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 “포기하지 않으니 꿈이 이루어졌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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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노래 잘하는 가수 되고 싶어”…‘공정 사회’ 표상으로도 떠올라

 

▲ 허각씨가 지난 12월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연예계는 지난 몇 년간의 연예계와 대동소이했다. 영화는 대박의 기준선인 1천만명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시장이 줄어들었고, TV 드라마 시청률 40% 선은 머나먼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예능 쇼 프로그램은 언제부터인가 유재석-강호동이 이런저런 익숙한 인물과 떼로 등장하는 ‘그 나물에 그 밥’ 쇼를 면하지 못하고 있고, 가요계는 라이브로 댄스를 하는 가요 프로그램에 나와 상기된 표정으로 ‘키워주신 기획사 사장님에게 고맙다’라며 머리를 조아리는 스무 살 안팎의 아이돌 그룹의 ‘미각(美脚)’과 노출에 명줄을 대고 있다.

올해 이례적인 것이 있었다면 <슈퍼스타K2>(이하 <슈스케>)의 돌풍이다. 예쁘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고, 부잣집 아이가 아닌, 단지 노래만 잘하는 가수 지망생이 모여든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이 엄청난 시청률을 올리며, 쇼에 등장한 ‘가수 지망생’이 단박에 스타급 연예인으로 뛰어올랐다.

<슈스케>는 케이블 방송 엠넷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올해 두 번째로 실시되었다. 이 방송은 최고 시청률이 17.99%를 기록했다. 보통 케이블에서는 5%가 넘는 시청률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일컫는데 <슈스케>는 초대박을 기록한 것이다.

<시사저널>의 올해의 인물 조사에서도 독자들은 연예 분야에서 <슈스케> 우승자인 허각(46.2%)을 최고의 연예 인물로 꼽았다. 이어 소녀시대(37.6%), <슈스케>(11.0%), 원빈(4.3%) 등을 지목했다.

아이돌 그룹의 대표 아이콘인 소녀시대는 하반기에 일본에서 돌풍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며 국내 활동의 동력을 추가했다.

배우보다는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더 자주 붙었던 배우 원빈은 액션영화 <아저씨>를 통해 한국 영화계의 기둥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소내시대나 원빈은 허각으로 상징되는 <슈스케>의 돌풍을 넘어서지 못했다.

허각에 대한 지목률은 다른 모든 분야의 ‘올해의 인물’ 1위 지목률보다 높았다. 중학교 졸업 학력으로 낮에는 배관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행사를 뛰면서 노래 실력을 가다듬은 허각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인생 스토리와 뛰어난 가창력이 버무려지면서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1백34만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우승한 허각은 지난 11월 다섯 곡이 수록된 미니 앨범을 발표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는 공익광고 모델과 청와대 회의에 참석하는 등 다양성과 기회의 공정함을 상징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경쟁자에 비해 비주얼이 약했는데, 우승을 예상했나?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상황이 워낙 급변했고 다들 실력이 출중했으니까….

시청자에게 어떤 점이 가장 어필했다고 보나?

평가받는 곡이 매주 주어지는 미션 곡이고 그 곡으로 완벽한 무대를 보여드려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기에 그때그때 주어지는 미션 곡을 잘 소화해내는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지 않았나 싶다.

가수 지망생으로 행사 무대에 뛰던 시절,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나?

남들이 보기에 내가 단점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것을 단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편이다. 모든 사람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듯이 나도 내가 가진 장점을 많이 부각시키려고 했다.

<슈스케2> 우승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슈스케> 출연은 내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우승을 계기로 내 이름으로 된 앨범도 나왔고, 가수로 데뷔할 기회도 얻었다. 소원했던 가족과의 관계도 두터워졌고, 함께 살 집도 마련했다. 올해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등을 하고 난 뒤 바뀐 것이 있나. 상금은 어디에 썼나?

가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상금은 필요한 곳에 쓰기도 했고 아버지, 형과 함께 살 집을 마련하는 데 썼다.

방송을 통해 중계된 허각의 이미지가 본인이 생각하는 캐릭터와 일치하나?

방송에서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 연예 분야에서 허각씨에 대한 지목률은 다른 모든 분야의 ‘올해의 인물’ 1위 지목률 보다 높았다. ⓒ시사저널 엠넷

가수 지망생에서 앨범을 발표한 가수가 되니까 무엇이 달라지던가. 혹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운 점은 있나?

개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바빠졌다. 그만큼 나를 찾아주는 분이 많다는 얘기라서 감사하다. 그 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하고 싶나?

지금으로서는 발라드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내게 잘 맞고 내가 잘 소화할 수 있는 곡이라면 어떤 장르에라도 도전해보고 싶다.

중학생 시절 이후 지금까지 해 온 일 중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학업을 중단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된다. 기회가 되면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 음악 공부는 물론이고 대학 생활도 하고 싶다.

그럼 지금까지 해 온 일들 중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것인가?

계속 노래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노래는 내 삶이고 꿈이다. 결국 그 꿈을 이루게 되었으니,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정 사회 모델로 공익 광고에도 출연했는데 허각을 롤모델로 삼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그런 말은 아직 내게 너무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도 꿈을 단지 꿈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이룬 것처럼, 꿈을 갖고 있지만 도전을 망설이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수가 되겠다’라는 꿈을 꾼 것이 언제부터인가?

열네 살 때 노래를 처음 시작했고, 우연히 참가했던 동네 쇼핑몰에서 개최한 노래 대회에서 1위를 했다. 그때 처음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노래를 하게 되었다.

그 꿈이 부러지거나 혹은 포기한 적이 있나?

처음에는 아버지의 반대도 있었고, 현실적으로 내가 가수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해보여서 다른 직업을 갖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꿈을 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나, 자기 확신이 있었나?

계속 문을 두드렸다. 열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더니 어느새 꿈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가수를 안 한다면 어떤 일을 할 것 같나?

하고 있는 일을 계속했을 것이다. 노래하면서.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나 닮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

이승철 선배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이다. 따라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악기 공부도 하고 음악 공부도 더해서 프로듀싱까지 멋지게 해내는 이승철 선배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나?

공연을 통해 관객과 호흡하는 가수, 진짜 노래 잘하는 가수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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