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훈의 백세호흡②] 폐활량이 큰 사람이 장수한다
  • 이태훈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 (ls@sisajournal.com)
  • 승인 2024.01.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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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단순히 호흡만 하는 기관이 아니라 생명의 통로
나이=면역 저하? No!…감염 방어하는 ‘공기면역’ 장치 역할도

“진정한 부(富)는 금과 은이 아니라 건강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이다. 건강은 이제 다가오는 백세시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건강 상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증상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뇌피셜’은 오히려 건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게 된다. 시사저널은 이태훈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의 기고를 통해 건강하게 백세시대를 맞이할 팁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심한 일교차와 미세먼지로 며칠 후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이번 겨울의 특징인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극심한 인후통과 두통, 근육통, 관절통증, 호흡 곤란 등을 동반하면서 만만치 않은 ‘끝심’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상대의 기침 몇 번 만에 두통과 인후통, 몸살, 기침을 동반한 ‘독감’이 전염된다. 수액을 3~4회씩 맞고 나서야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의 미친 듯한(?) 감염력이 무서울 정도다. 이런 증상을 힘들게 겪었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환자나 지인들의 체험담은 호흡기 감염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한다. ‘이래서야 어디 백 살은 커녕 80세나 살 수 있을까’ 하는 일말의 공포감이 생기기도 한다.

아제르바이잔의 레릭은 평균 수명 95세로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통한다. 사진은 168세로 기네스북에 오른 장수 노인 쉬렐리를 기념하기 위해 1991년 설립된 레릭 장수 박물관 모습. ⓒ사진=EBS 세계테마기행 캡처

100세를 넘긴 사람들의 특징

아제르바이잔의 레릭(Lerik)에 살았던 168세 장수 노인 쉬렐리(1805-1973)의 이야기를 최근 EBS 다큐에서 접하며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평균 수명 95세로 연로한 어르신들을 위해 80세 노인이 물주전자를 들고 다니는, 마치 동화 속의 마을 이야기 같아서 흥미로웠다. 장수 노인이 흔한 그곳에서도 유난히 오래 살다 가신 그와 100세도 살기 어려운 우리네의 차이점을 찾아봤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지역에 산다는 재미없는 이야기나,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해서 엄청나게 팔아(?)먹었던 요구르트 제품 말고, 대부분이 도시를 살아가야 하는 현재의 우리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또 다른 신체적 특징은 없을까.

유난히 눈에 띈 곳이 있었다. 바로 ‘코’와 ‘입’이었다. 세월의 상징인 깊은 주름은 당연하지만 코 주변 윤곽이 충분해 보이고, 야무지게 다물고 있는 입술 라인이 견고해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 코로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임상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88세에 폐렴과 패혈증을 반복하며 언제 위험한 상태에 빠질지 몰랐던 여성 환자 이야기이다. 동행한 따님이 “1년 만이라도 사실 수 있다면 편하게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대화 중간 중간 입호흡을 하던 연로하신 그녀를 통뇌법 치료로 코호흡 기도를 넓혀 주며 부비동 염증을 제거했다.

숨길이 회복된 그녀는 호흡기 문제없이 올해 기준 95세로 장수하고 있다. 7년 동안 의료인인 필자의 건강을 걱정해 줄 만큼 인지상태도 좋다. 코 숨길이 제대로 열리기만 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한 백세인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이 칼럼의 주제를 ‘백세호흡’이라고 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980년대, 심장질환에 초점을 맞춘 연구 프로그램 ‘프레이밍햄 스터디(Framingham Study)’에서 연구 대상자 5200명의 자료를 20년간 수집해 분석했다. 결론은 ‘폐활량이 큰 사람(심호흡 능력)이 장수한다’였다.

미국 뉴욕의 버팔로 대학(Buffalo Univ.) 연구진이 30년간 연구 대상자 1000명 이상의 폐활량을 비교 연구한 결과도 동일했다. 폐활량은 30~50세 사이에 12%가 자연적으로 감소하며, 나이가 들수록 더 빨리 줄어든다. 80세경에는 30%가 줄어들기 때문에 인체에 필요한 만큼의 호흡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빨리 더 강하게 호흡해야 한다.

하지만 무리한 호흡은 피로를 누적시킨다. 호흡에 필요한 근육들, 특히 횡격막이나 폐 주변 근육들에 심한 부담을 줘 고혈압이나 심장, 폐 등의 만성질환을 유발한다. 빠르고 거친 호흡은 지나치게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어 혈관이 좁아지는데, 특히 뇌의 혈액순환을 감소하게 만든다. 원래 이산화탄소는 동맥을 확장시켜 혈액 순환량을 증가시키고 지방 분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질병에 대해 강력한 해결사로 작용하는 순기능이 있다.

수명 연장의 키워드를 쥐고 있는 폐활량의 주체는 ‘폐’ 자신이다. 주변의 호흡근육, 횡격막 등이 협력해 호흡의 동력원이 됨으로써 공기의 흡입과 배출량을 조절한다.

서울시에서 주최한 어르신 생활체육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운동용 고무줄을 이용해 건강체조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폐활량 조절하는 기능성 빨대(straw) ‘코’

하지만 이 공기들이 드나드는 출입구는 분명히 ‘코’다. 이 시점에 ‘비폐반사(nasopulmonary reflex)’라는 전문용어를 이해하면 호흡에 있어서 코의 결정적인 역할이 부각된다. 비폐반사란 한쪽 코를 통해 공기량을 증가시키면 같은 쪽 기관지의 근육이 이완돼 환기량이 함께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폐활량 조절의 중요한 열쇠를 코가 쥐고 있다는 말이다. 코의 건강이 곧 폐의 건강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호흡 동력과 환기량’이라는 측면에서의 설명이었다. 앞으로 설명할 내용은 이것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내용이다. 바로 ‘감염을 방어하는 면역장치, 코’다.

서두에서 호흡기 감염의 살벌함(?)을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코로나, 독감은 가벼운 감기처럼 지나간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면역이 떨어진다는 말이 정답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예외가 없을까? ‘있다!’

인간은 노화라는 불가항력의 과정을 거치는 유한한 존재다. 죽음이라는 결정론적 관점에서 헤어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쉬렐리 할아버지 같이 스트레스나 음식, 공기 등에서 자유로운 분들 말고도, 80세 노익장을 과시하며 건강나이 40〜50대를 자랑하는 멋진 분들의 운동을 통한 인생 역주행을 본다. 세월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분명한 ‘변수 X’가 있음을 알게 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삶과 운동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운동에 동원되는 근육은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호흡량의 증가가 필요해져 더 빨리 더 많은 숨을 쉰다. 코와 폐는 일사분란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활발하고 꾸준한 움직임(운동)은 코와 폐를 동시에 강하게 만든다. 게다가 부지런한 사람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소화나 대변도 잘 치른다.

한 흡연자가 충북의 한 보건소 금연클리닉를 방문해 폐활량 검사를 받는 모습. ⓒ연합뉴스

나이로만 설명 안되는 ‘변수 X’의 정체

호흡하는 공기 속의 산소나 이산화탄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이에 놓쳐버린 중요한 사실이 있다. 먼지나 세균, 바이러스, 각종 화학물질, 동식물 가루, 타이어 분진 등이 공기 속에 섞여있다는 점이다. 1회 숨을 쉴 때 들어오는 공기를 포함한 입자의 수는 지구상의 모든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코는 코 숨길 총 길이 12cm를 통과하는 시간, 0.25초 안에 공기 중에 포함돼있는 병원성 미생물과 미립자 80%를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코 뒤쪽 도달 기준, 외부 온도가 몇 도이든 간에 31~37도, 습도는 75~95%까지 높일 수 있다. 4초에 한 번씩 호흡과 면역에 관한 기적이 코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80세 기준 약 7억 회나 반복된다. 만약 이 ‘공기면역’ 시스템의 핵심인 코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몸의 장기들은 알러지, 염증, 폐색, 암 등으로 멍들어 간다. 

가장 이상적인 삶이 ‘건강한 장수’라는 말에 이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굵고 짧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중대 질환이 발병됐을 때 평소의 지론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호흡과 면역에 관한 아래의 의학상식쯤은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생존(生存)’의 기본조건이 잘 숨 쉬는 것(호흡)이라면, ‘장수(長壽)’의 필수조건은 호흡기 염증을 예방하는 것(면역)이다. 이 두 조건을 동시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퍼 장기’가 코이기 때문에 ‘코는 생명의 통로’라고 한 옥타브 높여서 부른다.

다음 글에서는 ‘비염, 만병의 시작은 코로부터’라는 주제로 ‘백세호흡’의 비밀을 밝혀가려고 한다. 호흡기 질환이 만연하는 이번 겨울, 특히 호흡기 건강에 유의하시길 부탁드리며 오늘의 글을 접어본다.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
이태훈한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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