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위협하는 푸틴, 과연 정상적 의사결정을 하고 있을까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9 10:00
  • 호수 16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신·신체 건강 이상설, 꾸준히 제기돼…흑해 연안 전력 집중 등 아직은 합리적 판단 보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까운 장래에 암 수술을 받을 것이며, 자신이 수술로 업무를 볼 수 없는 동안 강경파인 전 KGB(소련 시절 연방보안국) 수장에게 권력을 맡겨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끌게 하려고 한다.”

영국 타블로이드 일간지인 ‘데일리메일’이 4월30일자에서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내부자의 정보라며 이런 내용을 전했다. 데일리메일 자체가 신뢰도가 높지 않은 신문인지라 팩트체크도 필요하겠지만, 이 기사는 중요한 두 가지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바로 푸틴의 건강과 판단력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원인과 전망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4월12일 드니프로시 주택가에 미사일이 땅에 박혀 꼬리가 튀어나와 있다.ⓒAP 연합

파킨슨병·조현병 증상 보인다는 주장 나와

우선 푸틴이 앓고 있는 것으로 서방 측에서 추정하는 질환을 살펴보자. 데일리메일은 푸틴은 응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복부 종양을 잃고 있어 애초 4월 하순으로 예정됐던 수술을 5월 9일 전승절 열병식 뒤로 연기했다고 전했다. 제목에서 언급했던 ‘강경파 KGB 수장’은 2008년부터 러시아연방 안전보장회의(SCRF) 의장을 맡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라고 기사는 밝혔다. 파트루셰프는 같은 레닌그라드(지금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틴과 소련 시절 KGB에서 함께 근무했으며, 1999~2008년 KGB 후신으로 국내 정보·보안을 맡는 연방보안국(FSB) 국장을 지냈다. 해외정보국(SVR)은 별도로 분리됐다.

파트루셰프가 주목되는 것은 그가 우크라이나 침공 전략을 설계한 인물로 지목된다는 사실에서다. 파트루셰프는 나토가 키이우를 지원해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와의 분리를 초래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정치인들을 네오나치로 확신하게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실제로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국가 대 국가의 전쟁으로 인식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 세력을 제거하는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그 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한 나라라는 주장을 거듭 밝혀 왔다. 우크라이나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나라로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뒤 블라디미르 레닌이 만들어준 나라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지속해 왔다. 러시아 국가두마(연방하원)는 3월4일 자국 군대 활동에 대한 허위정보를 유포하거나 군의 신뢰를 훼손하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으로 표현하면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데일리메일은 푸틴이 전면전·총력전에 나서기 위해 전국에 동원령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이 신문이 푸틴의 암 투병설을 제기하면서 인용한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의 ‘제너럴 SVR’ 채널은 이미 18개월 전에 푸틴이 암과 파킨슨병, 그리고 조현병 증상을 보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파킨슨병설은 푸틴 대통령이 4월21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을 만나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점령을 칭찬하는 장면이 자국 TV에 방송되면서 확산했다. 이날 푸틴은 구부정하게 앉아 앞에 놓인 테이블 모서리를 시종일관 오른손으로 꽉 붙든 모습이었고, 다리를 수시로 까딱거렸으며, 격려하는 자리답지 않게 표정도 다소 경직돼 있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보수당 하원의원 출신의 작가 루이즈 멘시를 인용해 파킨스병설을 소환했다. 멘시 전 의원은 “과거 푸틴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 영상을 보면 푸틴이 떨리는 손을 감추려고 테이블을 잡고 있는 걸 볼 수 있다”며 “그런데도 계속 발을 까딱거리는 건 멈출 수 없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오랫동안 푸틴의 건강 분석해 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2013년 2월 전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인 클리퍼드 개디 등을 인용해 푸틴이 인격장애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러시아의 역사와 전통에 집착하고, 자신이 압박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주류와는 차별화되는 아웃사이더임을 유난히 강조해온 것을 근거로 삼았다. 미국의 정신건강 관련 전문지인 ‘사이키애트릭 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월25일, 푸틴이 전쟁을 벌인 것은 망상과 집착에서 비롯됐다면서 푸틴의 최근 행동이 조현병과 연관 있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사실 미국은 오랫동안 푸틴의 건강을 분석해 왔다. 거기서 제기된 가설 중 하나가 야스페르거 증후군설이다. 미국 해군참모대학의 행동패턴분석(MPA) 전문가인 브렌다 코너스가 미 국방부의 내부 싱크탱크인 총괄평가국(ONA)의 의뢰로 일찍이 2008년 푸틴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한 결과다. MPA는 비언어적인 행동을 바탕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인의 동기를 평가하는 분석 방법으로, 경영·군사 등에서 활용된다. ONA는 냉전으로 핵전쟁 위험이 가중되던 1973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가 국방·안보 전략을 장기적·입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2015년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코너스는 푸틴이 자폐 스펙트럼에 속하는 발달장애 증상의 하나인 아스페르거 증후군을 앓는 것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증상을 처음 보고한 오스트리아 의사 한스 야스페르거의 이름을 딴 이 중후군 환자는 특정 주제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이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이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타인과의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기 쉽다. 결국 특정한 소그룹과만 교류하거나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언어·지적 능력이 양호해 야스페르거 증후군이 비교적 늦게 발견되거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푸틴의 그간 행동, 특히 이번 전쟁 결정을 살펴보면 상당히 들어맞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야심과 체력 사이 상당한 간극 존재하는 듯

정신·신체 이상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작전이 3월말 이후부터 키이우에서 철수하고 동남부 돈바스와 남부 전선에 전력을 집중하면서 새롭게 관심이 집중된다. 푸틴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2월24일 최소 7개 방향으로 분산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러시아군이 전략적 이익이 큰 아조프해와 흑해 연안으로 전력을 집중하는 것은 일단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돈바스는 러시아가 승인한 친러 분리주의자 정권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이 2014년부터 절반을 지배하고, 나머지는 우크라이나가 계속 통치한다. 2015년 민스크 협정에 따라 분리주의자 지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안전지대를 설치했으나 계속 전투가 벌어져 왔다. 돈바스는 쇠락한 중공업 지역으로, 소련 시절 이주한 러시아계 광부와 공장 노동자가 대거 거주한다. 푸틴은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집요하게 주장하면서 이를 개전 명분 중 하나로 내세워 왔다. 따라서 이 지역 전체를 장악하면 전쟁 명분을 그럴싸하게 충족하는 정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지역이 우크라이나 남부다. 이 지역에는 크림반도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이 대거 투입됐다. 우크라이나 남부에 진입한 크림 집단은 서쪽으로는 드네프르강 하구의 항구인 헤르손을 점령하고, 동쪽으론 분리주의자들과 함께 돈바스 남부의 마리우폴을 공격해 왔다. 우크라이나 해안 지역은 지리적으로 러시아에 큰 이익이 걸려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동쪽의 아조프해 연안을 장악하면 마리우폴과 베르단스크 등 이 지역 항구를 이용할 수 있다. 크림반도의 군항인 세바스토폴이나 상업항인 페오도시아 등의 활용도도 높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서남부 흑해 연안은 전략적·해양적 가치가 상당한 지역이다. 특히 인구 100만의 항구도시 오데사는 러시아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에겐 역사적·전략적으로 큰 의미와 가치가 있다. 19세기 러시아인은 물론 유대 상인과 그리스인·폴란드인 등 다국적 상인이 몰린 국제항구였다. 당시 러시아제국에서 모스크바·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바르샤바에 이어 네 번째의 대도시였다. 현재도 우크라이나 물류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항구다. 특히 거대한 유류 물류기지가 있어 러시아로선 활용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파이프에 의존해온 석유와 가스 수출을 해운을 이용해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곡물 수출에 의존하는 우크라이나 경제의 목줄도 죌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부동항 확보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을 통해 이른바 부동항을 추가 확보했다. 우선 러시아 해군이 조차해 사용하던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을 아예 차지했다. 시리아에서도 서남부 타르투스항을 해군이, 중서부 라타키아주의 흐메이밈 공군기지를 공군이 각각 49년간 조차 계약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러시아의 능력이다. 현재 전력으로는 아무리 우크라이나 남부에만 집중한다 해도 점령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이야기다. 갈수록 강화되는 서방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을 보면 미래는 러시아 편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4월20일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맛을 추가 시험발사하며 핵전력을 과시하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이 4월25일 제3차 세계대전과 핵무기를 거론한 배경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확전을 두려워하는 서방을 위협해 대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끊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전쟁 초기 핵무력 대비태세 강화를 지시하면서 나토의 군사 개입을 원천 차단한 푸틴이 핵 위협을 반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하도록 서방을 압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러시아군이 재래식 전투에서 밀리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심과 체력 사이엔 상당한 간극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면 푸틴에게 정신 승리를 안겨주고 체면을 살려주면서 전쟁을 협상으로 마무리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쉬운 길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