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된 권력, ‘불안’도 대물림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12.2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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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정은’인가 /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에 새 변수로 등장…북한 권력 기구 변화도 뒤따를 전망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함께 후계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왼쪽)이 지난 10월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당 60주년 군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 <시사저널>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김위원장은 그해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섰다. 자신감 넘치면서도 유머러스한 화술을 구사하며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은근히 호감을 주기도 했다. 그로부터 꼭 10년 만인 2010년. <시사저널>은 ‘올해의 인물’로 김정은 북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선정했다. 10년 만에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올해의 인물에 오른 셈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이미지는 10년 전 아버지와는 철저히 대비된다. 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고, 어딘지 모르게 호전적인 분위기와 함께 거부감을 안겨준다.

<시사저널> 기자들과 본지 독자들이 20대에 불과한, 그것도 몇 해 전까지는 전혀 그 존재감조차 갖지 못했던 김정은을 주목한 이유는 그만큼 올 한 해 한반도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했다는 점을 반영한다.

그 중심에 김정은의 등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는 현재 진행형이고, 해를 넘겨서도 미래 진행형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올해의 인물’ 선정 투표에서 김정은에 이어 ‘연평도 포격 사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천안함 사태’ 등이 많이 거론되었다는 점을 보아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8월에 이미 후계자 낙점된 상태였다”

김정은 부위원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가장 유력한 북한의 후계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논란은 분분했다. ‘과연 3대 세습이 가능하겠는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이 제기되었다. 최대 변수는 역시 김정일의 건강 문제였다. 이복형 김정남과 친형 김정철 그리고 고모부인 장성택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도 여전히 거론되었다. 북한 사회 내부의 동요와 함께 급변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설왕설래와는 달리 북한 내부는 이미 지난해에 ‘2010년 김정은의 공식 등장’을 위한 준비 작업을 상당 부분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해 8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고위직 인사가 김정은이 공식 등장한 지난 9·28 당대표자회 이후에서야 기자에게 털어놓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는 이런 북한의 내부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8월 우리가 방북했을 때, 김일성 생가를 방문했는데 그때 북한 안내원이 ‘만수대 정신을 김일성 수령님과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에 이어 청년 대장 김정은으로 이어간다’라며 김정은 얘기를 먼저 꺼내더라. 그때만 해도 김정은이 국내에서 유력한 후계자 중의 한 명으로 거론될 정도였지, 확실한 말은 없었기에 이를 듣던 우리 일행은 깜짝 놀라서 안내원에게 ‘김정은이 언제 청년 대장이 되었느냐? 남쪽에 가서 이런 얘기를 해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해도 좋다’고 하더라. 그 이튿날인가 식사하면서 식당의 봉사원에게 김정은에 대해 물었더니 거침없이 <발걸음>(김정은 찬양 노래)이라는 노래를 부르더라. ‘올해 5월부터 학습 시간에 배웠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남한에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궁리하며 귀국하기 위해 평양의 공항을 나서려는데, 보위부 사람들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김정은에 관해 들은 얘기는 절대 남쪽에 가서 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아직 장군님께서 건재하신데 오해가 있을 수 있다’라고 하더라. 이후에도 또 북한을 방문해야 했고, 신분이 탄로 날 수도 있기에 결국 남한에 와서 얘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시사저널>은 9·28 당대표자회 이전에도 김정은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 및 전망 기사를 실었고, 이 가운데 일부는 대외적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특히 제1062호(2월24일자) ‘북한의 일제 타격식 포사격은 군 장악 나선 김정은의 작품?’에서 ‘북한이 1월27·28일 연일 NLL을 향해 ‘일제 타격식’ 포사격을 가한 것은 ‘김정은이 포병전을 중시하고 있다’라는 북한 내부 문건으로 미루어볼 때 김정은을 ‘군사의 영재’로 내세우기 위해 기획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정확한 예측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1월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 사건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보고 있는 것 또한 물론이다.

 

당 중앙군사위 위상 높아질 듯

제1072호(5월5일자) ‘평양 주석궁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에서도 ‘현재 북한을 움직이는 최고 파워 엘리트들이 군부로 집결되고 있다. 김정은의 향후 체제에서도 군부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며, 김정은이 군부를 통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인물은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과 리영호 총참모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지난 5~6월께 어린 조카 대신 장성택이 실질적인 권력을 잡을 것이라는 새로운 전망이 국내외에서 비등하던 때에도 본지 제1078호(6월16일자) ‘공동통치 발맞추는 김정은과 장성택’에서는 ‘김정은이 장성택보다 김정일 사후 권력을 승계하기에 훨씬 유리한 지위에 있는 만큼, 결국 김정은이 국정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대외적으로 나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국정 관리와 대외 관계에서 장성택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9월28일 열린 북한의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명실상부한 2인자로, 그리고 장성택은 그의 아내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와 함께 김정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김정은의 군부를 이끌어나갈 핵심 인물로 리영호 총참모장이 전면에 나섰다. 

현재 김정은에 대해서 가장 근접한 정보를 내놓는 사람은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이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잘 알려진 그는 1982년부터 2001년까지 평양 주석궁에 머무르면서 김정은을 줄곧 지켜보았던 인물이다. 그는 최근에 펴낸 저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서 ‘핵에 대해서는 ‘정은 대장’(김정은)이 후계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리 간단히 손을 떼지 않을 것이다. 핵 보유는 북한이라는 나라를 존속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고방식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김정일과 달리 정은 대장은 어릴 적부터 유럽 등지의 서방 사회를 보고 자유로운 사회를 피부로 체험했다. 김정은 체제가 오면 2~3년 동안은 당장 바뀌기 어렵겠지만, 5~6년이 지나면 서서히 변화가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 시대’로 접어들면서, 북한의 최고 파워 엘리트들이 집결하는 최고 권력 기구가 ‘국방위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향후 김정일이 사망하면, 과거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중앙인민위원회를 폐지하고 김일성을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내세웠던 것처럼, 김정은도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김정일을 ‘공화국의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최고 군사 지도 기관인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향후 김정은 후계 체계 구축에서 가장 핵심적인 권력 기반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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