 그가 놀랍게도 그 누구보다 신속한 중화기 및 병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변화를 보이는 독일의 젊은 세대는 어떻게 설명될까. 독일의 주류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젊은 층의 태도가 마치 트위터상의 말다툼, 혹은 트윗-리트윗의 구조와 유사하다고 본다. 또한 ‘무기 없는 평화’에서 ‘중화기 지원’으로의 사고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독일의 전 세계적인 위상에 대한 걱정과 구시대적인 사고 패턴, 특히 과거의 외교적인 평화정책을 앙시앙 레짐(구체제)으로 규정짓고 작별을 고하고 싶어 하는 갈망에 불과하다고 분석한다.

연방하원의 결정 하루 뒤인 4월29일 아침에는 중화기 지원에 우려를 표시하는 공개서한이 발표되었다. 숄츠 총리에게 보낸 이 서한은, 비록 러시아 침공이 국제법을 위배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이에 대한 대항은 필연적일지라도 독일의 중화기 지원은 첫째로 핵무기가 투입될 수 있는 세계대전으로 확장될 위험을 안고 있으며, 둘째로 우크라이나의 인명피해를 더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화기 지원은 전쟁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며 전 지구적 안보 및 기후위기에까지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타협과 대화에 초점을 맞출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독일의 역사적 책임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과 평화로운 미래로 향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마무리 짓는다.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한 게파르트 탱크의 훈련 장면ⓒAFP 연합

“푸틴과 대화 통해 휴전 협상하는 게 더 중요”

이 공개서한은 페미니즘 계열의 잡지인 엠마(Emma)에서 최초로 공표되었다. 공개 당시 최초 서명자는 총 28명으로, 문학계·학계·법조계·예술계에 속한 유명 인사들이 포함되었고 발표 이후에는 국제 서명운동 사이트에 올라와 현재까지 일반인의 서명을 받고 있다. 불과 8시간 만에 3만3000명의 동의를, 4일 만에 거의 20만 명의 서명을 받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공개서한은 현재까지 독일 여론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잠재된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의 유명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쥐트도이체차이퉁에 기고한 분석은 참고해볼 만하다. 하버마스는 무기를 지원하는 문제가 독일 주류 매체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설명한다. 전쟁 초기에 미국 등 서방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현재 무너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등을 돌리면 러시아가 어디에서 멈출지 모른다는 우려가 발생한다. 우크라이나 다음에는 조지아나 블타바강 유역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자니 핵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서구권의 딜레마라고 하버마스는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애초에 러시아와 나토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전쟁의 주도권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손에 있다. 즉, 그가 보기에 서구권이 일정한 선을 넘었다 싶으면 핵무기가 투입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구권이 중화기를 지원하는 등 병력에 대해서만 논의하는 한, 푸틴의 논리에 빠져 딜레마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현재 중화기 지원에 찬성하는 이들은 마치 푸틴을 무찌르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인명피해를 줄이고 평화로 이어지는 방법은 푸틴과의 대화를 통해 일시적인 휴전상태라도 협상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하버마스의 분석은 독일뿐만 아니라 서유럽이 빠진 진퇴양난의 상황을 잘 설명한다. 더불어 푸틴의 강경책이 먹혀드는 구조를 설명하고 이를 타파할 방법은 전쟁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길 외에는 없음을 시사한다. 이미 세계대전과 냉전체제를 몸소 겪은 노(老)학자의 이 같은 분석이 지금 딜레마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를 바라보는 독일 사회의 혼란상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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