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 60번 찾아오고 가족 위협해도 결국 용서 택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7 10: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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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전조' 스토킹, 법의 빈틈을 노린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1심 판결문 56건 전수 분석
피해자 ‘처벌 불원’ 따른 자동 기각 18건, 접근 금지 중 범행도 10건
스토킹 ‘반복’돼야 범행 인정…“운이 좋아 아직 살아있는 것일 뿐”

2020년, 30대 여성 A씨는 자신을 1년 동안 집요하게 스토킹한 남성 B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B씨는 A씨의 사업장에 수시로 찾아와 욕설을 쏟는가 하면, 밤길에 나타나 위협하며 거듭 ‘사귀자’고 요구했다. 10차례 가까운 경찰 신고 끝에 B씨에게 내려진 처벌은 범칙금 5만원. 스토킹 범죄가 경범죄처벌법의 적용을 받아 최대 10만원 벌금형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7개월 전까지만 해도 스토킹 범죄는 금연구역에서의 흡연 행위, 쓰레기 무단 투기 등과 함께 ‘경범죄’로 처벌됐다. 급기야 스토킹이 살해로 이어지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지난해 4월 스토킹 처벌을 강화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뒤늦게야 국회를 통과했다. 같은 해 10월21일 본격적으로 법이 시행되면서 스토킹은 더 이상 ‘연인 간 사랑싸움’이자 ‘10만원짜리 경범죄’가 아닌, 살인 등 강력범죄의 ‘전조(前兆)’이자 ‘중범죄’로 규정됐다. 법에 따라 스토킹 가해자는 스토킹 범죄 자체만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게 됐다.

법 하나의 존재감은 컸다. 당장 스토킹 관련 112 신고 건수가 급증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인 2020년 기준 하루 평균 12.3건이던 스토킹 신고 건수는 시행 후 하루 약 100건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그동안 주저하던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면 확실한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들의 기대와 바람대로 처벌은 ‘확실하게’ 이뤄져왔을까. 시사저널은 법 시행 첫날(2021년 10월21일)부터 5월10일까지 약 7개월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거나 재판부가 가해자의 범죄를 스토킹 행위로 규정한 사건의 1심 판결문 56건을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10만원 이하 벌금형 또는 기각 일색이던 이전과 달리, 처벌 강도가 전반적으로 상향된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가 판결 중 스토킹 범죄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범죄’라고 명시하는 등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일러스트 오상민

처벌불원서 제출, 보복 두려워 선택한 마지못한 용서

그러나 스토킹처벌법상의 처벌 규정과 실제 피해자들이 겪은 피해 정도에 비해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처벌 수준은 여전히 관대했다. 분석 결과, 실형(징역형)이 선고된 경우는 56건 중 9건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도 징역 2년 이상이 내려진 경우는 헤어진 전 연인을 10년 이상 스토킹하고 협박해 여러 차례 수감됐다가, 출소 직후 같은 범행을 저질러 가중 처벌된 남성 등 단 2건에 그쳤다. 1심 56건 가운데 다른 혐의 없이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만으로 기소된 사건은 24건이었는데, 이 중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전무했다. 스토킹 범죄만으로는 여전히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체 56건 중 절반 이상은 형을 살지 않는 징역형 집행유예(17건)와 벌금형(12건)이었다. 가정폭력으로 이미 집행유예가 내려진 상태에서 6개월간 이혼한 부인의 주거지와 직장을 90여 회 찾아간 남성에 대해 법원이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며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다. 벌금형 역시 12건 가운데 가장 큰 액수는 500만원으로, 스토킹처벌법에 명시된 규정(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수차례 주거침입 혐의가 더해져 선고된 결과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직 스토킹 범죄에 대한 별도의 양형기준을 세우지 않고 있다. 빨라야 2023년 중에 양형기준이 나올 것으로 전망돼 그 전까진 재판부 재량에 따른 고무줄 감경과 형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판결 가운데 더욱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각’된 경우다. 56건 중 18건, 즉 3건 중 1건 수준으로 스토킹 혐의에 대해선 기각이 내려졌다. 18건 모두 기각 사유는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되어 있다. 선고 전 피해자가 한 줄이라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스토킹 혐의는 자동으로 기각 처리되며 가해자는 곧장 무죄가 된다. 60회 이상 피해자의 집을 찾아간 가해자도, 하루에 50여 통씩 연락을 하며 피해자의 가족까지 위협했던 가해자도 모두 이렇게 스토킹 혐의에서 벗어났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협박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용서를 택하는 피해자가 다수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한 20대 여성 피해자는 헤어진 옛 연인 C씨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자 그를 112에 신고했다. 이 사실을 안 C씨는 이후 피해자의 주거지를 수시로 찾아와 위협을 가했다. C씨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피해자는 선고 전 C씨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판결문엔 피해자가 끝내 용서를 택한 이유가 어디에도 명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 112 신고로 인해 한 차례 보복을 경험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기까지 어떤 우려를 했을지 짐작하게 한다. 그 외에 스토킹 행위 내내 수면제 수백 알을 먹으며 자살을 시도하고, 피해자의 말 못 할 비밀을 지인들에게 알리겠다며 협박했던 가해자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사례도 있었다.

 

잠정조치 ‘시간 공백’ 파고든 범행, 점점 강력해져…살해까지

반의사불벌죄가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된다.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만 밝히면 상황이 종료되기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합의를 강요하며 위협할 가능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특히 스토킹 가해자 중 피해자의 집주소·전화번호 등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판결문 분석 결과 56건 중 34건이 헤어진 연인이나 이혼한 부부 사이에 발생한 스토킹 범죄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면식 없는 관계인 경우는 2건에 불과했다. 가해자 대부분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상당 부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보복성 2차 가해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부작용 우려 탓에, 지난해 스토킹처벌법 제정 당시에도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제기됐지만 끝내 불발됐다.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에 대한 결정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스토킹 범죄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이재명·안철수·심상정 후보 모두가 스토킹 반의사불벌죄 삭제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도 이 부분을 손본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어 추후 논의가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56건 가운데 스토킹처벌법만으로 기소된 24건을 제외한 나머지 32건의 경우 주로 주거침입·협박, 나아가 성폭력·폭행 등 강력범죄 혐의와 함께 기소됐다. 판결문을 통해 가해자들의 범행을 살펴본 결과, 이들 다수는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개월간 스토킹을 지속하다가 폭행 등 한층 강력한 범죄행위로 확대해 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올 초 기소된 한 가해 남성은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 여성을 4개월간 따라다니며 만남을 요구했고, 피해자 집으로 찾아가 지켜보는 등 스토킹 행위를 이어갔다. 피해자가 만남을 거듭 거부하자 이내 피해자의 주거에 무단으로 침입했고, 더 나아가 피해자를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물리적인 폭행을 가했다. 지난해 3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큰딸을 스토킹하다 세 모녀 모두를 살해한 김태현 역시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하고 집 근처를 맴도는 것으로 범행을 시작했다.

따라서 스토킹이 그 이상의 범죄로 번지지 않기 위해선 피해자에 대한 빠르고 철저한 신변보호가 강조된다. 이를 위해 지난해 스토킹처벌법 제정 당시 접근금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를 법에 포함했다. 피해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법원의 승인을 받아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정보통신 접근금지를 시키고(긴급응급조치), 나아가 가해자를 유치장에까지 구금할 수 있는 조치(잠정조치)를 의미한다. 실제 법 시행 후 각 조치는 1500건 이상 현장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판결문들을 살펴본 결과, 각 조치가 내려진 와중에 스토킹 등 추가 범죄가 행해진 경우가 10건에 이르렀다. 잠정조치 결정을 통보받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거지에 침입하거나, 긴급응급조치 기간 중 타인의 휴대전화를 빌려 피해자에게 전화해 욕설을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처럼 사각지대가 생긴 이유는 해당 조치가 내려지기까지 ‘시간적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지혜 경찰청 생활안전국 스토킹정책계장의 조사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법원의 승인까지 긴급응급조치는 평균 1.9일, 잠정조치는 2.3일 소요됐다. 길게는 5일 이상 걸린 경우도 있었다. 실제 조치를 위반한 10건 중 대부분은 법원의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범행이 이뤄졌다. 이 경우, 접근금지 조치를 받은 가해자가 더욱 감정적으로 나올 수 있어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커진다. 지난해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살해해 올 초 신상이 공개된 김병찬 역시 경찰로부터 잠정조치 통보를 받은 직후 흉기를 검색했으며 이내 살인을 저질렀다.

2021년 3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의결됐다. 다음 달 13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됐으며 10월21일 시행됐다.ⓒ시사저널 박은숙

“스토킹 피해엔 공백은 있어도 진정한 끝은 없다”

강소영 건국대 경찰학부 교수는 해당 조치들에 대한 다각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선 강 교수는 “두 조치의 경우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을 통해 법원에 청구되기 때문에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며 “경찰이 법원에 바로 청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가 조치를 위반할 경우 지금보다 훨씬 강한 가중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현재 잠정조치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지만,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한 경우 1000만원 이하 과태료만 부과된다. 강 교수는 “지금과 같은 가중처벌 정도로는 가해자들을 억제하고 추가 피해를 예방하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며 “범죄자들이 매우 큰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신상공개, 전자감시와 같은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인정한 판결문 속엔 공통적으로 쓰인 표현이 있다. “피고인(가해자)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켰다”는 것. 이것은 곧 현행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스토킹의 ‘정의’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스토킹의 정의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위와 같은 정의라면 단 하루, 단 한 번의 스토킹은 강도와 관계없이 스토킹 범죄에 포함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법원의 실제 56건의 판결문 속 가해자의 스토킹 행위 역시 최소 3회 이상 이뤄졌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이 심층 인터뷰한 한 스토킹 피해자는 “스토킹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는 건 운이 좋아 아직 살아있는 것뿐이다. 다음에 와선 바로 칼로 찌를 수 있다”며 “(반복돼야 스토킹이 아니라) 반복되면 안 되는 일이 바로 스토킹”이라고 강조했다.

거꾸로 이뤄진 판결은 또 하나 있다. 판결 가운데 피해자와 가해자가 과거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형을 감경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인적 신뢰관계가 있던 사람일 경우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다슬 팀장은 “스토킹 피해자들은 이사나 전학, 이직을 하고 따라서 이전의 사회적 관계와 단절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가 과거 신뢰관계가 있던 사람이었다면 피해 범위가 더 커지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고 전했다. 더구나 가장 가까운 사이 중 하나인 직계존속의 경우 현행법상 고소 특례가 없어, 이들로부터 스토킹을 당해도 법적으로 문제 삼기 힘들다.

범죄는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더욱 잔혹하게 피해자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정치권과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오랜 기간 논의가 부진했던 처벌법을 지난해 속도감 있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법 곳곳에 치명적인 구멍이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구멍을 보완해 가는 동시에, 다소 뒤로 밀려있던 피해자 보호 방안에 대한 입법 또한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가장 편안했던 공간이 가장 두려운 공간이 되어 기존의 일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 현재 주거·생계·취업 등 다방면의 지원책이 논의되고 있다. 많은 피해자가 “ 피해에 ‘공백’은 있어도 진정한 ‘끝’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만큼 이들을 향한 지원 역시 좀 더 지속적이고 장기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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