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22’ 재계 지각변동의 중심에 선 동일인 4명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0 10: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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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형·유정현·최태원·구자은 통해 나타난 국내 대기업 판도 변화
대전환기 총수 능력에 기업·산업 운명 좌우

올해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 주력 집단이 처음 대기업으로 지정되고, 한 게임 대기업 창업자의 아내가 작고한 남편을 대신해 총수(동일인) 자리에 올랐다. 또 재계 2위 기업이 17년 만에 바뀌는가 하면, 재계 17위 기업은 ‘사촌 경영’의 원칙하에 동일인을 전통 방식대로 교체했다. 그야말로 신구(新舊) 문화가 맞부딪치는 현장이었다. 이런 재계 지각변동의 중심에는 동일인(총수) 4명이 있다. 

공정위는 5월1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76개 기업집단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이 가운데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47곳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시켰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공정자산 총액 기준 재계 44위)의 경우 공정위가 대기업집단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나눠 지정한 2017년 이래 대기업집단 지정을 건너뛰고 단숨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가상자산 거래 주력 집단이 대기업으로 지정된 것도 최초다. 두나무는 가상화폐 열풍에 힘입어 사업이익과 현금성 자산이 증가하면서 올해 자산총액 10조원을 돌파(10조8220억원)했다. 

송치형, 천재 개발자에서 대기업 총수로 

지정자료(공정위가 매년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동일인으로부터 받는 계열사·친족·임원·계열사의 주주현황 등의 자료) 제출 의무를 지는 두나무의 동일인으로는 송치형 두나무 이사회 의장이 지정됐다.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1979년생으로 올해 43세인 송 의장은 2007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와 경제학부 졸업 후 다날, 이노무브 등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2012년 4월 두나무를 설립했다. 

설립 초기 두나무는 직원 10명 안팎을 둔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업비트로 성공을 맛보기 전 송 의장은 초보 경영자로서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창업 초기 아이템이었던 전자책과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등이 수익모델 구축에 애를 먹다가 사라졌다. 성공의 발판은 2014년 선보인 증권플러스였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으로 옮겨가는 주식시장 변화를 포착해 여러 증권사 계정을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쉽게 관리할 수 있게 만든 서비스다. 이어 송 의장은 2017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 가격이 폭등하는 과정을 보고 가상자산 거래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다. 직접 개발팀을 이끌어 5개월여 만에 업비트 서비스를 완성했다. 후발 주자였음에도 당시 유일하게 앱 서비스를 제공한 덕에 급속도로 성장하며 빗썸을 제치고 업계 선두로 올라섰다. 

출시 3개월 후인 2017년 12월 업비트는 회원 수 120만 명, 일평균 이용자 100만 명, 하루 최대 거래액 10조원, 하루 평균 거래액 5조원이라는 성과 지표를 공개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글로벌 기준으로도 1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폭발적인 성장세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매출 3조7046억원, 영업이익 3조271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996%, 3676% 급증했다. 

업계에서는 송 의장의 성공 비결로 천재적인 개발 능력과 트렌드를 발 빠르게 파악하는 안목을 꼽는다. 임지훈 전 카카오 대표는 2013년 자신이 카카오의 자회사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로 있을 때 두나무에 2억원 투자를 결정한 데 데해 “송 의장을 보고 뭐라도 함께 하고 싶었기에 ‘묻지마 투자’를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사람 하나만 보고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을 정도로, 송 의장의 개인 능력이 남다르게 느껴졌다는 설명이다.  

ⓒ연합뉴스·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왼쪽부터 송치형 두나무 이사회 의장, 유정현 NXC 감사, 최태원 SK 회장, 구자은 LS 회장(※유정현 감사는 자료 사진이 없어 가상 사진으로 대체)ⓒ연합뉴스·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故 김정주 부인 유정현 행보에 달린 게임 업계 판도 

송 의장의 성공 스토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증권플러스 비상장, 업비트 NFT, 세컨블록 등 서비스를 잇달아 출시하며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송 의장이 2017년 12월 이석우 전 다음카카오(현 카카오) 공동대표에게 두나무 대표이사직을 넘겨주고 신(新)사업 발굴·개발 업무에 전념해 왔기에 ‘은둔형 경영자’란 꼬리표도 따라붙었지만, 이번 대기업집단과 동일인 지정을 계기로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집단 지정 이후 송 의장처럼 단숨에 유명 인사로 부상한 동일인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게임 회사 넥슨의 새 동일인으로 지정된 유정현 NXC 감사다. 유 감사는 지난 2월말 남편이자 넥슨 창업자인 김정주 NXC 이사가 사망하면서 동일인 자리와 회사의 경영권을 이어받게 됐다. 김 이사와 공동경영을 해온 유 감사가 넥슨 창립과 회사 경영에 관여한 점, 최상위 회사인 ㈜NXC의 등기임원 중 유일한 출자자임과 동시에 개인 최다출자자(29.43% 보유 중, 자녀 지분까지 합하면 30.79% 수준)인 점 등이 동일인 지정에 고려됐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유 감사는 송 의장보다 더한 은둔형 경영자로,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대기업집단 동일인들과 달리 공개 석상에서 찍은 사진조차 없다. 넥슨 내부에서도 유 감사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2014년 5월 열린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에 유 감사가 참석했는데, 그를 알아보는 넥슨 직원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유 감사와 김 이사는 김 이사가 서울대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스키장에서 만났다고 알려졌다. 슬하엔 2녀가 있다. 한때 넥슨 경영지원본부장을 맡기도 했던 유 감사는 남편 조력 내지 안살림 담당에서 벗어나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당장 유 감사가 동일인 지위로 뗄 첫 발걸음에 넥슨의 운명이 결정될 거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10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김 이사의 유산은 대부분 비상장사인 지주회사 NXC 지분이다. 김 이사가 NXC 지분 67.49%, 유 감사는 29.43%, 두 딸이 0.68%씩 보유하고 있다. 김 이사의 지분을 유가족이 모두 상속할 경우 최소 5조원대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일각에선 유 감사가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넥슨 매각에 나설 수 있다고 추측한다. 앞서 김 이사도 2019년 넥슨을 10조원 규모에 매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추측은 추측일 뿐 유 감사가 실제 매각 카드를 꺼낼지, 대주주 역할을 하며 넥슨을 이끌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재계 39위인 넥슨은 넷마블(35위)과 게임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공정자산 총액(11조2610억원)은 업계 3위이자 재계 59위인 크래프톤보다 5조원가량 많다. 유 감사의 행보에 국내 게임 산업의 판도와 미래가 달린 셈이다. 

 

최태원 “덩치 커진 건 둔해졌단 뜻일 수도” 

올해 대기업집단은 지난해(71개)보다 5개 늘어났다. 두나무를 비롯해 크래프톤, 보성, KG, 일진, OK금융그룹, 신영, 농심 등 8곳이 대기업집단에 새로 포함됐다. 한국투자금융, 대우건설, IMM인베스트먼트 등 3개 집단은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한국투자금융과 IMM인베스트먼트의 제외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의해 올해부터 사모펀드(PEF) 전업 집단, 금융·보험사와 PEF 관련 회사만으로 구성된 기업집단이 지정에서 빠진 데 따른 것이다. 대우건설은 인수·합병으로 중흥건설(20위)에 흡수되며 순위에서 사라졌다. 

이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중·하위권의 순위 변동은 개별 사업이익 증가, 자산 가치 상승 등에 따라 매년 급변했다. 반면 상위 10개 기업집단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덜했는데, 특히 ‘톱5’의 순위는 2010년 이후 2021년까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2위였던 현대자동차가 3위로 한 계단 내려가며 12년 만에 수정됐다. 기존 3위에서 2위로 올라선 곳은 SK다. SK와 현대차만 놓고 보면 두 기업집단의 순위가 뒤바뀐 건 2004년 이후 18년 만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현대차와 SK는 3, 4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다. LG의 일부가 GS로 분할되면서 2005년 현대차가, 2006년 SK가 각각 LG를 제쳤다. 이후 삼성-현대차-SK-LG-롯데의 재계 서열이 고착화했다. 2009년 잠시 5위 자리를 롯데가 아닌 포스코가 차지하긴 했으나, 그해뿐이었다.  

SK의 순위 상승은 반도체 매출 증가와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 등으로 SK하이닉스 자산이 20조9000억원 늘어난 영향이 컸다. 자연스레 SK 동일인인 최태원 회장의 경영 능력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1998년 취임한 최 회장은 2012년 당시 모두가 반대했던 하이닉스 인수를 감행했다. 그리고 신약 등 다른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계속 힘을 기울였다. 이 결정들이 지금의 SK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회장은 SK가 재계 2위 자리에 오른 것과 관련해 “기업집단 순위는 자산 순위인데, (올라간 것이) 큰 의미가 없다”며 “‘덩치가 커졌다’ ‘둔해졌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패러다임 전환 속 재계 순위 변화 빨라질 듯” 

LS의 경우 지난 2월 초대 회장을 지낸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별세로 그의 사촌 동생인 구자은 회장이 새 동일인이 됐다. LS 순위는 지난해 16위에서 올해 17위로 한 계단 내려갔다. LS는 2003년 구인회 LG 창업자의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구평회 E1 명예회장,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 등 3형제가 LG에서 계열 분리하며 출범했다. LS 창업 1세대인 3형제는 그룹을 공동으로 경영하면서 회장직은 각자의 장자가 돌아가며 맡기로 약속했다. 이에 따라 LS 초대 회장인 구자홍 회장이 2004~12년, 2대 회장인 구자열 회장이 2013~21년까지 9년씩 그룹 회장을 역임하고 이번에 구자은 회장이 이어받은 것이다. 구자은 회장은 구두회 회장의 외아들로, 2세 경영의 마지막 주자다. 구자은 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LS 오너 일가 3세 경영인들의 역할도 확대됐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경영연구원 고위 간부는 “예년이었으면 LS 같은 전통적인 재벌그룹의 동일인 변경 정도가 주요 이슈였을 텐데, 이제 전혀 새로운 기업이나 인물이 재계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며 “두나무의 송치형 의장, LS의 구자은 회장이 동시에 거론되는 올해가 재계 지각변동의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와 SK의 위치가 뒤바뀐 것도 단순한 재계 순위 변동 이상으로 봐야 한다”면서 “재계 10위권 내로 들어가면 개별 기업 간 격차가 (중·하위권 대비) 상상 이상으로 크다. 하지만 산업 패러다임 대전환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철옹성 같던 상위권 대기업 서열 변화가 가속화할 조짐”이라고 내다봤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연합뉴스

■ 또 동일인 지정 피한 쿠팡 김범석…논란도 ‘현재진행형’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쿠팡의 재계 순위는 기존 60위에서 53위로 상승했다. 공정자산 총액도 5조7750억원에서 8조6330억원으로 부쩍 불어났다. 사세가 더욱 커진 가운데 김 의장은 총수 지정을 피해 허위 지정자료 제출 등에 따른 법적 책임을 또다시 면하면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공정위가 지난해 5월1일 쿠팡 동일인에 김 의장이 아닌 쿠팡 법인을 지정하자 갑론을박이 뒤따랐다. 쿠팡은 대기업집단에 처음 포함됐으나, 실질적 소유주인 김 의장의 경우 미국 국적이란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피했다. 공정위는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적이 없고, 현행 제도로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 어려워 김 의장을 지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집단 지정자료에 허위·누락이 있으면 동일인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데, 외국인에게는 형사 제재를 내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필연적으로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공정위는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외국인 동일인 지정’ 관련 연구용역을 맡겼다. 지난해 말 받아든 연구용역 보고서는 ‘경제력 집중이 발생할 경우 내·외국인 구분 없이 총수를 지정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공정위는 올해 3월엔 동일인 지정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쿠팡 현장 조사까지 벌여 김 의장의 개인 지분 변동, 개인 회사의 소유, 친인척 회사의 소유 등을 살폈지만, 지난해와 달리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사정 변경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다는 건 외국인에게 형벌까지 부과할 수 있는 큰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어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내년에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할지는 내년의 제도가 어떤지, 다른 여건이 발생했는지를 봐서 검토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도 개선과 관련해선 연구용역 결과를 받아 검토 중이고, 시장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확정해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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