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병역특례, 손흥민은 살아남았는데 이강인은?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9 12:0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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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파의 병역 혜택, 수백억 걸린 머니게임
이강인과 PSG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포커스를 맞춘 이유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강인의 아시안게임 차출이 천신만고 끝에 마무리됐다. 이강인은 9월21일 오후 결전지인 중국 항저우에 입성했다. 당초 이강인 차출은 ‘황선홍호’가 항저우로 떠나기 이틀 전인 14일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5년 전 손흥민의 아시안게임 차출도 진통이 컸지만, 당시엔 대한축구협회와 토트넘이 첫 경기 보름을 앞두고 극적으로 결론을 냈던 것과 대비됐다. 이강인의 소속팀 파리생제르맹(PSG)은 첫 경기 나흘 전인 15일에야 차출을 허가하는 최종 공문을 보내왔다.

3월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한국 대표팀의 이강인이 드리블하고 있다. ⓒ연합뉴스

5년 전 아시안게임 금메달 못 땄다면 지금의 손흥민·김민재도 없어

이렇듯 유럽파의 아시안게임 차출에는 늘 천신만고의 과정이 동반된다. 선수의 기량과 가치가 높을수록 더 어렵다. 이강인은 지난 6월 스페인 마요르카를 떠나 프랑스 PSG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이미 구단과 아시안게임 차출에 관한 큰 틀의 합의를 했다. 문제는 구체적인 차출 시점과 기간이 명시되지 않아 구속력이 거의 없는 조항이었다는 점이다. PSG 입장에서는 최대한 늦게 보내는 것이 팀에 이득이었다.

아시안게임은 국제 축구의 관점에서 아무 가치가 없는 대회다. 같은 종합스포츠대회인 올림픽의 경우 FIFA(국제축구연맹)가 주관하지만 아시안게임은 AFC(아시아축구연맹)가 심판 파견 등에 일부 협조할 뿐이다. FIFA 의무 차출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아시아 지역만의 축제인 이 대회와 아무 연관이 없는 유럽의 축구클럽들은 대한축구협회의 차출 요청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한창 시즌 중인데 3주 넘게 선수를 보내 전력 공백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선수 입장은 다르다. 한국은 징병제에 기반한 병역의무가 있는 나라다. 18개월의 복무 기간을 한국에서 해결해야 한다. 정확히 18개월로 끝나지 않는다. 경기력 유지를 위해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하려면 지원하기 6개월 전부터 K리그에서 뛰고 있어야 한다. 전역 시점이 선수 등록 기간(이적시장)과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최대 5개월가량 더 국내에 머물러야 한다. 실제 공백은 2년 이상이고, 유럽파로서의 연속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런 문제로 유럽파 커리어가 중단된 대표적 사례는 권창훈이다. 프랑스(디종)와 독일(프라이부르크)에 안착했음에도 병역 문제로 인해 유럽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프라이부르크는 당초 4년 장기 계약을 원했지만 병역으로 인해 2년+2년(옵션) 방식의 계약을 맺었고, 권창훈은 결국 2시즌만 소화하고 K리그로 돌아왔다. 상무에 입대하며 병역 문제를 해소한 권창훈은 올여름 유럽행을 적극적으로 노크했지만 다시 문을 열지 못했다. 병역으로 인한 공백기가 선수에 대한 평가를 바꿔놨고, 만 30세를 앞둔 선수에 대한 관심은 식어 있었다.

유럽에서의 롱런, 혹은 진입을 위해 가장 큰 장벽인 병역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올림픽 동메달 이상의 성적이 조건이다. 축구의 경우 올림픽 동메달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훨씬 달성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실제 손흥민과 김민재가 만약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통해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경우 처했을 상황을 가정하면 아찔하다. 손흥민은 늦어도 2019년에는 국내로 돌아와 K리그에서 뛰며 상무 입대를 추진해야 했다. 상황에 따라 2021년 말까지 국내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랬다면 프리미어리그 최초의 아시아인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한 2021~22 시즌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김민재 역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없었다면 K리그로 리턴해야만 했다. 유럽 빅리그 입성 후 단 1시즌 만에 세계 최고의 선수를 뽑는 ‘발롱도르’ 최종 후보 30인에 들며 월드클래스로 인정받았지만, 허무하게 유럽을 떠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아시아 최고 이적료(5000만 유로·약 715억원)를 기록하며 바이에른 뮌헨으로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지난해 나폴리로 이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랬다면 김민재의 기량을 유럽에서 제대로 검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2001년생인 이강인은 아직 병역 문제가 본격화되기까지 다소 여유가 있지만, 일찌감치 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런 한국 선수의 병역 문제 해소는 유럽 구단들에도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유럽 축구의 흐름을 보면 20대 초반부터 중반에 선수 가치가 절정에 이른다. 자연스럽게 이적료도 그 시점까지는 선수 기량에 따라 우상향한다. 손흥민은 2015년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할 당시 3000만 유로(약 408억원), 이강인은 이번 여름 마요르카에서 PSG로 이적하며 2200만 유로(약 310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김민재는 아시아 역대 최고 이적료를 달성했다.

2018년 9월1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승리하고 우승을 차지한 손흥민이 금메달을 깨물고 있다. ⓒ연합뉴스

병역특례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300억원에서 400억원에 달하는 큰 이적료를 지불하고 영입한 선수를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냥 보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이 문제는 한국 선수 영입에 관심을 보이는 유럽 팀들이 생각하는 가장 큰 리스크다. 장기적 관점으로 한국 선수를 영입하는 데도 장애물이 된다. 이강인의 경우 현재 성장세라면 2~3년 후 이적료가 2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병역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만 27세 이후의 이강인의 미래를 고평가하며 그 이적료를 지불하려는 팀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뛰는 정우영, 벨기에 헨트의 에이스로 급부상한 홍현석 같은 1999년생 선수들은 이 문제가 더 빨리 현실화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구단을 설득해 이번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참가 중이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병역특례 방식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5년 전 토트넘이 손흥민을 아시안게임에 보내는 대신 A매치 차출을 1차례 거르고, 아시안컵 조별리그 참가도 3차전부터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번에 이강인의 PSG도 마지막에는 그와 비슷한 조건을 대한축구협회에 요구했다. 핵심 선수의 경우 유럽 구단들이 아무 대가 없이 보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럴 경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 이후 감내해야 할 문제가 복잡해진다. 손흥민의 경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급한 불은 껐지만 정작 의무 차출이 가능한 아시안컵에 전력을 쏟지 못해 우승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유럽파가 확대되고, 그들의 위상이 높아지며 아시안게임 차출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현재의 병역특례 조항을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정 대회에서 높은 기준의 성과를 달성하는 게 아닌 A매치 출전, 월드컵과 아시안컵 등에서의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해 병역 혜택을 주거나 복무를 30대 후반에 이행하는 방식 등이다. 실제로 징병제를 실시하는 유럽의 튀르키예나 그리스, 이스라엘의 경우 기여금이나 세금 부과로 대체하거나 체육 관련 부대에서 복무하는 형태로 일찌감치 전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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