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 경영 ‘덫’에 갇힌 구현모 KT 사장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5.19 07:3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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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통신’ 선언으로 KT 실적은 고공행진 중인데…
CEO 법적 리스크로 내년 초 연임 전선에는 ‘빨간불’

“KT는 더 이상 통신회사가 아니다.”

2020년 3월 KT 대표이사에 취임한 구현모 사장의 말이다. 구 사장은 KT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탈(脫)통신’을 선언했다. 통신기업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Digital Platform Company·디지코)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일정 부분 성과도 거뒀다. 통신 일변도의 매출 구조가 비통신 부문으로 확대됐다. 구 사장 임기 동안 통신 부문의 매출보다 비통신 부문의 매출 증가율은 높게 나타났다. 구 사장이 특히 공들이고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과 클라우드,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부문의 경우 매출 성장률이 5% 전후를 기록 중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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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통신’ 선언의 명과 암

덕분에 KT의 매출과 영업이익 역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KT의 연결 기준 매출은 24조8980억원, 영업이익은 1조671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4.19%, 영업이익은 41.19% 증가했다. 취임 초 4% 수준이었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6%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올해 실적 역시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증권가는 전망하고 있다. 당장 주가가 화답했다. 구 사장 취임 직전 1만7000원대였던 주가는 꾸준히 회복되더니, 올해부터는 3만원대 중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내년 초 3년 임기를 마치고 연임을 노리는 구현모 사장에게 ‘호실적’은 날개를 달아주는 분위기다.

하지만 KT 주변에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탈통신’을 외친 CEO가 구 사장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1월 취임한 이석채 전 회장 역시 ‘탈통신’을 외치며 사업 분야를 늘려나갔다. KTF를 합병하면서 유·무선 통신 사업자로 거듭난 게 대표적이다. BC카드와 스카이라이프 등 비통신 분야 계열사도 꾸준히 늘리면서 58개 계열사를 거느린 ‘공룡 기업’이 됐다. 매출 역시 한때 30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회사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KT는 2013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KT의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으로 하향 조정했다. 구 사장 역시 ‘탈통신’에 함몰돼 통신 본연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KT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전임 황창규 회장이 취임하면서 내건 일성이 ‘통신 본연의 경쟁력 회복’이었다. 렌터카 업계 부동의 1위인 KT금호렌터카(현 롯데렌터카) 등 비통신 자회사를 줄줄이 매각해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다”면서 “구 사장이 이를 뒤집고 다시 ‘탈통신’을 선언한 데 대한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KT의 통신 서비스 품질 논란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전국에서 86분간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이 일로 인터넷 사용자는 물론이고, 배달앱과 결제포스(POS)기 등이 먹통이 되면서 소상공인들이 적지 않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통신장애 당일 숙박·음식점업 카드 사용액은 평소 대비 26%나 감소했다. 이 밖에도 초고속인터넷 속도 문제나 IPTV 먹통 사태 등 잊을 만하면 사고가 터지면서 품질 논란에 불을 붙였다.

재임 기간 내내 발목을 잡고 있는 ‘법적 리스크’는 구 사장의 연임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 사장은 지난해 4월 ‘상품권깡’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국회의원 99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업무상 횡령 및 정치자금법 위반)로 검찰에 약식기소됐다. 법원 역시 혐의를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구 사장에 대해 각각 500만원과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구 사장은 법원의 약식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KT 관계자는 “(구 사장은) 쪼개기 후원을 주도하지 않았다. 별도로 보고받은 적도 없다. 단지 대외협력(CR) 담당 임원들의 요청을 받고 본인 계좌를 통해 입금한 것이 전부다”면서 “법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있어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사장 역시 공판 과정에서 “CR 부문에서 정치자금 기부를 요청받고 명의를 빌려준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이런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도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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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8일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조성 중인 ‘관악S밸리’에 스타트업 기업 지원을 위한 ‘디지코 KT 오픈랩’이 문을 열었다.ⓒ연합뉴스

KT “SEC 과징금 실적 악영향 제한적”

하지만 시사저널이 입수한 구 사장의 검찰 공소장 내용은 달랐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돈을 전달받아 국회의원 후원회 계좌로 입금했는지가 상세하게 언급돼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구 사장은 2016년 9월께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 집무실에서 피고인 또는 가족, 지인 등 명의로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해 달라는 CR 부문 임원들의 요청을 받고 승인했다. 이후 서울 종로구 A은행에서 국회의원 13명에게 정치자금을 송금했다. “구현모 대표 등 핵심 실세 지시가 있었다”거나 “구 대표에게 보고했고 승낙을 받았다”는 전직 임원의 진술서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순한 명의 대여가 아니라 공모를 통해 불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구 사장과 검찰 측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T는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630만 달러(약 7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이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모처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KT의 실적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구 사장은 지난 3월말 열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항의에 대해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KT 새노조와 시민단체들이 구 사장의 CEO 자격을 문제 삼으며 연임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은 최근 KT 경영진의 엄벌과 신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구 사장이 벌금형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이 내년 연임을 위한 시간끌기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KT 관계자는 “내부 규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야 CEO 자격이 제한된다”면서 “연임을 노린 꼼수라는 일각의 지적은 말이 안 된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주요 증권사들이 KT의 경영 상황을 낙관적으로 전망해 주가를 5만원대까지 높여 잡고 있다. 새노조나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은 이 같은 경영 성과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있다”면서 “SEC의 과징금 역시 사업보고서에 매년 포함시켜왔다. 금액 역시 전체 영업이익을 감안할 때 미미한 수준이니만큼 실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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