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자기 진영만의 대통령’으로 남은 文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8 14:00
  • 호수 1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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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었을 때 통합의 리더십 발휘했다면 우리 정치가 이토록 극단적 진영 대결의 늪에 빠지진 않았을 것

“K방역은 우리의 자부심이다.” 귀를 의심케 하는 이 말은 곧 임기를 마칠 문재인 대통령의 얘기다. 문 대통령은 4월28일 주재한 코로나19 방역 관계자와의 간담회에서 그 같은 말을 이어갔다. “국가적 성취이자 결코 폄훼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성과”라고까지 한 것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한때 인구 대비 하루 세계 최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국이라는 오명을 썼건만, 문 대통령은 K방역의 성과에 대해 남다른 집착을 보여주었다. 물론 보건 당국과 의료진들이 오랜 기간 고생했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동안 고통받았던 국민의 심정을 생각하면 그런 자찬의 언사가 적절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발언도 예상 밖이었다. 4월25일 공개된 방송 대담에서 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우리하고 비슷한 수준의 나라들 가운데서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 상승 폭이 가장 작은 편”이라고 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은 없고, “세계적 시각이 포함되어서 봐야 한다” “여러 가지 당시의 구조적 원인들을 함께 봐줘야 한다”는 식의 면피성 발언들이 이어졌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 항변으로 들리게 만든다. 불과 열흘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시장 안정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했던 사과가 무색해지는 발언들이었다. 귀를 막은 채 선무당 같은 정책들만 고집하다가 엉망이 된 부동산 문제에 분통을 터뜨려온 국민에게, 문 대통령의 얘기는 다른 나라 대통령의 얘기처럼 들릴 지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3일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성찰의 모습 우선’이 퇴임 대통령의 도리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의 대표 사례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노동분배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고용참사를 낳았다는 평가를 인정하지 않고 “왜 실패했다고 낙인찍는가”라며 항변하던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이래서 나왔구나 싶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코로나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확장했다”는 말도 최근 했다. 하필이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독주가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자화자찬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유체이탈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문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그동안 참고 있었던 말들을 쏟아낸다.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의 요즘 말들을 듣노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자신의 치적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후한 점수를 스스로 매기는 문 대통령이지만, 곧 취임할 후임 대통령에 대해서만은 각박한 평가를 내린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새 정부의 집무실 이전 계획이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된다. 집무실 옮기는 게 국가 백년대계인데 어디가 적지인지 이런 거 두루 좀 여론 수렴도 해보지 않고….” “윤석열 당선자가 선제타격을 얘기한다든지, 버르장머리를 고친다든지 이런 식의 표현들은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이나 이런 정도에서는 몰라도 국가지도자로서는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작심이라도 한 듯이 윤 당선인을 향해 직설적인 비판들을 이어간다. 물론 윤 당선인의 행보에서 비판받을 일은 여러 가지 있다. 문 대통령이 지적한 문제들이 사실 틀린 얘기들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비판들은 언론과 국민이 할 일이지, 정권을 야당에 내주고 물러나는 대통령이 할 일은 아니다. 윤 당선인은 더 이상 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았던 검찰총장이 아니라, 민의에 따라 선출된 다음 대통령이지 않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가치와 철학이 다르더라도 후임 대통령을 향해서는 악담이 아닌 덕담을 남겨주는 것이 퇴임하는 대통령의 미덕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년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억울한 듯, 이렇게 자신의 성과들을 강조하는 말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것도 적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선의를 갖고 국정을 잘 운영해 보려 했음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선 당시 정권교체 여론이 민심에서 불변의 우위를 점했던 현실에는 문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이었다. 그래서 ‘20년 집권론’은 고사하고 ‘10년 주기설’조차 지켜내지 못한 채 정권을 내주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먼저 성찰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퇴임하는 대통령의 도리일 것이다.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으로 스스로를 가둬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들은 국민의 눈높이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어느 정부든 공과(功過)가 함께 있어왔다. 문재인 정부 또한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받는 것이 옳다. 다만 문재인 정부가 다른 정부와 달랐던 것은, 촛불정국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쳐 들어섰던 정부였기에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환경이다.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자괴감에 빠져있던 국민에게 문재인 정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희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80%에 육박하는 지지율이 나왔던 현상은 그런 이유였다. 문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해 이렇게 다짐했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진영의 내로남불 속에서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손만 잡고 여기까지 왔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은 진즉에 놓아버렸고, 그들의 얘기에는 귀를 닫아버렸다.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으로 스스로를 가둬버린 것이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좋은 환경에서 출발했기에, 힘이 있었을 때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우리 정치가 이토록 극단적인 진영 대결의 늪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여야 각 정치 세력들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통합의 열쇠를 쥐고 있던 문 대통령에게 누구보다 큰 책임이 따름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은 퇴임을 일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5월3일, 민주당의 시간표에 맞춰 국무회의 시간을 오후로 늦춰가면서까지 논란의 ‘검수완박’ 법안들을 공포했다. 최소한의 숙의 과정조차 건너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우려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문제였지만, 결국 대통령은 자기 당과 지지자들의 요구에 화답하며 임기를 마쳤다. 안타깝게도 검수완박 졸속 입법이 남길 후과에 대한 책임에서 대통령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그렇게 임기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진영만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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