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CEO의 공통 경영 키워드는 ‘미래 먹거리’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10.02 07:3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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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오너 일가 전수조사 결과…기존 주력 사업 강화에 초점 맞춰온 선대와 차별화

지금 재계에는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우리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진 창업주와 성장을 이뤄낸 2세 경영인들의 시대가 황혼기에 접어들고 3·4세대들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MZ세대들이 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속속 오르고 있다. 이들의 경영 활동 초점은 ‘미래를 위한 변화’에 맞춰져 있다. 젊은 경영인들의 등장이 우리 경제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올지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 ⓒ시사저널 최준필·뉴뱅

2020년 김동관 부회장 필두로 세대교체

시사저널 전수조사 결과,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오너 일가 중 사장급 이상인 MZ세대는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장(1981년생)과 정기선 HD현대 사장(1982년생),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1983년생), 조현민 한진 사장(1983년생),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장(1984년생),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1985년생), 김대헌 호반건설 사장(1988년생) 등 7명으로 나타났다.

MZ세대가 처음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시점은 2020년이다. 그해 김동관 부회장과 김대헌 사장을 시작으로 2021년 정기선 사장, 2022년 조현민 사장 등이 각각 사장에 올랐다. 올해는 최성환 사장과 이규호 사장, 김동원 사장 등이 차례로 CEO 타이틀을 달았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업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영 활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분명히 존재한다. ‘미래 먹거리’와 ‘신성장동력’이 그것이다. 기존 주력 사업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선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4차 산업혁명 시기를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MZ세대 CEO 중 단연 주목을 받는 인물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다. 차기 총수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MZ세대 CEO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사장과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그룹 내에서의 영향력도 크다. 김 부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에서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의 기타비상무이사도 맡고 있다. 경영권 지분 승계도 상당 부분 진행됐다. 김 부회장은 한화의 3대 주주(4.44%)이며, 2대 주주인 한화에너지(9.70%) 지분도 50% 보유 중이다.

김 부회장은 경영수업을 시작한 2010년 직후부터 한화그룹의 신사업이자 미래 먹거리인 태양광 사업을 이끌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태양광 계열사인 한화큐셀이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 태양광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2020년 한화솔루션 사장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인 지난해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김대헌 호반건설 사장은 MZ세대 경영인 중 최연소지만 김동관 부회장과 같은 2020년에 CEO가 됐다. 24세이던 2011년 호반건설주택에 입사해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경영수업을 받아온 결과다. 2017년 연말 인사에서 호반건설 전무 타이틀을 달며 경영 일선에 나선 김 사장은 2018년 호반건설 부사장에 이어 2020년 호반건설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특히 호반건설 지분 54.73%를 확보해 사실상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한 상태다.

김 사장의 최대 과제는 신사업 발굴을 통해 건설 사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2018년 말부터 스마트 건설와 리츠 사업 등 신사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또 2019년부터는 스타트업 투자와 지원을 전문으로 하는 액셀러레이터 회사인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설립해 차세대 건축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해 오고 있다.

ⓒSK네트웍스·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SK네트웍스·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2021년 정기선, 2022년 조현민 CEO 올라

2021년에는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MZ세대 CEO에 합류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그룹)의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2007년 동아일보 기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 사장은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그룹에 합류했다. 그리고 8년여 만인 2021년 HD현대 사장에 취임하면서 그동안 이어진 전문경영인 체제는 오너 경영인 체제로 전환됐다.

정 사장은 미래 사업 발굴을 주도하는 미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바이오와 인공지능(AI), 수소·에너지 분야 신사업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특히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룹이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해양, 에너지, 산업기계 기술력을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 생산부터 운송 및 활용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중공업도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신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해 정 사장의 미래 먹거리 발굴에 힘을 실어줬다.

이듬해인 지난해에는 조현민 한진 사장이 CEO에 올랐다. ‘물컵 갑질 사건’으로 2018년 대한항공 전무 등에서 물러났던 조 사장은 2019년 한진칼 전무로 복귀한 후 2021년 한진 부사장에 이어 지난해 한진 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이와 함께 그동안 마케팅에 집중돼 있었던 조 사장의 업무 영역도 미래 성장 분야까지 확장됐다.

그 일환으로 조 사장은 데이터 유통 플랫폼 ‘로지 플랫폼’을 론칭했고, 서울도시공사와 함께 고객·배송 서비스를 융합한 ‘캐리어 운송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콘텐츠 솔루션 회사인 UOK와 함께 도로 정보 데이터베이스(DB) 업체 ‘휴데이터스’를 공동 설립하는 과정에서도 조 사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향후 그룹 내에서 조 사장의 영향력은 한층 확대될 전망이다. 한진이 스마트 솔루션 물류 기업 도약과 마케팅·신사업 활동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호반건설·뉴시스·한화
ⓒ호반건설·뉴시스·한화

최성환·이규호·김동원은 올해 CEO 승진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장은 1981년생으로 MZ세대 경영인 중 맏형이지만 ‘사장 데뷔’는 가장 늦었다. 2009년 SKC에 입사한 이후 경영수업을 받아오다 올해 초 SK네트웍스 사장으로 승진했다. 재계에서는 머지않아 최 사장 체제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그의 부친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이 2021년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최 사장이 본격적인 SK네트웍스 지분 확보에 나선 것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최 사장은 신사업을 위한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올해 AI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업체 휴메인과 AI 스마트팜 솔루션 기업 소스.ag 등에 대한 투자도 그의 결정이었다. 최 사장은 이 밖에도 미래 혁신을 주도할 AI·디지털전환(DT) 등 영역의 국내외 스타트업과 펀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장도 최 사장과 비슷한 시기에 CEO가 됐다. 2012년 그룹에 합류한 후 조용히 경영수업을 받아온 그는 2018년 부친인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차기 총수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이 사장은 2020년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 부사장에 이어 올 초에는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사장은 신사업 부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스웨덴 전기 바이크 브랜드 ‘케이크’와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를 국내에 도입하며 모빌리티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또 국내 최초의 모바일 유료 수입차 시승 플랫폼 ‘바로그차’와 수입차의 보증 수리를 연장해 주는 서비스 ‘코오롱모빌리티 케어’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또 그룹 계열사들의 전사적인 역량을 동원해 수소 관련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승연 회장의 차남이자 김동관 부회장의 동생인 김동원 사장도 최성환·이규호 사장과 ‘승진 동기’다. 2014년 한화 경영기획실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한 그는 2015년부터 한화생명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향후 김동원 사장이 한화생명과 한화자산운용, 한화손해보험, 한화생명금융서비스, 한화손해사정 등으로 구성된 금융 계열사들을 넘겨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사장은 한화생명 입사 이후 주로 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관련 업무에 집중해 왔다. 업계 최초의 디지털 손보사인 캐롯손보 설립도 그의 작품이다. 김 사장은 신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직개편 작업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한화생명은 기본 보험 부문에 신사업·전략·경영혁신·투자 등 4개 사업 부문을 신설하고, 신사업 발굴을 위한 기술전략실과 빅데이터실, 오픈이노베이션추진실 등을 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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